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양종대가람 문서는 예조(禮曹)에서 1702년(강희 41) 화엄사에 내린 사격(寺格)으로, 당시 화엄사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1702년(숙종 28) 계파 성능(桂坡聖能, ?~?) 스님이 장육전을 중건하고, 화엄사는 선(禪)과 교(敎)를 아우르는 ‘선교양종대가람’으로 승격되었다.
발급기관 ‘예조’와 ~‘자(者)’로 끝나는 사격의 내용, 날짜, 담당관의 수결로 구성되어 있다. 예조와 날짜, 담당관의 수결은 사격의 내용 행보다 한 칸 높여 적었다. 문서는 크기가 가로 90㎝, 세로 88㎝이고, 장수는 1장이다. 연호 부분에 전서(篆書)로 된 ‘예조지인(禮曹之印)’ 도장이 찍혀 있다. 문서의 끝에는 예조 판서(判書) 이하 참판(參判), 참의(參議), 정랑(正郎), 좌랑(佐郞)의 직함이 있는데, 판서와 참의의 수결이 적혀 있고, 정랑과 좌랑의 끝 부분은 마모되어 확인할 수 없다. 현재 성보박물관 수장고에 소장중이다.
원문
禮曹
湖南求禮地智異
山大華巖寺爲禪敎
兩宗大伽藍者
康熙四十一年二月 日
正郞
判書(手決) 叅判 叅議(手決)
佐郞
※입력: 이진선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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