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조선불교통사-남한산성을 지키는 치영을 유지하는 역할을 각 사찰이 맡았다

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하편, 남한산사수성치영(南漢山寺守城緇營) 조에 수록되어 있다. 남한산성을 지키는 치영을 유지하는 역할을 각 사찰이 맡았다는 내용이다. 치영은 승군(僧軍)의 군영(軍營)이며, 임진왜란 때 조직된 팔도의 승군은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 지휘를 하였다.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은 1624년 팔도도총섭에 임명되어 승군을 이끌고 남한산성 축조에 참여하였다. 계파 성능(桂坡聖能, 생몰년 미상) 스님은 1702년 화엄사 장륙전을 중건하였다. 1705년에는 통도사에서 석가여래영골사리탑비를 건립하고, 계단탑을 증축하였다. 1711년 팔도도총섭이 되어 북한산성을 축성하였는데, 도총섭의 직에서 물러날 때 산성에 관한 일 14조(條)를 지지(地誌)의 형태로 기록하여 1745년에 『북한지』를 편찬하였다.
원문
○南漢山寺守城緇營 朝鮮以來。崇儒抑佛。若干僧徒。不敢喘息。一自壬辰之役。僧軍奏功之後。僧徒對朝家示有用之才。朝家認僧徒爲不棄之物。於是。思所以安處之道。驅使之方。命使僧徒。築南漢城。卽其一例。而寓僧於兵之制度乃出焉。僧軍之制度出。 … 尚玄曰。南漢築城。綂率僧徒者。有僧覺性(碧巖大師)應聖等。北漢築城。奔走竭力者。有僧聖能盖覺性。應聖。聖能。皆名僧也。聖能智異山華嚴寺僧也。嘗鑴大華嚴經矣。嘗修方丈山丈六殿矣。(智異山華嚴寺覺皇殿也)又嘗樹通度寺娑婆敎主釋迦如來靈骨舍利浮圖碑(乞文於蔡希庵彭胤見本碑銘)矣能師。又紹介護巖子(仙嚴寺若休大師也)於蔡希庵。(具見順天仙巖寺重修碑)嗚呼。聖能。其誠於佛事者也。勤於王事者也。又能成人之美者也。(蔡碑俱作性能者。聖能之誤也。當以北漢志中自署。其名者爲是也。) ※출처: ‘CBETA Online’, 中華電子佛典協會
번역문
남한산성을 지키는 치영을 유지하는 역할을 각 사찰이 맡았다(南漢山寺守城緇營) 조선시대 이후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약간의 승도(僧徒)만이 남아 겨우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임진왜란 때 승역(僧役)으로 승군이 공을 세운 이후, 조정에서 승도에 대해 유용한 인재라는 시각은 가지면서도 버리지 않을 물건 정도로만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승도를 두는 장소와 부리는 방도만 생각하였다. 승도들에게 남한산성을 축성하도록 명령한 것이 그 하나의 사례이다. 그리고 승려들에 관한 병제(兵制)를 만들어서 승군 제도가 등장하였다. … 상현은 말한다. 남한산성을 축성하면서 승도를 통솔한 사람으로는 각성(벽암 대사), 응성(應聖) 등이 있었다. 북한산성을 축성하는 데 분주히 힘을 쏟은 사람은 성능이었다. 대저 각성, 응성, 성능은 모두 명승(名僧)이다. 성능은 지리산 화엄사 승려이다. 일찍이 대화엄경을 새겼고 방장산(方丈山) 장륙전(丈六殿)을 중수하였다.(지리산 화엄사 각황전이다.) 또한 통도사의‘사바교주 석가여래 영골사리 부도비’를 세웠다.(비문을 채희암(蔡希庵)과 팽윤(彭胤)에게 청한 사실이 이 비명에 보인다.) 성능대사는 또한 호암자(護巖子)(선암사 약휴 대사이다.)를 채희암에게 소개하였다.(모두 순천 선암사 중수비에 보인다.) 오호라! 성능대사는 그 정성이 부처님의 일(佛事)에 이르고, 근면함은 왕의 일(王事)에 이른다. 또한 능히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룬 분이다.(채희암 이 지은 비문에 성능(性能)이라고 쓴 것은 성능(聖能)의 오류이다. 마땅히 『북한지』 중에 스스로 쓴 그 이름이 옳다.) ※출처: 『역주 조선불교통사』

관련기사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