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상편, 전라남도 구례군 지리산 대화엄사 조에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화엄사의 역대 조사(祖師), 사격(寺格)의 변화, 일제강점기 화엄사 본∙말사 승격 운동, 역대 화엄사 가람의 규모와 현존 가람의 명칭, 소장 유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문
○全羅南道求禮郡智異山大華嚴寺
按寺乘。梵僧緣起。或云烟起。不知何代人。開創梵剎。緣起祖師。率三千義學之徒大弘圓敎。遂使宗風。滿海東矣。新羅元曉大師。留錫于海會。義湘國師。於本寺海藏殿傳大敎。道詵洞眞兩師亦留禪錫。賢俊大德。結華嚴經社。當時雕刻華嚴經于石壁。今皆殘燬無餘。唯有破片。堆在覺皇殿佛卓下。高麗洪慶定仁祖衡諸師弘大敎。朝鮮中葉浮休善修禪師。與其嫡嗣碧巖覺性大師。住錫本寺。弘通禪敎。孝宗大王元年庚寅。賜禪宗大伽藍之美號。肅宗大王二十七年辛巳。錫大華嚴寺禪敎兩宗大伽藍之嘉名焉。大正年間。仙巖寺本末寺法。已經編入於末寺首班地。華嚴寺反對異議遂至提出于朝鮮總督府。盖此華嚴寺。自顧其歷史由緒之久遠。寧欲獨立自主。而不願附庸於他寺。惟彼仙巖寺。雖憫其寺法認可之遲延。終乃一向固執。而不欲變改其原案。如是兩寺有蚌鷸相持之勢。所以當局爲猶豫未决之題。必欲更加十分調査。後始可告一段落也。至如智異三寺。(泉隱燕谷鰲山)惟視華嚴一寺。同其去就。今兹觀望焉。
按大華嚴寺伽藍名稱(自羅至麗廣張額數略錄)曰大雄常寂光殿(二十一間)七層塔(一座)喜見菩薩石像(一軀)光明臺(一雙)露柱(一雙)丈六殿二層(四面七間)四壁石刻(華嚴經)海莊殿(三十間)圓敎國師影堂(三間)世尊舍利塔(九層一座)栴檀林(十三間)光學藏三十一間(新羅憲康大王脩媛權氏輸穀設華嚴經會稱之曰光學莊)祝壽殿(十三間)水陸殿(九間)無說殿(五間)圓融寮(十五間)梵音寮(十一間)沙彌寮(五間)大陽門兼宗室位(七間)王子閣(三間)侍者寮(三間)東西方丈(各五間)東西雲集(各七間)邀月寮(五間)送月寮(五間)翫月寮(三間)迎賓寮(七間)送客室(七間)東西養老房(各七間)石幢子(一座)大石槽(一座)烟起祖師先覺影堂(三間)海東六祖影堂(三間)十聖影堂(三間)奉天院兼燃燈閣(十三間)元曉庵(三間)義湘庵(三間)竹祖庵(三間)西南弘敎院兼東西方丈(七十間)金堂普光明殿(二層五間)鍾閣(三層三間)驃訶犍拏講堂(二十一間)海會堂(三十一間)元曉影堂(三間)庫舍(百間)馬廐(七十間)浮屠殿(浮屠前有石像戴母而立俗云烟起祖師與其母化身云云東日留峯西月留峯)烟起寮(三十間)拱北堂(三間)庭中黃金塔(二座其一三十三層其一二十八層)報更堂(三間)
現存伽藍名稱。曰覺皇殿。大雄殿。圓通殿。冥府殿。羅漢殿。靈山殿。寂默堂。三殿。凝香閣。塔殿。滿月堂。德藏殿。天王門。金剛門一柱門。萬歲樓。九層庵。鳳泉庵。內院庵。寶積庵。上院庵。金井庵。四聖庵。(俗稱鼇山寺)(燕谷寺(華嚴寺別院))圓通庵。(泉隱寺。(華嚴寺別院)禪堂。會僧堂。大持殿。上持殿。藥師庵。下東庵。三日庵。修道庵。上禪庵。牛飜庵。)緣起祖師塔。緣起祖師石像。緣起祖師母塔。芙蓉靈觀禪師浮屠。逍遙太能禪師塔。碧巖大師浮屠。龍潭慥冠禪師浮屠。雲谷禪師浮屠。松坡大師浮屠。德雲禪師塔。石幢子。石燈籠。露柱。世尊舍利塔喜見菩薩石像。石槽。懶翁王師願佛。西山大師衣鉢。
大華嚴寺圈內寺庵共計二十寺
※출처: ‘CBETA Online’, 中華電子佛典協會
번역문
전라남도 구례군 지리산 대화엄사
사승(寺乘)에서 살펴본다. 범승(梵僧) 연기(緣起)는 연기(烟起)라고도 하는데 어느 때 사람인지 알수 없지만 범찰(梵刹)을 개창하였다. 연기조사는 3천의 의학(義學)의 무리들을 거느리고 크게 원교(圓敎)를 펼쳐, 마침내 그 종풍(宗風)이 해동에 가득 차게 하였다. 신라 원효대사가 해회당(海會堂)에 머물렀고, 의상국사가 이 절의 해장전(海藏殿)에서 대교(大敎)를 전하였다. 도선(道詵)·동진(洞眞) 두 선사가 역시 주석하였고, 현준(賢俊) 대덕이 화엄경사(華嚴經社)를 결성하여 당시 석벽(石壁)에 화엄경을 새겼는데, 지금은 다 부서져서 남은 것이 없고, 다만 그 파편만이 각황전(覺皇殿) 불탁(佛卓) 아래에 쌓여 있다.
고려의 홍경(洪慶)·정인(定仁)·조형(祖衡) 등 여러 스님들이 큰 가르침을 펼쳤다. 조선조 중엽에 부휴 선수(浮休善修) 선사와 그의 적사(嫡嗣) 벽암 각성(碧巖覺性) 대사가 이 절에 머물며 선교(禪敎)를 홍통하였다. 효종대왕(孝宗大王) 원년 경인년(1650)에 ‘선종 대가람’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내렸고, 숙종대왕 27년 신사년(1701)에 ‘대화엄사 선교 양종 대가람’이라는 좋은 이름을 내렸다.
대정 연간에 선암사(仙巖寺) 본·말사법이 말사 수반지로 편입하였으나, 화엄사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반대하여 마침내 그 뜻을 조선총독부에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이 화엄사는 스스로 돌이켜보더라도 그 역사와 유서가 오래되었으므로 차라리 독립 자주하기를 바라지 다른 절에 부속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저 선암사만이 비록 사법 인가가 지연될까 걱정하면서도 끝내 고집하고 그 원안(原案)을 고치려 하지 않았 다. 이와 같이 두 절이 마치 조개와 도요새가 서로 버티는 형국이었기 때문에 당국에서도 유예시키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다시 충분히 조사하고 난 후 일단락을 짓고 비로소 결과를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자 지리산의 세 개 절(천은(泉隱)·연곡(燕谷)·오산(鰲山))은 오직 화엄사 하나만 바라보고 그 절과 거취를 함께하며 지금은 관망하고 있는 형편이다.
대화엄사의 가람 명칭(신라 때부터 고려 때까지 확장한 수를 대강 기록한다.)을 살펴본다. 대웅상 적광전(21칸) 7층탑(한 좌(座)) 희견보살의 석상(1구) 광명대(1쌍) 노주(露柱)(1쌍) 장륙전 2층(사면 7칸) 4벽 석각(『화엄경』) 해장전(30칸) 원교국사 영당(3칸) 세존 사리탑(9층 좌) 전단림(13칸) 광학장 31칸(신라 헌강대왕 때 수원 권씨(脩媛權氏)가 곡식을 내어 화엄경회를 베풀고 광학장이라고 했다.) 축수전(13칸) 수륙전(9칸) 무설전(5칸) 원융료(15칸) 범음료(11칸) 사미료(5칸) 대양문 겸 종실위(7칸) 왕자각(3칸) 시자료(3칸) 동서 방장(각 5칸) 동서 운집(각 7칸) 요월료(5칸) 송월료(5칸) 완월료(3칸) 영빈료(7칸) 송객실(7칸) 동서 양로방(각 7칸) 석당자(1좌) 대석조(1좌) 연기조사 선각영당(3칸) 해동육조영당(3칸) 십성영당(3칸) 봉천원 겸 연등각(13칸) 원효암(3칸) 의상암(3칸) 죽조암(3칸) 서남 홍교원 겸 동서 방장(70칸) 금당보광명전(2층 5칸) 종각(3층 3칸) 표하건나강당(21칸) 해회당(31칸) 원효영당(3칸) 고사(100칸) 마굿간(70칸) 부도전(부도 앞에 어머니를 이고 서 있는 석상이 있는데, 세속 사람들이 연기조사와 그 어머니의 화신이라고 한다. 동쪽은 일류봉, 서쪽은 월류봉이다.) 연기료(30칸) 공북당(3칸) 마당 가운데 황금탑(2좌인데 하나는 33층, 또 하나는 28층) 보경당(3칸)
현재의 가람 명칭 : 각황전, 대웅전, 원통전, 명부전, 나한전, 영산전, 적묵당, 삼전, 응향각, 탑전, 만월당, 덕장전, 천왕문, 금강문, 일주문, 만세루, 구층암, 봉천암, 내원암, 보적암, 상원암, 금정암, 사성암(속칭 오산사) (연곡사(화엄사 별원)), 원통암, (천은사(화엄사 별원) 선당, 회승당, 대지전, 상지전, 약사암, 하동암, 삼일암, 수도암, 상선암, 우번암), 연기조사탑, 연기조사 석상, 연기조사 모탑, 부용 영관선사 부도, 소요 태능선사탑, 벽암대사 부도, 용담 조관 선사 부도, 운곡 선사 부도, 송파 대사 부도, 덕운 선사탑, 석당자, 석등롱, 노주, 세존 사리탑, 희견보살 석상, 석조, 나옹왕사 원불, 서산대사 의발.
대화엄사의 권역 안에 있는 사암은 모두 합해 20개 절이다.
※출처: 『역주 조선불교통사』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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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석경화엄석경은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경이다. 석경의 모서리에 고정과 연결을 위한 홈이나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벽처럼 세워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판의 크기는 세로 52㎝, 가로 65㎝, 두께 2.7~6.4㎝, 폭 3.1~34㎝이다. 글씨 위쪽과 아래쪽에 가로로 그은 선과 세로로 행간을 구분하는 계선을 긋고, 그 안에 경전의 내용을 새겼다. 파편 석경에는 적게는 몇 자에서 많게는 50여 자의 글자가 있으며, 해서체로 쓰였다. 석경은 경문, 변상도, 범어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용은 품(品)으로 구분된다. ... -
선종대가람 문서선종대가람 문서는 예조(禮曹)에서 1650년(순치 7) 화엄사에 내린 사격(寺格)으로, 당시 화엄사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왜란으로 소실된 화엄사는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의 중창으로 다시 사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에 1650년(효종 1) 조정에서는 당시 각성 스님이 주석하고 있던 화엄사를 ‘선종대가람’으로 승격시켰다. 발급기관 ‘예조’와 ~‘자(者)’로 끝나는 사격의 내용, 날짜, 담당관의 수결로 구성되어 있다. 예조와 날짜, 담당관의 수결은 사격의 내용 행보다 한 칸 높여 적었다. 문서... -
선교양종대가람 문서선교양종대가람 문서는 예조(禮曹)에서 1702년(강희 41) 화엄사에 내린 사격(寺格)으로, 당시 화엄사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1702년(숙종 28) 계파 성능(桂坡聖能, ?~?) 스님이 장육전을 중건하고, 화엄사는 선(禪)과 교(敎)를 아우르는 ‘선교양종대가람’으로 승격되었다. 발급기관 ‘예조’와 ~‘자(者)’로 끝나는 사격의 내용, 날짜, 담당관의 수결로 구성되어 있다. 예조와 날짜, 담당관의 수결은 사격의 내용 행보다 한 칸 높여 적었다. 문서는 크기가 가로 90㎝, 세로 88㎝이고, 장수는 1장이다. 연호 부... -
속편구례지와 속수구례지『속편구례지』는 1922년 도유사(都有司) 고정한(高定漢) 등이 간행한 지리지로 『봉성지(鳳城誌)』의 편제에 따라 상·하편으로 구성하되, 내용을 수정·증보한 것이고, 『속수구례지』는 『속편구례지』를 개정·증보하여 1962년 6월 30일 구례향교에서 유학자들이 상·하편으로 발간한 지역단위 지리지이다. 『속편구례지』와 『속수구례지』에 보이는 화엄사에 관한 내용은 체제와 구성이 동일하여 후자의 것만을 소개한다. 경오등록서(庚午謄錄序, 1870)의 지소청(紙所廳) 항목은 『봉성지』와 동일하며, 영문(營門)과 관아에서 사용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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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본말사법‘사법반포령’ 문서는 화엄사를 선암사로부터 독립시킨다는 법령을 담은 기록이다. 화엄사에서 소장하는 ‘사법반포령’ 문서는 1927년(소화 2) 9월 30일에 인쇄된 것으로 표지, 사법반포령, 화엄사본말사법인가신청서 및 인가서, 화엄사본말사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지에는 ‘조선총독부 각하 인가 화엄사본말사법 화엄사 발행(朝鮮總督府 閣下 認可 華嚴寺本末寺法 華嚴寺 發行)’으로 되어 있고, 묵서로 ‘해운방장(海雲房臟)’이라 적혀있다. 화엄사의 본산승격운동 화엄사는 1911년 조선총독부가 제정, 반포한 사찰령·사찰령시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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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례『조사례(祖師禮)』는 매년 3월 3일 화엄사의 역대 조사(祖師) 스님을 추모하기 위한 다례재를 올릴 때 추숭의 대상을 적어 놓은 고승들의 명단이다. 여기에는 신라불교조 개산초조인 연기(緣起) 조사로부터 청하당 탄정(淸霞堂彈靜) 선사에 이르기까지 총 26명의 조사 스님 법명이 차례로 기록되어 있다. 즉 신라부터 고려까지 13명의 고승대덕, 조선시대 벽계 정심(碧溪淨心) 스님부터 부휴 선수(浮休善修) 스님까지 5명의 성사(聖師), 그리고 중창대공덕주 벽암 각성(碧巖覺性) 스님으로 시작하는 8명의 조사 스님이 올라 있다. 화... -
연기 조사연기조사(생몰년 미상)는 화엄사를 창건한 스님이다. 그 이름은 기록에 따라 연기(緣起), 연기(烟氣), 연기(烟起), 연기(鷰起) 등으로 전한다. 스님의 출신에 대해서는 첫째, 6세기 신라 진흥왕대에 인도에서 온 스님이라는 설, 둘째, 8세기 중반 경주 황룡사 스님이라는 설이 있다. 연기조사가 인도 스님이라는 설은 1636년(인조 14) 중관 해안(中觀海眼, 1567~?) 스님이 쓴 『호남도 구례현 지리산 대화엄사 사적(湖南道求禮縣智異山大華嚴寺事蹟)』 중 544년(진흥왕 5) 범승(梵僧) 연기(烟起)가 창건하였다는 기록... -
도선 국사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는 자가 옥룡자(玉龍子), 호가 연기(烟起), 속성은 김씨, 영암 사람이다. 혹은 최씨라고도 하고, 신라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 재위 654~661)의 서얼이었다고도 한다.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華嚴寺)에서 수학해 대장경에 통달하였다. 846년 동리산(桐裏山) 개산조 혜철(惠徹, 785~861) 선사에게서 ‘말 없는 말과 법 없는 법(無說說無法法)’의 법문을 듣고 미묘한 이치를 깨달았다. 850년 23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이후 여러 사찰을 다니며 불법을 구하였고,... -
각황전 건축각황전은 대웅전과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는 화엄사의 두 주불전 중 하나이다. 석축의 조성수법을 보았을 때, 대웅전 영역보다 각황전 영역이 먼저 조성되었고, 후대 사역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대웅전과 다른 건축물이 배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각황전의 왼쪽편에는 영산전으로도 불리는 봉향각이 자리하는데 이 건물이 각황전의 노전이다. 각황전은 전면 7칸, 측면 5칸의 다포를 올린 중층건축물로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이고 지붕가구는 상층지붕 기준으로 1고주 7량이다. 대규모 석축으로 대지를 조성하고 건물의 어칸 중심과 석등, 석축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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