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의사 순절사적기’는 구례군수 유수현(劉守鉉, 1915~1980)이 지은 것으로, 1962년 구례향교에서 발간한 『속수구례지』 하권에 수록되어 있다.
유수현은 1948년 3월 25일부터 1949년 7월 30일까지 17개월 동안 구례군수를 역임하였다. 그가 군수로 재임하는 동안, 1948년 군 보조와 군민 의연금으로 ‘칠의사 순절사적비’를 건립하였고, ‘칠의사 순절사적기’를 지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구례 현감 이원춘과 구례지사 왕득인 및 그의 아들 왕의성을 비롯한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 등의 순절한 7인의 의사(義士)에 대한 추모의 글이다. 내용은 석주관 전투 당시의 상세한 상황과 참전 인물, 이들에 대한 찬사로 구성되어 있다.
번역문
칠의사 순절사적기(七義士 殉節事蹟記)
군수 유수현(劉守鉉)
이조 선조 25년 임진난에 왜병이 진주성을 함락하고 그 여세로 구례읍 관문인 석주진을 공략하였으나, 방비가 공고함으로 감히 진격하지 못하고 퇴군하였다가, 선조(宣祖) 30년 정유년(丁酉年) 8월 6일에 적의 대병이 다시 본 진을 강습하였다.
당시의 현감 이원춘(李元春)이 진을 지키다 전세가 불리하매 남원으로 퇴진하여, 후일 남원 함락과 함께 전몰하였다. 이때 구례지사 왕득인(王得仁)이 분연히 의병을 일으켜서 적을 맹렬히 공격하다가 기세는 궁하고 힘은 다하여 장렬한 최후를 지으니, 공의 장남 의성(義成)이 설욕의 의로운 검을 들어 올리매, 군내의 지사(志士)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 등이 합세하고, 화엄사 정예승병도 이를 따라서 석주의 왜병을 토멸할 새, 임기응변과 기이한 계책으로 적을 오살하여, 흐르는 피가 내를 이루었으니, 후인이 이를 혈천곡(血川谷) 즉, 피냇골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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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속수구례지(續修求禮誌)』 (하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