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란 일기(丁酉亂 日記)’는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 11월 화엄사의 승장(僧丈) 여일(如一) 스님이 작성한 것이다.
당시 구례의 석주관에서 일본군과 싸우던 왕의성의 의병대가 ‘석주의병소 왕의성,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의 6인의 이름으로 전투 중 식량의 궁핍함을 호소하면서 군량과 승병의 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의 격문을 화엄사에 보냈다. 이 격문은 1798년(정조 22) 2월 대웅전 중수 시 천정에서 우연하게 발견되었고, 그때 정유란 일기도 함께 확인되었다. 일기의 내용은 당시 화엄사에서 석주대장소에 군량 103석을 지원하고 승군 153인을 보냈으나, 모두 석주관에서 순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867년에 작성된 필사본 『충효사구현실기(忠孝祠九賢實記)』에 격문 및 일기가 수록되어 있다.
화엄사에서 발견된 이 두 자료를 근거로 하여 구례 ‘석주관칠의사’의 의병활동 사실이 증명되어 후에 이들에 대한 추앙·선양사업이 추진되었고, 나아가 전란 당시 화엄사 승군의 활약 및 사찰의 경제적 지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원본 사진은 구례군청에서 제공받은 것으로 구례군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전재, 복제할 수 없습니다.
원문
丁酉亂 日記
軍糧壹百三石運下
石柱
大將所
僧軍百五十三名與諸
義士同死於□中
僧丈 如一
丁酉十一月 日
□
※제공: 이종수
번역문
정유란 일기
군량 103석을 석주관 대장소에 보냈다. 승군 153명이 의병들과 함께 모두 그곳에서 전사하였다.
승장 여일
정유년 11월 일
※번역: 이종수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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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당 중창 상량문「호좌 구례현 화엄사 승당 중창 상량문」은 1798년(가경 3) 3월에 용암 윤성(龍庵胤成, 생몰년 미상) 스님이 작성하였다. 윤성 스님은 행주대첩 당시의 승병장이었던 뇌묵 처영(雷黙處英, 생몰년 미상) 스님의 7대손이다. 내용을 보면 승당은 516년(양 무제 대동12)에 사찰의 창건과 함께 세워졌지만, 이후의 일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이후 1634년(숭정 7, 인조 12) 갑술년에 언신(彦信) 비구가 중창하였지만, 163년이 지난 지금 많이 쇄락하여 다시 중창하게 되었다는 내력과 육위송, 축원문으로... -
대웅전 건축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를 올린 겹처마 팔작지붕 집으로 지붕가구는 1고주 7량가이다. 대규모 석축으로 조성한 대지에 가구식 기단을 조성하고 건축물을 배치하였다. 기단은 가는 정다듬을 한 화강석으로 지대석과 탱주, 면석, 갑석을 제작하여 조립한 단층의 가구식 기단이며, 전면 어칸과 우측면 협칸 출입구에 맞춰 6단의 계단을 설치하였다.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하였고, 그 위에 표피만 가공한 자연재에 가까운 둥근 기둥을 올렸다. 기둥머리를 서로 연결하는 창방의 뺄목에 연봉이 조각되어 있는데 공포의 수서와 거의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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