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헌당 태현대종사 탑과 탑비는 1983년 9월 9일 세수 88세에 입적한 동헌 태현(東軒太玄, 1896~1983) 스님의 석종형 사리탑과 행장비이다. 2009년 9월 22일 동헌 태현 스님의 열반 26주기를 추모하여 건립되었다. ‘종설 겸통대비원력 광도중생 동헌당 태현 대선사비명(宗說兼通大悲願力廣度衆生東軒堂太玄大禪師碑銘)’은 가산 지관(伽山智冠, 1932~2012) 스님이 찬술하고, 글씨는 산민(山民) 이용(李鏞, 1949~)이 썼다. 비신의 전면에 전서체로 ‘동헌당태현대선사비명(東軒堂太玄大禪師碑銘)’의 제명(題名)이 가로로 적혀 있다. 비신의 전면과 좌측면에 스님의 행적이 적혀 있고, 후면에는 명사(銘詞)와 종단질(宗團秩), 소임자 명단 등이 기록되어 있다.
원문
(전면)
宗說兼通大悲願力廣度衆生東軒堂太玄大禪師碑銘
橫呑巨海하고 踏倒須彌하니 石虎舞踊하고 木牛放歌로다 三世諸佛은 只言自知요 歷代祖師는 全提不起며 一大藏敎는 詮註不及이요 明眼衲僧은 自救不了로다 舊韓末激動期 한치앞을豫測할수없던苦難의시대에 願力時緣으로佛敎와民族을위하여 태어나신스님이계셨으니 諱는太玄이요 號는東軒이며 戶籍名은完圭요 俗姓은李氏며 本貫은龍仁이다 아버지의諱는德榮 어머니는羅州林氏夫人이시다 어느날母親이滿發한연꽃밭에들어가서 연꽃六九송이를꺾었으니 마지막꺾은한송이연꽃속에서 俊秀한童子僧이튀어나오는 胎夢을꾼다음 一八九六年陰六月一四日(陽七月二四日) 忠淸南道大德郡杞城面山直里一五○番地에서 獨子로태어났다 一九○三年부터 忠南扶餘郡外山面盤橋里漢文書堂에서 童蒙先習과明心寶鑑을비롯하여 大學․詩經․書經․周易․春秋․禮記等 漢學을硏磨하였으며 一九一○年까지는 忠淸南道燕岐郡全東面農長里의廣東學校에서 新學問을익혔다 一九二四年 淸나라第五代世宗인順治皇帝의出家詩를보다가 朕乃大地山河主이나 憂國憂民事轉煩일세 百年三萬六千日이 不及僧家半日閑이라는 句節에이르러頓發信心하여 出家爲僧을決心하고는 孔孟第一道라하나 確信何日中가 親見佛祖道하고 發心行出家라는 出家詩를남기고 智利山七佛庵으로찾아가 龍城震鐘스님을恩師로 春茗冠城律師를戒師로하여 沙彌戒를받고스님이되었다 그로부터恩師스님인龍城스님을侍奉하면서 沙彌科․四集科․四敎科․大敎科를履修하고는 捨敎入禪의때가되어 龍城祖師로부터 是甚麽話頭를決擇받아 如救頭燃으로 金剛山長安寺에서精進하였다 어느날새벽 杜鵑새우는소리를듣는순간 한消息을얻고는 第一公案是甚麽 受持龍城善知識 不撤晝夜參究中 始迷惑中眼忽明이라는 得處를읊었다 一九二五年 妙香山上毘盧庵夏安居中 五月十二日새벽 忽然히色礙障壁이무너짐을感得하고는 無念無想斷煩惱 無我境地超觀念 空卽是色色卽空 眞空妙有本不二라고읊었다 一九二六年四月八日 長城白羊寺에서 錦海瓘英律師로부터比丘戒를받은후 五臺山上院寺禪院으로옮겨精進하였으니 어느날東臺望月峰을바라보다가 歌華嚴法華하고 舞般若涅槃하니 同天地歌舞할세 隨江山究竟이라읊었으니 이렇듯本分事旅程에충실하였다 一九二七年龍城祖師께서 咸陽郡栢田面白雲山에 華果院을設立하고 禪農一致를主唱하였다 농사를짓는틈틈이 金剛經․楞嚴經․起信論․華嚴經․法華經․圓覺經․維摩經․六字靈感大明王經․千手經․禪關策進․禪門撮要․覺海日輪․八相錄․修心正路․歸源正宗․晴空圓日․釋迦史․敎理大典등을翻撰할때 스님께서原稿整理등을도맡아 龍城스님의大衆敎化佛事에助演이되었다 一九三四年八月五日 河東七佛庵雲上禪院에서 長坐不臥하며勇猛精進하던中 臨濟禪師가나타나 너는그다지도할일이없어서 그렇게쭈그리고앉았느냐며 벽력같은喝을하는순간 豁然大悟하였으니 無言智異山이여 無說亦七佛이로다 無問是甚麽하라 無心親白雲이라는 悟道頌을지어 龍城祖師께呈似하였다 禪師曰 汝今如是하니 吾亦如是라 認可하고 東軒이라는幢號를傳해주었다 그로부터保任을위해 順天仙岩寺七殿 華嚴寺塔殿 直指寺千佛殿 서울大覺寺 金剛山摩訶衍 千聖山內院寺 釜山梵魚寺等禪院등에서 後學指導와함께精進하였다 一九五六年五月에는蔚山文殊庵住持 一九五七年엔雪嶽山新興寺住持 一九五九年에는金堤金山寺住持 一九六○年엔全羅北道道宗務院長 一九六一年에는釜山梵魚寺住持 一九六六年에는慶州芬皇寺住持에 各各在職하면서 大衆敎化와宗團中興및淨化佛事
(좌측면)
에 專念하였다 一九六九年九月十一日에는 龍城祖師의祖國獨立과 佛敎를中興시킨偉業을宣揚키위해 財團法人大覺會를設立하고는 宣揚事業은물론門徒大衆들의道場建立에기틀이되었으니 현재大覺財團에登錄된寺庵은一百八十餘個나되어 名實相符한祖師의偉業을顯彰하는礎石이되었다 一九七一年에는大韓佛敎曹溪宗元老委員에推戴되었다 禪師께서는禪敎를兼備하였음은물론 理事에雙通하였으니 公州麻谷寺 義城孤雲寺 長城白羊寺 智異山華嚴寺등 禪院의祖室로있으면서 柱杖子를들고 指東指西하면서 後學을指導하다가 一九八三年陰八月四日(陽九月一○日) 午前一○時正刻華嚴寺九層庵에서 袈裟長衫을갈아입은後 門徒를모아놓고는 出家한初志를忘却하지말고 信心과願行을堅持하면서 衆生濟度와佛法中興을위해 爲法忘軀로 精進하라고 咐囑하시었다 이어八十年前爾是誰며 八十年後我是誰오 日落西山月出東이요 浪山花笑野鳥歌라는 臨終偈를읊은다음 結伽入寂하시니 世壽는八八歲요 法臘은六六夏였다 茶毘한후五色이玲瓏한 舍利八顆가出現하였으므로 門徒들이精誠을모아 이곳에舍利塔碑를세우고奉安하였다 禪師의鴻跡을追慕하며 다음과같이銘하는바이다 銘曰
(후면)
錦江물에 비춘달이 오고가는 자취없듯 鷄龍山頂 連天峰의 충천하는 精氣받아 多劫生의 願力으로 蓮꽃속서 출현하는
童子僧을 胎夢꾼후 一八九六 탄생하니 아버지는 李公德榮 어머니는 羅州林氏 詩書周易 春秋禮記 漢學硏磨 通했지만
百年三萬 六千日이 不及僧家 半日閑인 順治皇帝 出家詩에 孔孟第一 웃으울사 出家詩를 남긴후에 父母몰래 夜半逃走
龍城祖師 恩師삼아 二三歲에 祝髮하다 捨敎入禪 是甚麽로 勇猛精進 十餘年에 七佛庵의 禪院에서 臨濟喝의 경책받고
無言智利 無說七佛 莫問甚麽 白雲無心 廓徹大悟 뜻을담은 悟道頌을 呈似하니 龍城祖師 認可하되 汝今如是 吾亦如是
恩法師인 龍城師의 끼친遺業 宣揚코자 古稀지난 七三歲때 大覺財團 設立하여 有時에는 晝耕夜禪 龍城譯經 도우다가
八十前엔 너는뉘고 八十後엔 나는뉜가 西쪽山에 해가지니 東峰에선 달이뜨네 玲瓏하온 八顆舍利 智利西南 華嚴寺에
塔을세워 奉安하니 人間天上 福田일세 山門頭에 우뚝서서 常說徧說 끝없으니 보는이나 듣는이들 모두함께 成佛지다
佛紀二五五二年(二○○八) 五月 五日 大韓佛敎曹溪宗總務院長 伽山智冠 謹撰 山民 李 鏞 謹書
宗團秩
宗正 道林法傳 元老議長 慧光宗山 總務院長 伽山智冠
山中秩
祖室 道川 門長 宗山 禪院長 玄山 禪德 宗一 宗國 宗眼
講主 宗谷
閑主 水領 宗杲 宗雪 宗潭
爐殿 明稍 眞肇
講師 慧首 默山 德禪
宗務所秩
住持 宗三
總務 宗瑞
企劃 德門
敎務 愚華
財務 愚石
布敎 大了
社會 一門
護法 靈觀
院主 愚林
書記 許權
庵子秩
緣起庵 滿海
聽溪庵 宗乞
九層庵 德濟
彌陀庵 覺超
吉祥庵 明崑
內院庵 智岩
鳳泉庵 宗標
金井庵 覺心
地藏庵 梨正
寶積庵 大治
上 庵 明賢
龍穴庵 智巖
妙香臺 虎林
文殊臺 大圓
門徒秩
恩法上佐
离山導光
信庵道圓
佛心道文
江月道滿
祖印道徹
無持道悟
水鏡道烈
霽月慧圓
道濬正俊
佛海道林
覺海道實
雪峰道住
萇山道業
眞人道敏
圓覺法圓
乳德頤道興
軍法師道惺
法上佐 法政 敬雲 眞夢 寶雨 曉鸞 登雲
在家弟子 道明 道日 道英 法田 法雄 道藏 道範 道學 道印 道上 道正 道弘 道伯 道慶 道行 道月 道空 益弘
法孫上佐
導光系
宗山 明煽 宗源 證空 宗一 宗蜷 宗見
水領 宗國 宗誕 平典 宗烈 一讚 宗祐 宗法 宗眼 宗文 宗學 宗玄 宗大 宗覺 宗峰 宗跆 宗基
宗杲 宗乞 宗曉 宗潭 宗雪 宗智 宗碧 宗斗 宗三 宗洪 宗波 宗虛 宗仁 宗業 宗祥 宗標 宗釋
宗谷 宗河 宗南 宗毘 宗巨 宗瑞 能休 宗厚 覺雲 覺默 覺鎰 覺信 覺忍 覺超 覺峰 覺門 覺澈
興華 性經 道瑞 無常
道圓系
法敏 元功 法龍 智晩 志成 能虛 法相 法榮 法宗 法一 法眞 法山
道文系
普光 法性 法輪 法信 慧能 德相 法眼 敬照 法眞 法明 法守 法照 法日 善法
法正 正法 慧首 慧勤 慧覺 法賢 歡喜 金藏 無盡 覺天 大夢 淸休 雲梧 呑悟 彌光 寶月
慧寅 普門 妙法 普月 法空 法味 法住 法海 德一 慧命 普勝 慧力 智源 正慧 明慧 法藏 月巖
(우측면)
軍法師 慧明 法泉 眞相 慧德 慧法 慧燈 慧光
法相 慧頂 法起 法讚 法華 法勝 法頂 慧國
道徹系 德山 普應 慧堂 慧日 法眼 廣照 通寂
道悟系 承桓 承悟
道林系 無生
道實系 秀雄 西眞 禪光 淨光
道業系 法性 法光 法日 法海
道興系 玄潭
檀那秩
道文系 圓日華 定慧月 殊勝行 柳鍾赫 寶蓮華
道滿系 자비심 노리타
道徹系 김원덕 정안산 한자이 이상도
道悟系 大願成
道林系 주양자 손상림 한행자
道實系 대원행 대원성 김미정
道業系 大道華 觀音得 大成華
道興系 金學寅 林昇賢
道敏系 張宰源 張宰鳳 朴建泳
建立委員長 佛心道文
總 都 監 祖印道徹
資料 部長 萇山道業
財務 部長 覺海道實
施工秩 大韓石像彫刻院
彫刻秩 李在珣(重要無形文化財)
佛紀二五五三年己丑 八月四日
※교열: 불교학술원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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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당탑과 비동헌당탑과 탑비는 현대에 조성된 승탑, 비가 모셔져 있는 승탑원 남쪽 구역에서 오른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동헌당 태현(1896~1983)스님의 사리탑과 비이다. 동헌당 태현스님은 1983년 9월 9일 법랍 66세, 세수 88세로 화엄사 구층암에서 입적하셨다. 입적 후 처음 조성된 탑은 현재 충남 천안시 구룡사로 옮겨졌고, 지금의 탑과 비는 2009년에 새로 조성한 것이다. 같은 해 9월 22일 동헌당 태현 대종사 열반 26주기 추모법회를 거행하고, 사리탑비 제막식을 하였다. 새 탑과 비의 조성을 위하여 도철 스님이 동헌... -
동헌대종사 추모재동헌대종사 추모재는 음력 8월 4일에 각황전과 승탑원에서 봉행된다. 차를 올리기 때문에 다례제라 부르기도 한다. 동헌 태현(東軒太玄, 1896~1983) 스님은 1912년 17세에 서울에서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었던 백용성(白龍城, 1864~1940) 스님을 처음 만났으며, 1918년 23세에 백용성 스님에게서 출가하였다. 동헌 스님은 1969년 재단법인 대각회를 출법시켜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외에도 조계종 원로의원, 화엄사 조실 등을 역임하면서 불교계의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기셨다. 스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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