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에는 통칭 ‘선조어필첩’과 ‘선조대왕어필목각판’으로 불리는 유물이 남아있다. 조선 14대 국왕 선조(宣祖, 재위 1567~1608)의 글씨인 어필(御筆)을 나무에 새긴 목판 2매와 이것을 다시 종이에 인출(印出)한 책 한권이다.
선조는 서예와 그림에 뛰어났고, 많은 글씨를 남겼다. 실제로도 역대 국왕 가운데 명필로 이름났으며, 후대의 인조와 효종의 서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선조의 서체는 단정하고 엄정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특히 그의 해서(楷書)는 조선 초·중기의 사대명필로 손꼽히는 석봉(石峰) 한호(韓濩, 1543~1605)의 글씨와도 유사하다.
화엄사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선조어필첩’의 정식 명칭은 『선묘어필(宣廟御筆)』이다. 이 책은 인출된 낱장의 종이를 배접하여 실로 꿰맨 선장본(線裝本) 형태로 장정된 1책이다. 크기는 가로 31.2㎝, 세로 49.5㎝이다. 푸른색의 앞표지는 마멸이 심하나 ‘어필’의 두 글자가 흐릿하게 확인된다. 또한 별도로 흰 종이에 묵서로 쓴 ‘선조대왕어필각본(宣祖大王御筆刻本)’ 이라는 제첨(題簽)이 남아있다.
『선묘어필』의 본문은 ‘양가각생자(兩家各生子)’로 시작하는 시문(詩文)이며, 중국 당나라 한유(韓愈, 768~824)가 쓴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에 나오는 문장이다. 본문의 마지막은 ‘취천심수(取淺深愁)’로 끝나며, 당나라 이군옥(李群玉, 813?~860? 혹은 808?~862?)의 시 ‘우야정장관(雨夜呈長官)’의 한 구절이다.
책의 말미에는 1630년(인조 8)에 선조의 여덟 번째 아들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 1589~1645)이 쓴 발문(跋文)이 있어 이 책의 간행 경위를 알 수 있다. 즉, 선조에게 받은 어필의 상당수가 병란으로 유실되었고, 세월이 흘러 후대에 전하지 못할까를 염려하여 남은 유묵을 목판에 새긴다는 것이다.
의창군 이광 역시 서예에 조예가 깊었고, 화엄사에는 1636년(인조 14)에 그가 쓴 대웅전의 ‘대웅전(大雄殿)’ 편액과 일주문의 ‘지리산화엄사(智異山華嚴寺)’ 편액이 남아있다. 『선묘어필』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에도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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