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생산‧보관하던 문서이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생산‧접수한 문서들을 당시 규정에 따라 조선총독부 문서과로 옮겨 보관했으며, 광복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관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문서 공개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조선총독부박물관과 관련된 인물‧조직‧활동 등에 대한 자료와 고적조사 사업, 유물의 구입과 수증, 발견매장문화재 입수 등 다양한 경로의 소장품 확보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총독부박물관 고적조사자료는 고적조사위원회, 복명서, 조사보고, 고적‧유물 목록, 사진‧도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적조사위원회’ 문서철은 1916~1932년에 열린 고적조사위원회 회의에 관한 것으로 행정문서뿐 아니라 편지‧전보‧도면‧사진‧메모 등이 포함된다. ‘복명서’는 1916~1942년까지의 고적 조사 담당자의 출장 결과보고서이고, ‘조사보고’는 1916년 이후 고적의 위치‧유래‧상태‧역사적 가치 등을 조사한 문서이다. ‘고적‧유물 목록’은 고적과 유물을 조사하여 등록한 고적 및 유물 대장(1916~1933)과 식산국 산림과에서 제작한 고적대장(1916~1917) 등이 있다. ‘사진‧도면’은 고적 조사과정에서 제작한 유물의 사진과 실측도 등이다.
화엄사에 관한 자료는 1933~1941년 사이 각황전 수리 공사 및 조사에 대한 문서가 가장 많다. 특히 각황전 수리공사 보조금 신청부터 공사 감독, 회계 실지 검사, 설계‧실측‧복원 등 각종 도면, 공사 계획서, 기술자 파견, 재료, 이러한 과정에서 오고간 전보 등 다양한 문서가 존재한다. 또한 화엄석경, 화엄사 경내 보물 등의 지정, 동‧서오층석탑, 사사자 삼층석탑, 올벚나무에 대한 자료가 있다.
이외에도 화엄사의 본산 승격과 관련하여 선암사와의 문제를 조사한 사건 보고서나 선암사 본말 재산대장 등이 있다. 선암사 본말 재산대장은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본(1940)과 함께 참고할 만하다. 황전리의 임야 조사서에서도 일제강점기 화엄사의 사찰 영역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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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석경화엄석경은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경이다. 석경의 모서리에 고정과 연결을 위한 홈이나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벽처럼 세워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판의 크기는 세로 52㎝, 가로 65㎝, 두께 2.7~6.4㎝, 폭 3.1~34㎝이다. 글씨 위쪽과 아래쪽에 가로로 그은 선과 세로로 행간을 구분하는 계선을 긋고, 그 안에 경전의 내용을 새겼다. 파편 석경에는 적게는 몇 자에서 많게는 50여 자의 글자가 있으며, 해서체로 쓰였다. 석경은 경문, 변상도, 범어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용은 품(品)으로 구분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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