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 대선사 각성 문서는 1622년(천계 2) 9월 예조(禮曹)에서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에게 내려보낸 것이다. 발급기관 ‘예조’와 각성스님에게 하사한 ‘부종수교(扶宗樹敎) 행해원묘(行解圓妙) 비지쌍운(悲智雙運) 변재무애(辯才無礙) 대선사’의 칭호, 날짜, 담당관의 수결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세로 98.5㎝, 가로 64.5㎝이고, 장수는 1장이다. 칭호와 날짜 부분은 발급기관과 담당관의 수결보다 한 칸 높여 적었다. 연호 부분에 전서(篆書)로 된 ‘예조지인(禮曹之印)’ 도장이 찍혀 있다. 문서의 끝에는 예조 판서(判書) 이하 참판(參判), 참의(參議), 정랑(正郎), 좌랑(佐郞)의 수결이 적혀 있다. 현재 성보박물관 수장고에 소장중이다.
원문
禮曹
扶宗樹敎行解圓妙悲智雙運辯才無礙
大禪師覺性
天啓二年九月 日
正郞(手決)
判書(手決) 叅判(手決) 叅議(手決)
佐郞(手決)
※입력: 이진선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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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통사-남한산성 축조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상편, 조선 인조 2년 조에 수록되어 있다.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은 임진왜란 때 조직된 팔도의 승군을 지휘하는 직책이다.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은 1624년 팔도도총섭에 임명되어 승군을 이끌고 남한산성 축조에 참여하였고, 1650년(효종 1) 화엄사를 ‘선종대가람(禪宗大伽藍)’으로 지정할 때 함께 ‘겸팔도도총섭(兼八道都摠攝)’ 문서를 하사받았다. 원문 ○仁祖憲文王 (李儜)在位二十七年 (甲子)二年 (明天啟四年) (佛紀二六五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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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 문서 유리건판 사진예조 문서 유리건판 사진으로는 천계 2년(1622) 3월에 부휴 선수(浮休善修, 1543~1615) 스님에게 발행된 추증 문서(소장품번호 건판453)와 같은 해 9월에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에게 발행된 문서(소장품번호 건판 454) 등 2점이 있다. 두 문서는 현재 화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중이다. 일제강점기 화엄사 사진은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라는 사진자료집과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공개하고 있는 유리건판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고적도보』는 우리나라 고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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