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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고승전-금월선사전

원문
曹溪宗錦月禪師傳 法名燦珎 號錦月 姓朴 貫密陽 父如化 母崔 明治十三年庚辰八月八日生於順天郡麗水面西齋里 庚戌十一月二十一日亡 嗚呼惜哉 齠年才名梅營之盛稱 而早失慈氏 家道蕩敗勢不能讀 十五歲甲午 從嚴訓而投曹溪山松廣寺 龍船大師見而便悅 結師佐緣 得戒於混溟大德 十七歲丙申仍遊學 先叅浩錦溟兩師堂下 後訪方丈山震應講師軒下 盡得其末後大事又受具於震應之室 二十五甲辰九月十日 受法於恩父堂下 碧潭祖之七世孫 住普照室中 衲子雲奔 頗有腥名當戊己之亂亂身 方丈之華嚴寺 爲住席之請 隨緣徃返 庚戌春偶以身病還本數月 刀圭爲事 至十一月二十一日 奄忽寂然 壽三十一 臈十六 靑年才子之無常 一何速哉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
번역문
조계종 금월 선사전(曹溪宗錦月禪師傳) 법명은 찬진(燦珍)이고 호는 금월(錦月)이며, 속성은 박씨인데 본관은 밀양이고, 아버지 이름은 여화(如化)이며 어머니는 최씨이다. 명치 13년 경진년(1880, 고종 17) 8월 8일에 순천군 여수면 서재리에서 태어나 경술년(1910) 11월 21일에 입적하였다. 오호라, 안타깝다. 어린 나이에 재명(才名)이 있어서 매영(梅營)이라고들 크게 칭찬하였다. 그러나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가계가 탕진되어 책을 읽을 형편이 못되었다. 15세 갑오년(1894)에 아버지의 권유를 따라서 조계산 송광사에 나아갔는데, 용선(龍船) 대사가 보고는 크게 기뻐하면서 스승과 상좌의 인연을 맺었고, 혼명 대덕(混溟大德)에게 계를 받았다. 17세 병신년(1896)에는 유학(遊學)을 떠났는데, 먼저 호붕(浩鵬)과 금명(錦溟)의 두 법사의 강당을 참문하였다. 이후에 방장산의 진응 강사(震應講師)의 강헌을 참방하여 그 말후대사(末後大事, 최후의 가장 궁극적인 가르침)를 모두 터득하였고, 또한 진응 강사의 조실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25세 갑진년(1904) 9월 10일에 은부 용선 대사의 법당에서 법을 받았는데, 벽담(碧潭) 조사의 제7세손이다. 보조암의 조실에 주석하자 납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자 명성이 멀리 퍼졌다. 무신년(1908)의 난을 맞아서 방장산 화엄사에 은신하였는데 그곳에서 머물러 줄 것을 요청받았지만 인연을 따라서 송광사로 돌아왔다. 경술년(1910) 봄에 몸에 병이 들어서 송광사로 돌아온 지 수개월 만에 약 숟가락에 의존하여 살아갔다. 그해 11월 21일에 이르러 조용하게 입적하였다. 세수는 31세이고, 법랍은 16년이다. 재주가 있는 청년이 무상하게도 어찌 그리 서둘러 갔는지 모르겠다.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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