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황전 중수 기념비」는 1943년(소화 18) 1월 각황전 중수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글은 엄창섭(嚴昌燮, 1891~?)이 지었다. 비문의 글씨는 김태랑(金太郞, 요시무라 긴타로)이 쓰고, 비액의 전서는 위창 오세창(葦滄吳世昌, 1864~1953)이 썼다. 내용은 각황전의 창건과 중창 내력, 1930년대 조선총독부의 현황 조사와 12만여 원의 지원, 1936년부터 1941년까지 6년의 공사 기간 등을 전하고 있다. 글을 쓴 엄창섭은 당시 전라남도지사였고, 일본식 이름은 다카나 가노리키(武永憲樹)이다. 이 비는 광복 후 철거되었는데, 덕장전 중건 기초 공사 중에 발견되었다. 발견 후 만월당 동남쪽 담 밑에 놓여 있었으나 현재는 그 위치가 불분명하다. 『구례금석문화(하)』에 기록된 비신의 크기는 가로 60㎝, 세로 170㎝, 너비 30㎝이다.
관련기사
-
각황전 중건 상량문 현판「지리산 대화엄사 각황전 중건 상량문」은 1938년(불기 2965) 5월 구산(龜山) 사문 영호 정호(映湖鼎鎬, 1870~1948)스님이 지었다. 내용은 화엄사의 연혁과 연기조사, 의상대사 이후 조선시대까지의 창건 및 중수와 관련된 인물, 각황전의 연혁, 당시 각황전 중수의 내력과 과정, 육위송, 기원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만 현판으로 전하고 있어 관계자 명단은 확인되지 않으며, 글 끝에 12월 14일에 상량하였다는 기록이 추가되어 있다. 실제 상량문은 현 각황전 마루도리에 수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가... -
도선 국사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는 자가 옥룡자(玉龍子), 호가 연기(烟起), 속성은 김씨, 영암 사람이다. 혹은 최씨라고도 하고, 신라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 재위 654~661)의 서얼이었다고도 한다.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華嚴寺)에서 수학해 대장경에 통달하였다. 846년 동리산(桐裏山) 개산조 혜철(惠徹, 785~861) 선사에게서 ‘말 없는 말과 법 없는 법(無說說無法法)’의 법문을 듣고 미묘한 이치를 깨달았다. 850년 23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이후 여러 사찰을 다니며 불법을 구하였고,... -
각황전각황전은 왕실의 지원으로 1702년(숙종 28)에 계파성능(桂波性能)스님이 재건한 불전이다. 이 자리에는 장륙전이라는 이름의 불전이 있었고, 내부에 화엄석경이 봉안되어 있었으나, 정유재란 때 건물은 소실되고 화엄석경은 파괴되어 만여 점이 넘는 조각으로만 남아 있다. 전란 이후 벽암 각성스님의 중창 당시 대웅전만 재건되고 장육전은 재건하지 못하였는데, 1699년에 홍각, 등계, 성능스님이 영남 예천 학가산에서 와서 재건의 업적을 이어 2층 7간의 대전을 원통전과 함께 재건하였다. 공사는 1699년(기묘) 봄부터 1702년... -
각황전 건축각황전은 대웅전과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는 화엄사의 두 주불전 중 하나이다. 석축의 조성수법을 보았을 때, 대웅전 영역보다 각황전 영역이 먼저 조성되었고, 후대 사역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대웅전과 다른 건축물이 배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각황전의 왼쪽편에는 영산전으로도 불리는 봉향각이 자리하는데 이 건물이 각황전의 노전이다. 각황전은 전면 7칸, 측면 5칸의 다포를 올린 중층건축물로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이고 지붕가구는 상층지붕 기준으로 1고주 7량이다. 대규모 석축으로 대지를 조성하고 건물의 어칸 중심과 석등, 석축 계단...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