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하편, 노왕옥후석탑재도(露王玉后石塔載到) 조에 수록되어 있다. 수로왕후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파사석탑을 싣고 온 것에 대한 내용이다. 『지리산지(智異山誌)』는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의 저술로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인용된 문장에 의하면, 내용은 ‘지리산(地利山)’의 명칭과 지리산 봉우리에 얽힌 불교 관련 이야기 등으로 구성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원문
露王玉后石塔載到
智異山華嚴寺陳震應禪師。著有智異山誌。頗多叅考者。故錄之于左。
智異山。古書或云地利山。余常疑智異之命名。十五年前。靈源寺幻明老人處。見一古書。名曰朝鮮名山菩薩住處記。其中有曰。智異山。文殊菩薩。與八萬眷屬。常住說法云云。於是積年疑念。一時撲落。智異之稱。怳然覺悟。此山全體。都是文殊一身也現今諸方禮懺。皆稱五峯聖主七佛祖師大智文殊師利菩薩華嚴疏云。文殊專主般若。六祖金剛經序云。般若以無住爲體妙有爲用。又古書云。般若諸佛之母。又牛頭山無着文希禪師。入五臺山。親見文殊。作偈讚之曰。廓周沙界聖伽藍。滿目文殊接話談。言下不知開活眼。回頭只見舊山巖云云。又德山宣鑑禪師。逢賣餅老婆。三世心都不可得點那個心之言下。罔知所措。老婆卽文殊化身云云。據上諸說。對照現今智異之諸般名稱。如合符契。此下一一別配。此山摠稱智異云者。上云大智文殊師利六字中。摘智利二字爲名。其義則此山爲文殊常住處故也。然則智利爲正名。而今云香異者。後人取音同而改之。上字是而下字誤也。古書云地利者。下字是而上字誤也上字取今名。下字取古名。合於正名而無誤也。智異山大華嚴寺東二十里。有般若峯上云文殊。專主般若故也。般若峰上有上佛墓下佛墓兩石塚。鏡巖集云。道詵國師理兩鐵佛。以鎮走脉云云。以愚料之。或佛母之誤傳耶。上云般若諸佛之母故也。般若峯下有妙皇臺。般若峯相望之地有無住菴。上云般若以無住爲體妙有爲用故也般若峯西有吉祥峯。文殊此云妙吉祥故也。吉祥亦稱老嫗峯。文殊或現老婆身故也。吉祥峯下有大華嚴寺。例如支那清凉山(五臺山)大華嚴寺也。又吉祥峯下有文殊洞洞門有九萬里。文殊洞相對之白雲山麓。有五峯山。吉祥峯相望之地有無着臺。又吉祥峯越便之地。有七佛菴。上云無着禪師入五臺山親見文殊故有無着臺。上云文殊菩薩。與八萬眷屬。常住說法云云。文殊化身萬文殊。又有八萬眷屬。合爲九萬故。有九萬里也。現今智異山上峯稱天王峯。峯下神社稱聖母社者。高麗朴全之所撰龍巖寺記云。智異山主聖母天王故也。又聖母天王云者。三國遺事所云仙桃聖母之類也然以愚料之。亦有所以。智異山神卽文殊化身。文殊七佛之祖師。義同七佛之母故云聖母。或般若諸佛之母故云聖母也。又稱天王者。文殊或現天王身故也。又世傳智異山神。以老嫗現身故。吉祥峯亦稱老嫗峯。天王峯下又有聖母社云云。豈非文殊化身賣餅老婆之謂歟。如上杜撰。難免具眼者大笑。然但據現今愚夫愚婦之稱號之實而述之。初無臆說於其間。唯考據君子。幸一覽之。云云
※출처: ‘CBETA Online’, 中華電子佛典協會
번역문
수로왕후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파사석탑을 싣고 오다(露王玉后石塔載到)
지리산 화엄사 진진응(陳震應) 선사의 저서에 『지리산지(智異山誌)』가 있다. 빈번히 참고하는 자가 많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지리산은 옛 책에 지리산(地利山)이라고도 하였다. 내가 항상 ‘지리(智異)’라고 한 이름을 의심하여 15년 전에 영원사(靈源寺) 환명(幻明) 노인이 사는 곳에 가서 옛 책을 보니, 조선의 명산으로 보살이 머무는 곳이라는 기록이 있었다. 그중에 지리산 문수보살은 8만 권속과 더불어 항상 머물며 법을 설한다는 등의 말이 보였다. 이에 해가 갈수록 의심하고 생각하다가, 일시에 지리란 칭호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다. 이 산의 전체가 모두 문수의 한 몸이고, 지금 모든 방향에서 예배하고 참회한다. 다섯 봉우리의 성주인 칠불조사(七佛祖師)는 문수사리보살을 칭한다.
『화엄경소』에 문수는 반야를 전한다고 하며, 육조금강경서(祖金剛經序)에 반야는 무주(無住)로 체(體)를 삼고 묘유(妙有)로 용(用)을 삼는다고 하였다. 또한 옛 책에서 반야는 모든 부처의 어머니라고 하고, 또 우두산(牛頭山)의 무착 문희(無着文希) 선사가 오대산에 들어가 문수를 친견하고 게송을 지어 찬탄하였다. ‘시방세계 두루 성스러운 절, 눈에 가득히 문수와 말을 나누는구나. 당시는 무슨 뜻을 열었는지 모르고, 머리를 돌리니 다만 푸른 산 바위뿐이더라.’ 또 덕산 선감(德山宣鑑) 선사는 떡을 파는 노파를 만나서 ‘삼세(三世)의 마음을 얻을 수 없는데 어떤 마음으로 떡을 드시려고 합니까’라는 말을 들었는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늙은 노파는 바로 문수의 화신이라고 한다.
위의 모든 설에 근거해 지금과 대조해 보면, 마치 지리산의 모든 이름과 꼭 들어맞는다.
아래에서 하나씩 차례대로 짝지어 보겠다.
이 산을 지리(智利)로 총칭하는 것은 위에서 말한 대지문수사리(大智文殊舍利)의 여섯 자 중에 지리(智利) 두 자를 이름으로 삼았음이 적당하다. 그 뜻은 바로 이 산이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리는 올바른 이름이다. 그래서 지금 ‘지리’라고 하는 것은 후세 사람들이 동음(同音)을 취해 고친 것이다. 앞의 글자는 올바르지만 뒤의 글자는 잘못되었다. 옛글에서는 지리(地利) 중 뒤의 글자는 옳지만 앞의 글자는 잘못되었다고 했다. 앞의 글자는 지금의 이름을 취하였고, 뒤의 글자는 옛 이름을 취하였다. 올바른 이름에 합당함으로 틀림이 없다. 지리산 대화엄사(大華嚴寺) 동쪽 20리에 반야봉이 있으니 위에서 말한 문수이며, 온전히 반야라 할 수 있다.
반야봉 위에 상불묘(上佛墓), 하불묘(下佛墓) 두 개의 돌무덤이 있다. 『경암집(鏡巖集)』에서 말하기를 ‘도선국사(道詵國師)는 두 철불을 다스려 눌러서 맥을 뛰게 하였다’고 했다. 이것은 어리석게 헤아린 것이니, 혹시 ‘불모(佛母)’가 잘못 전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위에서 말하기를 반야는 모든 부처의 어머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반야봉 아래에 묘황대(妙皇臺)가 있고, 반야봉이 서로 바라보는 곳에는 무주암(無住菴)이 있다. 위에서 말한 반야는 무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는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반야봉 서쪽에 길상봉(吉祥峯)이 있으니, 문수는 우리나라 말로 묘길상(妙吉祥)이기 때문이다. 길상은 또한 노구봉이라고도 한다. 문수 혹은 노파의 몸을 보았기 때문이다.
길상봉 아래에 대화엄사가 있는데, 예를 들면 중국 청량산(오대산) 대화엄사와 같다. 또 길상봉 아래에 문수동이 있으며, 동문(洞門)은 9만 리에 있고, 문수동은 백운산(白雲山) 산기슭을 마주하는 오봉산(五峰山)에 있다. 길상봉이 마주 보는 곳에 무착대(無着臺)가 있다. 또 길상봉저 너머에는 칠불암(七佛菴)이 있다. 위에서 말한 무착선사가 오대산에 들어가 친히 문수보살을 보았기 때문에 무착대라고 하였다. 위에서 말한 문수보살이 8만 권속과 더불어 항상 거주하며 법을 설한다.
문수가 만 가지 문수로 화신(化身) 하고 또 8만 권속이 있어서 합하면 9만이 되기 때문에, 9만 리에 있다. 지금 지리산 위 봉우리를 천왕봉(天王峯)이라고 칭하며, 봉우리 아래 있는 신사(神社)를 성모사(聖母社)라고 칭하는 것은 고려 박전(朴全)이 찬한 『용암사기』에서 말하기를 ‘지리산에는 성모천왕이 거주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모천왕이라는 것은 『삼국유사』에 전한 바 선도성모(仙桃聖母) 따위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 이해한 것이니, 그 이유는 지리산의 신(神)은 문수화신으로 문수칠불의 조사이며, 뜻이 칠불의 어머니와 같기 때문에 성모라고 한다. 혹은 반야는 모든 부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성모라고 한다. 또 ‘천왕’이라고 하는 것은 문수 혹은 천왕의 몸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또 세간에서는 지리산의 신이라고 전하는데 노인의 몸으로서 나타내기 때문이다. 길상봉은 또한 노구봉이라고 칭한다.
천왕봉 아래는 또 성모사(聖母社)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어찌 문수화신을 떡 파는 노인이라고 하겠는가?
위에서 서술한 것들은 전거가 확실하지 않아 눈을 갖춘 자라면 반드시 크게 웃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만 지금은 어리석은 부녀자들이 부르는 호칭에 그 진실을 의지하여 이를 서술한다. 애초에 그 사이에 억설(臆說)이 없으므로, 오직 군자들이 참고하고 근거로 삼기 위해 한 번 다행일 것이다.’
※출처: 『역주 조선불교통사』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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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통사-화엄사와 진진응 스님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하편, 범어일방제종지(梵魚一方濟宗旨) 조에 수록되어 있다. 원종에 반대하여 한용운 스님 등이 범어사에서 임제종의 종지를 세운 것을 밝힌 내용이다.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은 법호가 진응, 법명이 혜찬, 속성이 진씨(陳氏)이다. 15세에 화엄사에서 출가하였고, 당대에 강백으로 명성이 높았다. 1910년 박한영(朴漢永)·한용운(韓龍雲) 스님 등과 함께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 종정(宗正) 회광(晦光)의 일본 조동종(曹洞宗) 연합 맹약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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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 국사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는 자가 옥룡자(玉龍子), 호가 연기(烟起), 속성은 김씨, 영암 사람이다. 혹은 최씨라고도 하고, 신라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 재위 654~661)의 서얼이었다고도 한다.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華嚴寺)에서 수학해 대장경에 통달하였다. 846년 동리산(桐裏山) 개산조 혜철(惠徹, 785~861) 선사에게서 ‘말 없는 말과 법 없는 법(無說說無法法)’의 법문을 듣고 미묘한 이치를 깨달았다. 850년 23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이후 여러 사찰을 다니며 불법을 구하였고,... -
진응 혜찬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은 법호가 진응, 법명이 혜찬, 속성이 진씨(陳氏)이다. 15세에 화엄사로 출가하였다. 이후 화엄사, 선암사 등지에서 경론을 수학하다가 24세에 응암 치영(應庵致永) 스님의 법맥을 이었다. 스님은 1910년 박한영(朴漢永)·한용운(韓龍雲) 등과 함께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 종정(宗正) 회광(晦光)의 일본 조동종(曹洞宗) 연합 맹약 체결에 반대해 이를 저지하였다. 1913년 2월 쌍계사에서 호은 문성(虎隱文性) 스님에게 구족계와 대승계를 받았다. 이를 인연으로 진응 스님은 화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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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응종사탑진응종사탑은 2단으로 조성된 승탑원의 북쪽 구역 아랫줄에 위치한다. 탑의 주인공인 진응 종사는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1)스님이다. 스님은 1873년 12월 24일 출생하고, 1941년 법랍 54세, 세수 69세로 입적하셨다. 진응종사탑은 전체 높이 115㎝, 탑신 높이 94㎝, 상륜 높이 14㎝, 기단 폭 75㎝, 탑신 폭 70㎝의 석종형 승탑(石鍾形僧塔)이다. 같은 승탑원에 있는 1660년경 조성된 벽암각성탑 계열을 잇는 종 모양에 충실한 탑이다. 탑은 둥근 기단에 종 모양 탑신과 연화문이 새겨진 둥근 ... -
경허 성우(1849~1912)경허 성우(鏡虛惺牛) 스님은 근대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로서 중생 교화와 불교 중흥에 이바지한 위대한 선승(禪僧)이다. 침체된 불교계에 새로운 중흥조로 출현하여 무애자재로운 생활 속에서 전등(傳燈)의 법맥을 이으며, 선불교(禪佛敎)를 진작시킨 혁명가이자 대승(大乘)의 실천자였다. 스님의 속명은 송동욱(宋東旭), 법명은 성우(惺牛), 법호는 경허(鏡虛)이다. 본관은 여산(廬山)으로 1846년 전주 자동리에서 부친 송두옥 모친 밀양 박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9세에 경기도 과천 청계사(淸溪寺)로 출가하여 계허(桂虛, 생몰년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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