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曹溪宗師圓華禪師傳
諱德柱 字守微 號圓華 姓鄭 潭陽人父基喆 母吳氏 夢星殞入懷而娠 道光十九年己亥五月二十五日生 年七八家貧不就學 遊必庠傍 窃聽弦誦之聲 讀必移晷 書必忘饌 日唯兩食 夜唯一宿 目所見必敎 耳所聞必記 父老▼(言+恣)嗟而愛之 十五癸丑 酷遭孤哀三年服畢 嗚呼哀哉 我安適歸乎 十七轉到智異山華嚴寺 托迹行唫 有西藕長老剃染 戒於抱虛大德 參應月優曇菡溟學經 受禪於優曇 質史於王老二十八丙寅 建幢於華嚴之斗月大師門 卽浮休十二世孫也 住金井庵 開堂普說 三十戊辰 有御命禁府之邏取乘棚上京 抵訓鍊衙庭 答捕將之問草小不恐怖 前來歷事 儒釋經趣 對如燭炤 洞其無辜 無事放還 可謂探珠於龍頷之下 投肉於虎牙之中 自是聲薌益彰 令譽遠播 四大庵修道庵 金寶九鳳 恒爲遊履之場 手不釋大悲呪之圓珠 口不掇妙蓮花之梖葉 所著法華記會鏡錄 所寫七書大典南華經語錄等 合百餘▼((局-口)*二) 藏諸案以爲常目 光緖十九年癸巳五月二十五日示疾 召門人曰 四大是假 五蘊非實 無以名而顯世 無以假而爲實 至三十日 浴衣趺坐 而奄然示化 茶毘于華嚴南麓掛眞于西堂 壽五十五 夏三十八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
번역문
조계종사 원화 선사전(曹溪宗師圓華禪師傳)
휘는 덕주(德柱)이고 자는 수미(守微)이며 호는 원화(圓華)이고, 속성은 정(鄭)씨로서 담양 출신이며 아버지 이름은 기철(基喆)이다. 어머니는 오씨인데 별이 떨어져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을 하여, 도광 19년 기해년(1839, 헌종 5) 5월 25일에 낳았다.
선사의 나이 7, 8세 무렵에 집안이 가난하여 취학을 하지 못하자 반드시 학교에 가서 놀면서 책 읽는 소리를 몰래 들었고, 책을 읽다가 정해 놓은 시간을 놓쳐 버렸으며, 글을 쓸 때는 꼭 밥 먹는 시간을 잊어버렸다. 낮에는 오직 두 끼만 먹었고 밤에는 오직 한 번만 잤으며, 눈으로 본 것은 반드시 익혔고 귀로 들은 것은 반드시 기억하였다. 동네 노인들이 혀를 차면서도 선사를 사랑하였다. 15세 계축년(1853, 철종 4) 안타깝게도 고애자(孤哀子)가 되어 3년의 복제(服制)를 마치고 말했다. “아, 서글프구나.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
17세 때(1855, 철종 6) 여러 곳을 떠돌다가 지리산 화엄사에 도착하여 일신의 행각과 호구를 의탁하였다. 서우 장로(西藕長老)에게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었으며, 포허 대덕(抱虛大德)에게 계를 받았고, 응월(應月)과 우담(優曇)과 함명(菡溟)에게 참문하여 경전을 배웠으며, 우담에게 선법을 받았고, 노장들로부터 역사를 익혔다.
28세 병인년(1866, 고종 3)에 화엄사의 두월(斗月) 대사 문하에서 건당을 하였으니, 부휴 선수의 제12세손이다.[1]부휴 선수(浮休善修)의 제12세손이라는 점은 의문이다. 왜냐하면 그 법계는 부휴 선수―벽암 각성(碧岩覺性)―취미 수초(翠微守初)―백암 성총(栢岩性聰)―우계 준익(友溪雋益)―화봉 회변(華峯懷卞)―두월 우홍(두월우홍)―원화 덕주(圓華德柱)로 계승되었으므로 제8세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금정암에 주석하면서 개당하여 보설(普說)을 하였다.
30세 무진년(1868, 고종 5)에 어명을 받드는 금부(禁府)의 순라군에게 붙들려서 수레를 타고 상경하였다. 훈련장에 끌려가서 자신을 붙잡아 온 장교의 질문에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이전의 역사(歷事) 및 유교와 불교의 경전의 지취(旨趣)에 대하여 명쾌하게 답변을 하자, 선사의 무고가 분명해졌기 때문에 무사하게 석방되었다. 가히 용의 턱밑에서 여의주를 찾아온 것과 같았고 호랑이의 입속에다 고기를 던져 주는 것과 같다고 말할 만하다. 이로부터 그 이름이 더욱더 드러나게 되어 그 가상한 명성이 멀리까지 퍼졌다. 사대암(四大庵)과 수도암(修道庵)과 금보암(金寶庵)과 구봉암(九鳳庵) 등으로 항상 도량을 옮겨 다닐 때에도 손에는 대비주(大悲呪)의 염주(圓珠)를 놓지 않았고, 입으로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그치지 않았다. 저술로는 『법화기(法華記)』와 『회경록(會鏡錄)』이 있고, 서사(書寫)한 책으로는 사서삼경(四書三經)으로 불리는 칠서대전(七書大典)과 『남화경(南華經)』과 어록 등 도합 100여 권을 모든 책상에 쌓아 두고 상목(常目)으로 삼았다.
광서 19년 계사년(1893, 고종 30) 5월 25일에 병을 보이자 문인들을 불러 놓고 말했다. “사대는 빈껍데기이고 오온은 실체가 아니다. 명칭이므로 세상에 드러남이 없고 빈껍데기이므로 실체가 없다.” 5월 30일에 이르러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가부좌한 채로 조용히 입적하였다. 화엄사의 남쪽 기슭에서 다비를 하였고, 서당에 진영을 모셨다. 세수는 55세이고, 법랍은 38년이다.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관련주석
- 주석 1 부휴 선수(浮休善修)의 제12세손이라는 점은 의문이다. 왜냐하면 그 법계는 부휴 선수―벽암 각성(碧岩覺性)―취미 수초(翠微守初)―백암 성총(栢岩性聰)―우계 준익(友溪雋益)―화봉 회변(華峯懷卞)―두월 우홍(두월우홍)―원화 덕주(圓華德柱)로 계승되었으므로 제8세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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