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하편, 사바교주석가여래영골사리부도비(娑婆敎主釋迦如來靈骨舍利浮圖碑) 조에 수록되어 있다.
통도사 사리탑의 내력을 기록한 비문이다. 1705년(숙종 31) 계파 성능(桂坡性能, 생몰년 미상) 스님이 지리산에서 통도사로 오게 되어 금강계단을 중수하고,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의 글을 받아 1706년(숙종 32) 2월에 석가여래영골사리부도비를 건립하였다. 자장율사가 당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임란 때 사명대사가 왜적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금강산에 옮겼다가 서산대사의 뜻에 따라 다시 통도사에 봉안하였음을 밝혔다.
석비 뒷면의 비음(碑陰)은 계파 성능 스님이 짓고, 보윤대사(普允大師, 생몰년 미상)가 썼다. 내용은 석가모니의 생애와 중국 현장법사의 구법과 사리 전래, 자장율사의 문수보살 친견 등을 기록하였다. 이어서 통도사의 사리 봉안과 순치 연간(1644~1661)의 중수, 1705년의 비 건립 내력 등을 서술하고 관련 인사와 지원 사찰을 열거하고 있다.
원문
○娑婆敎主釋迦如來靈骨舍利浮圖碑(略錄)(通度寺)
宣敎郎守司諫院正言知製敎蔡彭胤撰 李震休書 權珪篆
…
嶺南之梁州通度寺。舊有金剛戒壇。安釋迦世尊靈骨舍利浮屠。我聖上。(肅宗)三十年甲申。性能大師。謀於眾曰。有而佛。無而佛寶。顧今鍾泐而壇缺。無顯刻。非所以尊之也。曰。我友雲眞熙大師。閣以先之。其啓我矣。僉曰。唯。師於吾師之門。功德多有。嘗鐫大華嚴經矣。嘗修方丈山丈六殿矣。今日之事。亦唯師。於是。早夜以圖。易其泐而增治其缺。且樹之碑。丐余辭。
…
※출처: ‘CBETA Online’, 中華電子佛典協會
번역문
사바교주 석가여래 영골사리 부도비(娑婆敎主釋迦如來靈骨舍利浮圖碑)(약록)(통도사)
선교랑수사간원정언지제교 채팽윤(蔡彭胤)이 찬술하고, 이진휴(李震休)가 쓰고, 권규(權珪)가 전각(篆刻)하다.
…
영남의 양주 통도사에 예부터 금강계단이 있어서 석가세존의 영골 사리 부도를 안치하였다. 우리 성상(숙종) 30년 갑신년(1704)에 성능대사(性能大師)가 무리들과 도모하기를, ‘부처님은 있는데 부처의 보배는 없다. 돌아보건대 지금 석종(石鍾)은 갈라지고 계단(戒壇)은 틈이 생겨 현각(顯刻)이 없으니 석가를 존중하는 바가 아니다. 어느 날 우운 진희(友雲眞熙) 대사가 먼저 전각을 지어 나를 이끌었다’고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대사께서는 우리 스승의 문하에서 공덕이 많습니다. 일찍이 『대화엄경』을 새기셨고, 방장산(方丈山)의 장륙전(화엄사 각황전)을 수리하셨습니다. 오늘의 일 또한 대사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밤낮으로 도모하여 그 갈라진 것을 다스리고 이지러진 것을 고쳤다. 또 비를 세우고 나에게 글을 짓게 하였다.
…
※출처: 『역주 조선불교통사』관련기사
-
무용당유고-장육전 중수 경찬소「경상도 양산 통도사 성골령탑 급 호남 구례 화엄사 장육 중수 경찬소」는 무용 수연(無用秀演, 1651~1719)스님이 양산 통도사의 성골 영탑과 구례 화엄사의 장륙전 중수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글이다. ‘경찬소’란 공덕을 찬탄하는 글로, 불사 참여와 성취는 매우 복된 일이라고 치하했던 것이다. 이 글은 수연스님의 문집인 『무용당유고』(1724년 간행) 하권에 수록되어 있다. 장륙전 중수는 1699년에 시작하여 1702년에 완공되었고, 통도사 영탑은 1704년에 중수를 시작하여 1706년에 완공되었는데 두 불사 모두 계...
-
계파 성능계파 성능(桂坡聖能, 생몰년 미상)은 법호가 계파, 법명이 성능이다. 1699년 화엄사 장륙전 중건을 시작해 1702년에 완공하였다. 1706년에는 통도사에서 석가여래영골사리탑비를 건립하고, 계단탑을 증축하였다. 1711년(숙종 37)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 되어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축성하였다. 저서로 『북한지(北漢誌)』가 있다. 이 책은 1745년(영조 21) 성능 스님이 도총섭의 직에서 물러날 때 산성(山城)에 관한 일 14조(條)를 지지(地誌)의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그 내용은 북한산과 산성, 그 일대의 사찰... -
각황전각황전은 왕실의 지원으로 1702년(숙종 28)에 계파성능(桂波性能)스님이 재건한 불전이다. 이 자리에는 장륙전이라는 이름의 불전이 있었고, 내부에 화엄석경이 봉안되어 있었으나, 정유재란 때 건물은 소실되고 화엄석경은 파괴되어 만여 점이 넘는 조각으로만 남아 있다. 전란 이후 벽암 각성스님의 중창 당시 대웅전만 재건되고 장육전은 재건하지 못하였는데, 1699년에 홍각, 등계, 성능스님이 영남 예천 학가산에서 와서 재건의 업적을 이어 2층 7간의 대전을 원통전과 함께 재건하였다. 공사는 1699년(기묘) 봄부터 1702년...
더보기 +
관련자료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