리산당 도광 대선사비명(离山堂導光大禪師碑銘)은 2006년 9월 20일 총무원장 가산 지관(伽山智冠) 스님이 찬술하고, 송천(松泉) 정하건(鄭夏建)이 글씨를 썼다. 비신의 전면에는 ‘도광 대선사비명(導光大禪師碑銘)’의 제명(題名)이 상단에 가로로 적혀 있고, 우측에 세로로 ‘전불심등 광도중생 불법중흥 리산당 도광 대선사 비명(傳佛心燈廣度衆生佛法中興离山堂導光大禪師碑銘)’이 적혀 있다. 비신의 전면, 우측면, 후면에 도광 스님의 행적을 서술하고, 후면에 명사(銘詞)와 건립일, 제작에 참여한 소임자 명단, 종단질(宗團秩), 산중질(山中秩), 종무소질(宗務所秩), 산내 암자질(山內庵子秩)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원문
傳佛心燈廣度衆生佛法中興离山堂導光大禪師碑銘
兎角柱杖은 常說法하고 龜毛拂子는 放光明이로다. 世尊拈花에 迦葉이 微笑하니 一人傳虛에 萬人傳實이로다. 以心傳心의 格外道理에서야 무슨 記錄할 事實이 있으랴마는 그러나 娑婆世界는 音聲과 言語文字로 敎體를 삼나니 文字記錄이 아니면 眞理를 傳達할 수 없을뿐 아니라 善不善等 一切事法 또한 時空을 通해 後代에 남길 수 없다. 부처님께서도 成道後 三七日동안 黙黙히 숙고하시고는 不得已 無言의 寂靜世界를 뒤로 하고 言說의 敎海를 항해하시며 四五年間 八萬法藏을 남기시었으니 無緣大悲의 金口說法을 記錄하여 時空을 통해 傳播하므로서 衆生들의 어두운 길을 비춰주고 있다. 近世에 宿世의 願力을 타고 이나라 이民族과 이땅의 佛敎를 위해 福慧具足한 善知識이 出現하셨으니 离山堂導光大禪師이시다. 禪師의 諱는 導光이요 號는 离山이며 俗名은 午南이고 俗姓은 金氏며 本貫은 金海이다. 아버지의 諱는 基春이고 어머니는 仁同 張氏 五鉉夫人이시다. 어머님이 아들을 하나 더 얻고자 求禮 華嚴寺覺皇殿에서 三七日 觀音祈禱中 白衣觀音菩薩님께서端正한 靑衣童子를 안겨주시는 胎夢을 꾼 후 姙娠하여 一九二二年 四月三日(壬戌年陰三月七日) 全羅南道潭陽郡金城面外秋里四七0번지에서 二男二女中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禪師께서는 天禀이 聰明하고 寡黙鎭重하였으며 孝心 또한 至極하여 鄕里에서 稱頌이 자자하였다. 일찍부터 世俗榮華에 無心하고 居家를 마치 監獄과 같이 여겼으며 日帝强占治下 新學工夫마저 단호히 거절하고 父親으로부터 漢學을 수학하였으나 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儒學의 本旨라하거늘 治國安民은 커녕 黨派싸움으로 나라마저 빼앗긴 현실을 통분하여 靑雲의 雄志가 어둠에 갇혀있던 어느날 舍廊房에 留宿하게된長城白羊寺에서 托鉢나온 스님을 만났다 禪師께서 超然自若한 그스님의 모습을 보고 크게 感動되어 스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라고 여쭈웠으니 答하되 스스로 많은 惡業을 짓는 居家의 狹小함은 마치 監獄과 같고 火宅과 다르지 않으나 廣闊함이 虛空과 같아 天上天下에 無碍自在한 出家修道를 업으로 삼아 普賢의 願海에 들어서 生死苦海에 飄弱하는 수많은 衆生들을 涅槃의 彼岸으로 引導하는 뱃사공이요 라하였다. 이말을 들은 禪師께서는 곧 出家修道할 것을 굳게 決心하고 父母님 앞에 꿇어앉아 流轉三界中에 恩愛未能脫이오니 棄恩入無爲함이 眞實報恩者입니다 라는 立志偈를 說上하고 許諾을 구하였으나 祈禱 끝에 얻은 귀여운 막내아들을 許諾할 리가 없었다. 禪師께서는 몇 달 동안 煩憫 끝에 一九三五年五月一五日 “假使侍養極盡誠이라도 時至命終相別離로다 不供甘旨爲解脫하노니 比如死子比如無하소서” 라는 出家詩를 남기고 夜半에 집을 나와 멀리 釜山梵魚寺로 入山하였다. 梵魚寺의 行者 담당스님이 信根因緣을 알아보기 위해 쉽게 받아주지아니하였으나 禪師는 宿世의 善根功德이 堅實하여 마치 九鼎祖師와 같은 爲法忘軀의 堅固한 信心으로 模範的 行者生活을 하다가 마침내 一九三七年七月一五日 梵魚寺金剛戒壇에서 東軒堂完圭大宗師를 恩師로 東山堂慧日律師를 戒師로 하여 沙彌戒를 받고 스님이 되었다. 타고난 天稟의 至極한 孝心으로 恩師스님을 侍奉하면서 梵魚寺佛敎專門講院에서 三藏을 硏磨하여 一九四二年一月一五日 大敎科를 卒業하였고 같은해 三月一五日 梵魚寺金剛戒壇에서 東山律師로부터 比丘戒와 菩薩戒를 받았다. 禪師께서는 出家初志를 金剛과 같이 堅持하였으니 三藏受業을 履修한 후에도 不撤晝夜手不釋卷하면서 굳게 戒律을 지켜 大衆의 模範이 되었음은 물론 外柔內强하고 溫厚質樸한 性品의 바탕에 馬勝比丘와 같은 威儀로 대중을 사랑하셨으니 世人들이 常不輕菩薩이라 稱頌하였다. 禪是佛心이요 敎是佛語라하고 三藏敎海를 깊이 연마하여 遊遊自在하였으나 驚天動地하는 西來密旨를 흠모하여 恩師인 東軒大宗師에게 修行次第와 그 方法을 問議하였다. 宗師께서 이르시길 大抵初心修行者는 多劫生의 두터운 業障부터 消滅한 然後에라야사 비로소 話頭를 제대로 參究할 수있다면서 六途衆生의 堅厚한 모든 業障을 消滅시켜주시는 觀世音菩薩의 本心微妙六字眞言인 옴마니반메훔을 稱念하라고 指導하였다. 禪師께서는 이 지도를 받고 觀音聖地인 襄陽洛山寺紅蓮庵을 찾아가 一九四二年冬安居이후 三年間 六字呪眞言祈禱를 奉行하던중 一九四五年二月二0日 東海漁船의 汽笛소리가 새벽을 가르는 순간 胸中이 割然하고 天地가 空豁함을 체득하고는 觀世音菩薩六字大明眞言 옴마니반메훔이여! 千古大悲萬古月이 通照無限利人天이라고 祈禱成就의 境地를 읊었다. 그로부터 無字話頭를 看擇하여 參禪修行을 시작하였다. 一九四五年智異山七佛庵에서 夏安居를 시작으로 靈鷲山極樂禪院 鏡峰會下에서 冬安居를 一九四六年長城白羊寺雲門禪院에서 夏安居를 伽倻山海印寺堆雪禪院에서冬安居를 一九四七年梵魚寺淸風禪院東山會下에서夏安居를 聞慶鳳岩寺禪院에서 冬安居를 一九四八年八公山杷溪寺聖殿禪院에서 夏安居를 永川銀海寺百興禪院에서冬安居를 一九四九年太白山覺華寺에서夏安居를 黃岳山直指寺千佛禪院에서冬安居를 一九五0年曹溪山松廣寺三日禪院에서 夏安居를 順天仙岩寺七殿禪院에서冬安居를 一九五一年俗離山福泉禪院에서 夏安居를 德崇山修德寺禪院에서 冬安居를 하는동안 如救頭燃의 勇猛精進을 계속하여 禪敎를 兼通하고는 먼저 故鄕地方부터 佛種子심어주길 발원하여 一九五二年一0月 道伴인 道川스님과 함께 金城땅에 普光禪院을 創建하였다. 禪師와 道川화상은 金剛山表訓寺修道中 平生間 同修琢磨의 道伴이 되기로 다짐하고는 入寂할 때까지 友情의 決意를 굳게지켰으며 그 後學들 또한 두스승의 뜻을 이어 禪師의 偉蹟에 同參하겠다하여 모두 본 碑銘의 位牌上佐로서門徒秩에 入列되었다. 一九五四年七月부터는 宗團重鎭스님들을 모시고 敎團淨化佛事에 先導的役割을 하였고 一九六二年부터 曹溪宗의 一·二·三代의 中央宗會議員을 역임하였으며 一九六三年五月 曹溪宗中央監察委員에 選任되는 등 종단중흥에 헌신하였다. 四四歲되던해인 一九六五年 河東七佛庵亞字房禪院에서 夏安居를 하다가 解制前 七日間의 勇猛精進中이던 七月一三日 새벽천둥소리를 듣는 순간 忽然히 無字話頭를 打破하였으니 大地가 平沈하고 虛空이 粉碎하며 胸中이 灑落하여 虛割割蕩蕩然으로 更無一法可當情함이 與初生兒로 無異하여 喫茶에 不知茶하고 喫飯에 不知飯하여 分別心이 사라지고 情識이 頓淨한 無心三昧에 들어 心花가 割開하여 十方世界를 通照하는 頂門正眼을 얻었다. 이에 菩提란 本來具足한 것이므로 修得할것이 아니며 煩惱또한 本空하니 힘써 除去할 것 없음을 깨닫고는 妄心無處即菩提요 生死涅槃本平等이로다 迷悟本無除何物가 靑天白日莫謾人하라는悟道頌을 읊고는 東軒大宗師에게 呈似하니 宗師께서 點頭하고는 汝見如是하니 吾亦如是라면서 認可하고 靑山白雲吾面目이어니 淸風明月豈外在이리요 莫言佛身在何處하라 塵塵刹刹法身體라는 傳法偈와 함께 离山이라는 幢號를 傳授하였다. 禪師께서는 이와같이 上求菩提하는 家裏事를 마치고 돌이켜 下化衆生의 途中事를 行하여 佛祖의 恩惠를 報答코자 外護와 敎化의길에서 쉼이 없었다. 水原龍珠寺住持를 비롯 康津白蓮寺, 釜山梵魚寺, 大邱杷溪寺와 求禮華嚴寺等住持에 就任하여 道場을 중흥하는등 護法과 布敎의功勞로 一九七二年四月二八日 大韓佛敎曹溪宗宗正賞을 받았으며 一九七五年八月에는 陜川海印寺住持에 就任하여 性徹方丈을 모시고 叢林운영에 模範을 보이기도 하였다. 一九七六年五月 모든 公職을 벗어던지고 東南亞佛敎聖地를 비롯하여 유럽 美州등 二0餘國을 巡訪하면서 韓國佛敎와 傳統文化를 宣揚하는 한편 外國文物을 參觀하며 時代를 先導하는 佛敎革新을 구상하기도 하였다. 歸國後에는 後學을 물리치고 晦跡隱住하되 智異山般若峰德裕山白蓮庵 太白山兜率庵등지에서 精進하였다. 一九八0年一0月부터는 華嚴寺祖室이며 恩師인 東軒大宗師의 命으로 不得已 다시 華嚴寺住持職을 맡아 覺皇道場에 부임하여 今生의 마지막 公職이라 생각하고 禪院의 新築, 堂宇의 重創, 寺規의 刷新, 靑少年敎化등 四大目標를 設定하여 華嚴寺를 全國第一의 修行道場으로 昇化시켰으니 實로 華嚴寺中興主라 稱頌할일이다. 禪師의 一生을 거듭 回想해 보니 公私에 分明하고 淸廉潔白할뿐만 아니라 後學을 指導함에도 賞罰이 分明하였으며 住持職을 遂行함에 있어서도 大衆外護와 伽藍守護, 聖寶保存과 布敎活動, 法要儀式과 社會福祉등 그 어느 한쪽도 疎忽함이 없이 均衡있게 施行하였음이 더욱 돋보이시며 三寶의 淨財를 嚴護함에는 마치 五祖師戒의 弟子인 洞山自寶禪師가 生薑을 取扱하듯 後學들에게 模範을 보였고 三寶淨財와 常住物의 濫用은 勿論 施主物의 互用도 嚴禁하였으니 오늘의 寺刹運營과 大衆外護에 不滅의 龜鑑이 됨은 물론이 時代를 사는 人間事運營에도 오래 傳하여 잊지말아야할 永世不忘의 자 취라고 稱頌할 일이다. 둥근달이 높이 뜨면 天下는 銀色光明으로 훤함과 같이 선사의 일생이 이와 같았다. 선사께서 世緣을 마감하신 때는 一九八四年九月一九日(甲子年陰八月二三日)새벽四시三0分이다. 六三年間遊幻海 今朝脫却殼漏子 來時何物去時誰 生死去來無踪跡이라는 臨終偈를 남겼으니 世壽는 六三세요 法臘은四七夏였다. 法軀를 火葬하여 火蓮속에 떠나 보내고 나니 五色玲瓏한 舍利 一百二十粿가 出現하였다. 이 修道의 結晶은 一切가無常하고 諸法이 無我한줄 깨달은 이에만 남겨지는 不忘의 寶賠인줄 世間은 알일이다. 굽이굽이 샛길로 어지러운 無限山川을 길따라 훤히 비추던 둥근달이 西山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으니 스승의 자취를 사무쳐 그리워하던 門徒들이 禪師의 鴻跡을 貞石에 記錄하여 後代에 길이 전하고자 하였다. 이에 華嚴寺住持이며 上佐인 宗三和尙이 伽山佛敎文化硏究院으로 찾아와 碑銘을 청탁하므로 以上과 같이 약술한 禪師의 偉跡을 담아 華嚴寺入口左便에 舍利塔을 세우고 다음과 같이 銘하는 바이다.
全羅南道潭陽땅은 많은忠節輩出한곳
朝鮮朝의太祖때는 禪敎兩宗代表中에
敎宗代表祖丘國師 月山밑에태어났고
潭陽郡의金城面엔 導光禪師誕生하다
兎角杖이說法하고 龜毛拂이放光할세
靈山會上擧拈花에 迦葉知音微笑짓다
辭親出家得度後엔 如救頭燃精進하여
祖師血脈傳燈한후 救濟衆生下山하다
동녘봉은日留이고 西便峰은月留인데
높고푸른月留峰엔 구름들도쉬어가네
煙氣祖師父母위해 塔을이고등불켰고
离山禪師어머님은 覺皇殿서祈禱했다
淸白家風그精神은 三寶淨財守護하되
師戒弟子自寶스님 院主職에있을적에
祖室藥을달이려고 寺中生薑달라거늘
無償으론아니되니 生薑代를要求하여
마침내는代金받고 代價만큼건네주어
스승약을달였듯이 一切私情不通했다
海外巡訪다니면서 韓國佛敎宣揚하고
그곳長點導入하여 後學들에提示했다
臨終時를豫知하고 門徒들에당부한후
超然하게入寂하니 生死徃來둘아닐세
天堂佛刹住치말고 衆生界에다시와서
苦海衆生손을잡고 彼岸으로引導지다
佛紀二五五0年(二00六) 九월二0日
大韓佛敎曹溪宗總務院 總務院長 伽山智冠 謹撰
松泉 鄭夏建 謹書
宗團秩
宗正 道林法傳
元老議長 慧光宗山
總務院長 伽山智冠
山中秩
祖室道川道川
門長慧光宗山
禪院長禪燈玄山
禪德金霞宗眼
講主草堂宗谷
閑主松泉宗烈
愚岩宗乞
金老宗杲
宗務所秩
住持抱月 宗三
總務然庵 宗瑞
企劃草岩 德門
敎務海心 三默
財務敬千 愚石
布敎普磨 大了
社會曉潭 一門
護法南德 靈觀
院主德濟
山內庵子秩
緣起庵滿海
聽溪庵宗乞
九層庵明完
彌陀庵覺超
吉祥庵明崑
內院庵智岩
鳳泉庵空門
金井庵覺心
地藏庵梨正
寶積庵大冶
上 庵明賢
龍穴庵智巖
妙香臺虎林
文殊臺大圓
監造
包峯頓明
古玉玄元
施工
慈光佛敎美術院金光烈
刻字漢陽石材
李在榮
恩上佐
宗山
宗源
證空
宗一
宗蜷
宗見
水嶺
宗國
宗誕
平典
宗烈
一讚
宗祐
宗法
宗眼
宗文
宗學
宗玄
宗大
宗覺
宗峰
宗跆
宗基
宗杲
宗乞
宗曉
宗潭
宗雪
宗智
宗碧
宗斗
宗三
宗洪
宗波
宗虛
宗仁
宗業
宗祥
宗標
宗釋
宗谷
宗河
宗南
宗毘
宗巨
宗瑞
能休
宗厚
覺雲
覺默
覺鎰
覺信
覺忍
覺超
覺峰
覺眞
覺門
覺澈
興華
法上佐
金松宗山
金城明煽
金埵宗源
金峰證空
金超宗國
金梅宗一
金鐘宗蜷
金山平典
金井宗見
金華水嶺
松泉宗烈
松谷性經
松山道瑞
松雲無常
位牌上佐
明煽
信徹
明徹
正眞
玄山
明燮
正安
明鏡
明賢
明完
明觀
明虛
明稍
明崑
明弓
錦棟
正訓
萬善
空門
大淵
正峰
正輪
正陀
正華
正門
正山
眞肇
眞空
智山
正修
孫上佐
眞晩
眞機
智岩
慧哲
眞表
海峯
眞秀
午明
眞玉
智嚴
眞性
眞學
眞徹
智觀
慧照
慧明
靈華
正眼
聖訓
靈呑
靈錫
煌燉
靈圓
靈瑞
智仁
靈觀
慧超
靈明
靈國
印牛
圓門
聖門
德門
一門
龍門
常淨
關門
釋門
見徹
慧仁
梵海
智賢
百忍
本海
滿海
如海
運海
慧黙
性黙
玄黙
完黙
元黙
三黙
正牛
禪雲
梵雲
法雲
智圓
智雨
無用
黙山
梵山
釋山
德牛
大冶
愚石
愚華
大了
禪黙
梵禪
德海
信圓
石頭
大圓
德藏
德禪
大周
德濟
行圓
德林
大振
圓覺
圓明
大城
大慧
德洪
德玄
慧珠
圓休
圓一
慧雄
昭潭
智潭
大輪
慧悟
石潭
虎林
德雲
泰然
德明
曉眞
曉光
德眼
德松
愚林
大悟
性覺
愚凡
大禹
石典
德泉
大雄
愚峰
尋源
大然
大隱
愚門
眞黙
南眞
無行
大安
慧山
慧日
智禪
圓照
收觀
仁德
世黙
徹漢
徹圭
徹宗
大乘
石印
慧觀
慧剛
慧禪
南泉
徹雲
徹隆
徹佑
智慧
靈黙
曉正
錫榮
梵眞
湛然
靈寅
觀性
圓光
淨岩
無覺
雲性
大雲
智光
大山
慧門
演觀
德田
德仁
愚見
海德
愚善
智杖
禪行
靈福
靈一
古道
智空
正覺
曾孫上佐
棒頭
梵一
演奎
梵河
常徹
玄光
棒山
棒圓
行法
虛月
梵草
知山
演修
正覺
緣盡
心月
禪慧
演星
常月
常德
華耕
禪曉
無塵
性梵
演梵
本繩
常仁
香林
常國
梵眞
梵天
比丘尼
性海
法船
法照
法鏡
法玄
法喜
法明
法柱
法庭
妙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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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準
祥斌
慧燈
慧穆
慧陀
慈牛
俗家弟子
宗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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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泉
宗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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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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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종사탑과 비양대종사탑과 비는 승탑원 남쪽 구역, 돌난간으로 구획한 공간 안에 봉안되어 있는 리산당 도광스님(1922~1984)과 도천당 도천스님(1922~2011)의 탑과 비이다. 구획의 중앙에 승탑 하나를 두고 그 양옆에 도광 대선사와 도천 대종사의 비가 각각 세워져 있다. 양대종사탑 양대종사탑은 평생 수행 도반이었던 리산당 도광스님과 도천당 도천스님의 사리를 함께 모신 승탑으로 난간 안쪽 중앙에 위치한다. 2011년 도천 스님이 입적하신 후, 스님의 유지에 따라 두 스님의 사리를 함께 안치하게 되었다. 양대종사탑은 팔각형 ... -
도광도천대종사 합동추모재도광 도천대종사 합동 추모재는 음 8월 23일 각황전과 승탑원에서 봉행된다. 화엄 산문을 다시 열어 현재 화엄문도의 뿌리를 만드신 리산 도광(离山導光, 1922~1984)스님과 도천 도천(道天道川, 1922~2011)스님의 합동추모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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