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8년(정조 22) 화엄사 대웅전 수리 당시 천정에서 ‘기서화엄사화상승□(寄書華嚴寺和尙僧□)’ 격문(檄文)이 발견되었다. 이 문서는 1597년 정유재란 당시 구례의 석주의병소에서 왕의성(王義成), 이정익(李廷翼), 한호성(韓好誠), 양응록(梁應祿), 고정철(高貞喆), 오종(吳琮)의 6인의 이름으로 작성되어 화엄사 스님에게 보낸 글이다.
문서에는 자신들이 의병을 일으킨 이유와 함께 응변(應變, 사변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의 절박함을 적었고, 화엄사 스님에게 군량과 승군의 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당시 화엄사에서는 군량 103석과 승군 153인을 지원하였으나, 모두 순절하였다고 기록한 ‘정유란 일기(丁酉亂日記)’가 함께 발견되었다.
석주관 전투에서 순절한 이들의 의병활동을 증명해 줄 관련 문건이 없던 가운데 화엄사에서 발견된 격문과 일기 자료로 인하여, 뒤에 ‘석주관칠의사’로 불린 이들에게 예조의 증직(贈職)이 결정되었고, 왕의성과 그의 아버지 왕득인에게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또한 칠의사 모두 충효사(忠孝祠)에 제향 되는 등 향촌사회의 유력 지배사족으로서 지위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화엄사 역시 전란 중에 승군과 군량 등 사찰에서 인적,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던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다. 1867년에 작성된 필사본 『충효사구현실기(忠孝祠九賢實記)』에 격문 및 일기가 수록되어 있다.
원본 사진은 구례군청에서 제공받은 것으로 구례군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전재, 복제할 수 없습니다.
원문
寄書華嚴寺和尙僧□
別無他言 當此 國家板蕩之時 宅大監立首義興兵接戰石柱 矢窮力盡 天時不利 痛切終天痛切終天 肆予踵義 收殘將 報君恩 更雪父讐 而方進石柱之際 李生員廷翼 韓生員好誠 梁生員應祿 高生員貞喆 吳生員琮 各率奴僕百餘名 搜乞山野 又得避亂人數百名 同聲齊會 擊殺倭賊累百 而贏糧告乏 餘卒盡飢 奈何奈何 汝等亦是 王化中一民 應有一死之心 幸率多少緇徒 兼負寺穀 以助一心 勤王以完大事 千萬幸甚
丁酉□□□□□ 石柱義兵所 王義成
李廷翼 韓好誠 梁應祿 高貞喆 吳琮
※제공: 이종수
번역문
화엄사 화상 승□에게 부치는 글
다른 말씀이 아니오라, 이 국가가 어려운 때를 당하여, 우리 집 대감(왕득인)께서 먼저 의병을 일으켜 석주관에서 (왜적과) 접전하였으나, 화살이 다하고 힘이 빠진 데다 천운이 불리하여 애절하게도 돌아가셨습니다. 외람되이 저도 의를 앞세우고 남은 장졸들을 모아, 임금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석주관에 나아갈 적에, 생원 이정익·한호성·양응록·고정철·오종 등이 각각 노복 백여 명씩을 거느리고 왔습니다. 산과 들에서 찾고 또 피난민 수백 명을 얻어 같은 소리로 의병을 조직하고, 왜적 수백 명을 격살하였는데, 가져 온 양식이 떨어져 나머지 병졸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으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스님들도 역시 임금님의 백성이므로 마땅히 한번 죽는다는 마음으로 다소의 승도들을 거느리고, 겸하여 절의 양식을 지고 와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도웁는 일심으로 임금님을 도와 대사를 완수해주시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정유년 □□월□일 석주관의병소
왕의성,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
※번역: 이종수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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