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曹溪宗師鳳巖禪師傳
諱樂賢 姓金 谷城石谷人 早孤遁跡 轉到智異山華嚴寺 依智性長老 零染受具 策杖南遊 至曹溪默庵堂下 四五年間 盡沾法雨 食其牛 佩其印 庚戌春付信衣 傳鈯斧 莫重法恩 恐或難報 還赴于和尙足下 汲侍數年 終喪葬塔 能自經綸 原始要終後 漸次南行 至大興成道庵 自作少林家風杜門壁觀 只求無常者數稔矣 甲寅三月三日 無疾而奄然 火浴之夕 祥光亘天 一珠超灰 有高足無知者破碎 嗚呼嗚呼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
번역문
조계종사 봉암 선사전(曹溪宗師鳳巖禪師傳)
휘는 낙현(樂賢)이고 속성은 김씨이며 곡성(谷城)의 석곡(石谷) 출신이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 족적을 감추고 돌아다니다가 지리산 화엄사에 도착하였다. 거기에서 지성 장로(智性長老)에 의지하여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았다.
석장을 짚고 남쪽 지방을 유행하다가 조계산 묵암당 최눌 문하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4, 5년 동안 스승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고 스승의 밥을 먹고 스승의 법인을 받았다.
경술년(1790, 정조 14) 봄에 신의(信衣)를 부촉받고 궁극의 깨침을 전수받았는데, 그 법은(法恩)이 막중하여 혹 은혜에 보답하지 못할까 염려될 정도였다. 다시 화상의 휘하로 돌아와서 수년 동안 시봉한 뒤에 입적하자, 장례를 마치고 부도탑을 건립하는 것도 스스로 경륜(經綸)하였다. 원시요종(原始要終)[1]원시요종(原始要終) : 사물이나 일이 발전되어 가는 기원과 결과를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한 후에 점차 남쪽 지방으로 유행하여 대흥사 성도암(成道庵)에 이르러 스스로 소림 가풍을 진작하여 문을 걸어 잠그고 벽관(壁觀)을 하면서 오로지 무상(無常)을 참구하느라고 수년을 보냈다.
갑인년(1794, 정조 18) 3월 3일에 병 없이 엄연하게 입적하였다. 다비하던 날 밤에 상서로운 광명이 하늘에 뻗쳤고, 영롱한 구슬이 재 속에서 발견되었지만 고족(高足)이 무지하여 그것을 파쇄해 버리고 말았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고 안타깝다.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관련주석
- 주석 1 원시요종(原始要終) : 사물이나 일이 발전되어 가는 기원과 결과를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