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중편, 율종 조에 수록되어 있다. 영암 월출산의 대은 낭오(大隱朗旿, 1780~1841) 율사는 스승 금담 보명(金潭普明, 1765~1848) 선사 문하에서 출가하였다. 하동 칠불암에서 용맹기도를 하던 중 대은 스님이 먼저 서상계(瑞祥戒)를 받았고, 스승 금담 선사에게 서상계를 전하였다. 이후 대은 낭오 율사의 계맥(戒脈)은 대은-금담-초의-범해-제산-호은으로 이어졌다. 용문사의 호은 율사는 화엄사의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에게 법을 전수하였다.
원문
律宗
○月出之大隱律師東師列傳。
…
故以法系言之金潭爲大隱之師。以戒脉言之。金潭爲大隱之資而以戒法傳于大興寺之草衣禪師草衣傳之梵海和尚。又梵海授戒之弟子曰大興之翠雲仙岩之錦峯。海印之霽山等諸和尚是也霽山禪師。又傳于本寺之龍城應海南泉等諸和尚及龍門之虎隱律師虎隱律師傳于七佛之起龍。雙溪之冠城。宗炫及華嚴之震應等諸和尚慶南一帶及全羅道各寺法侶皆受大戒或比丘戒于虎隱和尚。大隱律宗。至是昌大。
※출처: ‘CBETA Online’, 中華電子佛典協會
번역문
율종(律宗)
○월출산(月出山) 대은율사(大隱律師) 『동사열전(東師列傳)』
…
따라서 법계(法系)로 말한다면 금담(金潭)이 대은(大隱)의 스승이 되고, 계맥(戒脈)으로 말한다면 금담은 대은의 제자가 된다. 이어서 대흥사의 초의(草衣) 선사에게 계법을 전하였고, 초의선사는 범해(梵海) 화상에게 전하였다. 또 범해가 계를 전해 준 제자를 꼽자면 대흥사의 취운(翠雲), 선암사의 금봉(錦峰), 해인사의 제산(霽山) 등 여러 화상들이 있다. 제산선사는 또 이 절의 용성(龍城)· 응해(應海)·남천(南泉) 등의 여러 화상들과 용문사(龍門寺)의 호은(虎隱) 율사에게 전하였고, 호은율사는 칠불암의 기룡과 쌍계사의 관성(冠城)·종현(宗炫) 및 화엄사의 진응(震應) 등 여러 화상들에게 전하였다. 이처럼 경남 일대와 전라도 각 사찰의 승려들이 모두 호은화상으로 부터 대계(大戒)나 비구계를 받았는데, 대은의 율종이 이에 이르러 크게 번창하였다.
※출처: 『역주 조선불교통사』관련기사
-
조선불교통사-율호 호은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하편, 범어일방임제종지(梵魚一方濟宗旨) 조에 수록된 기사의 일부이다. 내용은 호은 문성(虎隱文性, 1850~1918) 스님이 통영에서 수륙재를 베풀었으며, 화엄사 등지에서 계단을 설치하였을 때 스님을 초청해 화상아사리로 삼았다는 것이다. 화엄사의 금강계단에 대해서는 사과 박필종의 공덕비에서도 보인다. 호은 대율사(大律師)로 불리는 스님은 속명이 박문성(朴文性), 호구산(虎丘山) 용문사(龍門寺)에서 출가하여 법호를 호은이라 하였다. 대은 낭오(大隱朗旿, ...
-
호은 문성호은 문성(虎隱文性, 1850~1918) 스님은 법호가 호은, 법명이 문성이며, 속성은 밀양 박씨(朴氏)이다. 16세에 남해 용문사(龍門寺) 경허 능언(景虛能彦)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고, 금우 필기(錦雨弼基) 화상에게 계를 받았다. 이후 범어사, 송광사, 태안사, 쌍계사, 해인사, 화엄사 등지에서 수행하였다. 1881년 4월 용문사에서 수륙대회(水陸大會)를 설행하고, 1908년 7월 해인사 상선원(上禪院)에 금강계단을 설치하였다. 호은 스님은 사과(司果) 박필종(朴弼鍾),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 1864~1921...
-
진응 혜찬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은 법호가 진응, 법명이 혜찬, 속성이 진씨(陳氏)이다. 15세에 화엄사로 출가하였다. 이후 화엄사, 선암사 등지에서 경론을 수학하다가 24세에 응암 치영(應庵致永) 스님의 법맥을 이었다. 스님은 1910년 박한영(朴漢永)·한용운(韓龍雲) 등과 함께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 종정(宗正) 회광(晦光)의 일본 조동종(曹洞宗) 연합 맹약 체결에 반대해 이를 저지하였다. 1913년 2월 쌍계사에서 호은 문성(虎隱文性) 스님에게 구족계와 대승계를 받았다. 이를 인연으로 진응 스님은 화엄...
-
박필종박필종(朴弼鍾)은 사과(司果) 벼슬을 지낸 20세기 전후의 인물이다. 사과는 정6품으로 실제 업무가 없는 무관직이다. 남해 용문사 천왕각 앞에 세워진 사시비(捨施碑)에 ‘대대로 벼슬한 집안의 후예(簪纓世裔)’라는 표현을 고려하면, 박필종은 관료를 배출한 집안 출신일 것이다. 그는 불심이 깊어 여러 사찰에 재산을 희사하였다. 특히 호은 문성(虎隱文性, 1850~1918) 스님의 권선으로 중국 상해에서 대장경을 구입해 화엄사로 보냈으며,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에게 6천 원을 희사해 대웅전, 각황전, ...
더보기 +
관련자료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