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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본말사법

‘사법반포령’ 문서는 화엄사를 선암사로부터 독립시킨다는 법령을 담은 기록이다. 화엄사에서 소장하는 ‘사법반포령’ 문서는 1927년(소화 2) 9월 30일에 인쇄된 것으로 표지, 사법반포령, 화엄사본말사법인가신청서 및 인가서, 화엄사본말사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지에는 ‘조선총독부 각하 인가 화엄사본말사법 화엄사 발행(朝鮮總督府 閣下 認可 華嚴寺本末寺法 華嚴寺 發行)’으로 되어 있고, 묵서로 ‘해운방장(海雲房臟)’이라 적혀있다. 화엄사의 본산승격운동 화엄사는 1911년 조선총독부가 제정, 반포한 사찰령·사찰령시행규칙에 따라 본산(本山)에서 제외되었다. 이에 곧바로 화엄사 주지 박포월(朴抱月, 생몰년 미상) 스님이 화엄사의 본산 지정을 요구하였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1913년 박포월 스님은 본산 신청 청원서를 제출하고, 서울에서 진진응(陳震應, 1873~1942) 스님이 사찰령의 부당함을 역설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에도 박포월, 진진응, 정병헌(鄭秉憲, 1891~1969) 스님 등이 본산승격운동을 추진하였다. 1921년 선암사 추천으로 화엄사 주지에 부임한 김학산(金鶴傘) 스님이 폭행치사하게 되면서 사태는 격화되었다. 1921년 9월에는 구례군민이 화엄사 본산 승격 청원서를 구례군청에 제출해 총독부로 접수되었다. 이후 1922년 총독부에서 선암사와 화엄사 문제를 재조사하였고, 1924년(대정 13) 11월 조선총독부령 제69호에 의거해 화엄사는 선암사로부터 독립해 본산에 추가되었다. 당시 주지 용화 운호(龍華雲鎬) 스님이 1925년 8월 조선총독부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에게 화엄사본말사법 인가 신청을 하였고, 인가는 1927년 9월 19일 조선총독 대리 육군대장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에 의해 승인되었다. ‘사법반포령’은 같은 달 28일 반포되어 10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화엄사의 본산승격운동과 관련된 상세 자료는 자료관을 참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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