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긍익(李肯翊, 1736~1806)의 『연려실기술』 원집 제25권, ‘인조조 고사본말(仁祖朝故事本末)’ 편 1월 7일자에 수록되어 있다. 본말체는 사건의 전개과정을 중심으로 역사를 편찬한 것이다.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은 1637년 1월 병자호란 당시 승장(僧將)으로서 항마군(降魔軍) 1천 명을 이끌고 북상하였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은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이 저술한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사찬(私撰) 사서(史書)이다. 『연려실기술』은 원집(原集)과 별집(別集)으로 나뉘는데, 원집에서는 정치적 사건을 중심으로 여러 사서의 내용을 초출(抄出)하고, 별집에서는 전례(典禮)·문예(文藝)·천문·지리·변어(邊圉, 대외관계) 및 역대 고전(古典) 등의 분류별로 편목(篇目)을 나누고 있다. 기술 방법으로 내용의 출처를 밝히고, 추후 내용을 보충할 수 있도록 본문에 여백을 둔 것이 특징이나 이 때문에 전사본 중에는 서로 내용이나 권질(卷帙)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있다. 이긍익은 자가 장경(長卿), 호가 완산(完山)·연려실(燃藜室), 본관이 전주(全州)이다. 그는 조선후기의 소론 정치가이자 강화학파, 실학, 고증학자이다. 대부분의 저서는 유실되었는데, 『연려실기술』만이 현전한다.
원문
丙子虜亂南漢出城
初七日. 元帥金自點. 到光陵狀啓. 全羅監司李時昉. 進軍陽智狀啓言, “移文統制尹璛. 令送兵. 僧將覺性等. 抄僧軍一千. 將前進”云云.
※원문보기: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제공: 불교학술원
번역문
병자호란과 정축년(1637)의 남한출성
(1월) 7일
원수 김자점이 광릉(光陵)에 이르러 장계를 올렸다. 전라 감사 이시방이 양지(陽智)로 진군하여 장계를 올리기를, “통제사 윤숙에게 이문(利文)하여 군대를 보내게 하였습니다. 승장(僧將) 각성(覺性) 등은 승군 1천을 선발해 전진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번역: 불교학술원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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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통사-병자호란과 각성의 항마군 조직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상편, 조선 인조 14년 조에 수록되어 있다. 1636년 12월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 1637년 1월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은 승장(僧將)으로서 항마군(降魔軍) 1천 명을 이끌고 북상하였다. 원문 (丙子)十四年(明崇禎九年) 清。舉兵來。長驅直入京城。王播遷于南漢山城。時沙門覺性。在智異山華嚴寺。聞變。即戎衣而起。檄召南僧。來赴者數千。號降魔軍。相率而北。中道。聞敵退而還。(見碑文) ※출처: ‘CBETA On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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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통사-승려들을 이끌고 남한산성을 축조한 각성대사의 공로를 왕이 치하하다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하편, 동공남한성사효로(董功南漢性師效勞) 조에 수록되어 있다. 승려들을 이끌고 남한산성을 축조한 각성대사의 공로에 대하여 왕이 치하한 내용이다.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은 1624년 팔도도총섭에 임명되어 승군을 이끌고 남한산성 축조에 참여하였고, 1650년(효종 1) 화엄사를 ‘선종대가람’으로 지정할 때 함께 ‘겸팔도도총섭(兼八道都摠攝)’의 예조문첩을 받았다. 팔도도총섭은 임진왜란 때 조직된 팔도의 승군을 지휘하는 직책이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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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교지(敎旨)는 조선시대 국왕의 명령이나 신하에게 관직·시호·면역·특권 등을 하사는 문서이다. 그 양식은 첫 행에 ‘교지’로 시작하여 ‘~자(者)’로 내용을 마무리하고, 마지막에 ‘연월일’을 써넣은 것이다. 고려에서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라 쓰다가 1735년(세종 17) 9월 교지로 변경되었다. 화엄사에 내려진 교지 문서는 1626년(천계 6) 11월에 인조(仁祖, 재위 1623~1649)가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에게 하사한 것이다. 그 내용은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승도를 이끌고 축성한 공이... -
사보은천교국일도대선사행장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은 법명이 각성(覺性), 호가 벽암(碧巖), 속성이 김씨(金氏)이다. 각성 스님의 행장은 백곡 처능(白谷處能, 1617~1680) 스님이 찬술하였으며, 『대각등계집(大覺登階集)』에 수록되어 있다. 스님의 몰년과 구족계를 받은 연도에 대해서는 행장과 화엄사 금강문 앞에 있는 「국일도대선사비명(國一都大禪師碑銘)」(1663)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고, 구족계를 받은 시점이 다르므로 법랍에도 차이가 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의 〈표1〉 참조. 〈표1〉 벽암 각성의 행장과 비명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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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집-남한성기기문(記文)에서도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의 여러 행적이 기술되어 있는데, 장유(張維, 1587~1638)의 『계곡집(谿谷集)』 권8에 1624년(인조 2) 각성 스님이 승군의 최고 지위인 도총섭(都摠攝)에 임명되어 승도들을 이끌고 남한산성의 축성을 감독한 일이 보인다. 인조는 남한산성의 축성을 2년 만에 완성한 스님의 공적을 치하하며 1626년 11월 ‘보은천교원조 국일도 대선사(報恩闡敎圓照國一都大禪師)’의 직함과 함께 의발(衣鉢)을 하사한다는 내용의 교지(敎旨)를 내렸다. 원문 南漢城記 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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