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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당 직첩 방함 유리건판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사진은 모두 약 3만 8천여 장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보관하던 것을 인수한 자료이다. 이 유리건판 사진 중에는 전각, 석탑 및 석경, 인물과 문서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화엄사와 관련된 사진 약 1백 70여점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화엄사 승대장군 사명 송운 대선사 직첩 방함’(소장품번호 건판456)이라는 4점의 사진이 있다. 이것은 임진왜란 당시 승장으로서 의승병을 이끌고 혁혁한 공을 세운 송운 유정(松雲惟政, 1544~1610) 스님에게 내려진 직첩을 적은 문서이다. 스님의 법명은 유정,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四溟), 종봉(鍾峰), 송운 등이 있다. 밀양 출신으로 속명은 임응규(任應奎), 본관이 풍천이다. 1559년 17세에 직지사(直指寺)의 신묵(信默) 화상에게 출가하였다. 18세에 승과에 응시하여 선과(禪科)에 장원급제 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승장으로 활약하면서, 대일(對日) 외교에도 주력하였다.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 1562~1611)와의 회담 중에 ‘그대의 목이 우리의 보배’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후에 강화사(講和使)라는 사신의 자격으로 일본으로 가서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약탈한 문화재와 억류 중인 조선의 피로인(被虜人)의 송환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당시 조정에서는 승려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국난에 큰 공을 세운 승병들에게 관직을 제수하였다. 특히, 승장이었던 송운 유정 스님에게는 여러 차례에 걸쳐 당상관직을 제수하고, 스님의 조상 3대에 걸쳐 추증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사진의 제목은 ‘화엄사 승대장군 사명 송운 대선사 직첩 방함(僧大將軍泗溟松雲大禪師職帖芳啣)’이다. 내용은 절충장군·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동지중추부사 등 직관의 제수 내력, 봉안시 축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축문은 판서(判書) 윤순(尹淳), 판서 이기진(李箕鎭, 1687~1755), 오광운(吳光運, 1689~1745) 등이 썼다. 이 문서에서는 화엄사와 관련된 사항을 찾을 수 없다. 또한 축문에 ‘보제존자 청허당 대선사 각령지하(普濟尊者淸虛堂大禪師覺靈之下)’ 및 ’현도 홍제존자 사명 송운 대선사 존령지하(懸道弘濟尊者泗溟松雲大禪師尊靈之下)‘ 등의 표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밀양 표충사 관련 자료로 추정되나, 유리건판 사진의 제목에 어떠한 이유로 화엄사가 붙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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