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虛舟禪伯傳
師名德眞。號戲舟。夙植善根。幼願出家。投入曹溪。獨守孤節。學成道達。受仰[1]「仰」甲本正誤表作「印」。行職。退衆樂獨。避人而人來。匿跡而跡露。或住松廣。或住仙岩。或住桐裡七佛。或住佛日楞枷。住白雲。住頭輪。住達摩。道甲之上見性。伽智之內院。白精之物外。華嚴之九層。燕谷之文殊。龍興之普賢。內藏之圓寂。禪雲之兠率。西方之上雲。雲門金塘華岩安心文殊。皆其住錫處。再遊京山。應雲峴之召。祈祝於鐵原之寶盖。高山之雲門。到處四衆雲集。一食五觀泉湧。不着之衣自至。不食之供並臻。非夙植之善。豈能若是。受戒者。受禪者。受法者。受業者。不論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沙。沙彌沙彌尼。式蹉摩那。信男信女。即從坐起[2]「坐」甲本正誤表作「座」。。合掌啓請。如在靈山拈華示衆。泣者笑者。皆得寶而歸。信受奉行。然白玉之玷。師之未察。勝己者厭。理之常也。雲蔽日月。日月何損。光緖戊子十月十三日。示寂。禪風遂寥寥。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
번역문
허주선백전(虛舟禪伯傳)
스님의 법명은 덕진(德眞)이고 호는 허주(虛舟)이다. 스님은 과거 세상에서 선근(善根)을 심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출가하기를 서원하다가 조계산으로 들어가 홀로 절개를 지키며 스님이 되었다. 학업을 이룩하고 도를 통달하자 스승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소임을 맡아 대중들을 교화하기 시작했다.
허주 스님은 대중들을 물리치고 홀로 정진하기를 좋아하여 사람을 피했으나 그럴수록 학인(學人)들은 더욱 몰려들었으며, 자취를 숨기려 하면 할수록 자취가 더욱 드러났다.
혹은 송광사(松廣寺)에 머물기도 하고 혹은 선암사(仙岩寺)에 머물기도 했으며, 혹은 동리산 칠불암(七佛庵)에 머물기도 했고 혹은 불일암(佛日庵)과 능가사(楞伽寺)에 머물기도 하였다. 이후로도 백운암(白雲庵)에 머물다가 두륜산에 머물기도 하였고, 달마사(達摩寺)·도갑사(道甲寺) 상견성암(上見性庵)·가지산 내원암(內院庵)·백양산 물외암(物外庵)·화엄사(華嚴寺) 구층탑(九層塔)·연곡사(燕谷寺) 문수암(文殊庵)·용흥사(龍興寺) 보현암(普賢庵)·내장산 원적암(圓寂庵)·선운사(禪雲寺) 도솔암(兜率庵)·서방산 상운암(上雲庵)·운문사(雲門寺)·금당사(金塘寺)·화암사(華巖寺)·안심사(安心寺)·문수사(文殊寺) 등이 모두 허주 스님이 주석하였던 곳이다.
스님은 다시 경산京山에 들렀다가 운현궁(雲峴宮, 흥선대원군)의 부름에 응하여 철원에 있는 보개사(寶蓋寺)와 고산 운문사(雲門寺)에서 대원군을 위하여 기도 축원을 하였다.
스님이 가는 곳마다 사부대중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으며, 하루에 한 끼니만 먹으니 오관(五觀)[3]오관(五觀) : 스님이 밥 먹는 때에 자기의 공·덕행·허물·도업성취 등을 위하여 약으로 생각하고 먹으며 마음을 닦는 일을 말한다.이 샘물 솟아오르듯 하였다. 또한 스님은 옷을 입지 않아도 늘 옷이 이르고 음식을 먹지 않아도 공양거리가 다 이르곤 하였으니, 이것이 과거 세상에 심은 선업(善業)이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을 수가 있겠는가?
계율을 받은 제자와 선법을 받은 제자, 그리고 법을 받은 제자와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사미·사미니·식차마나(式叉摩那)·신남(信男)·신녀(信女)를 따질 것 없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가르침을 청하는 모습은 마치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부처님께서 꽃을 뽑아 대중들에게 보이며 가르침을 주셨던 그 모습과 같았다.
설법을 마치고 나면 감격해서 우는 이도 있고 웃는 이도 있었으며, 모두 보배를 얻어 가지고 돌아가 믿음으로 받고 받들어 실천하였다. 그러나 백옥白玉에도 티가 있는 법, 허주 스님에게 한 가지 결함이 있다면 자기 자신보다 나은 이를 싫어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임을 살피지 못했다는 점이다. 구름이 끼어 해와 달을 가린다 해도 해와 달이 무슨 손상을 입겠는가?
광서(光緖) 무자년(고종 25, 1888) 10월 13일에 입적하였다. 그가 입적하자 한창 떨치던 선풍(禪風)도 서서히 쇠잔해 가기 시작하였다.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관련주석
- 주석 1 「仰」甲本正誤表作「印」。
- 주석 2 「坐」甲本正誤表作「座」。
- 주석 3 오관(五觀) : 스님이 밥 먹는 때에 자기의 공·덕행·허물·도업성취 등을 위하여 약으로 생각하고 먹으며 마음을 닦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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