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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문 중수 연기

「지리산 대화엄사 조계문 중수 연기」는 1919년(단기 4252) 4월 17일에 상량한 경위를 기록한 글이다. 글쓴이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글의 내용을 보면 옛 상량문을 인용하여 1640년(숭정 13) 6월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스님의 화엄사 전부를 중창할 당시 조계문도 같이 세웠고, 이후 1866년(동치 5) 4월 주지 지선(之善, 생몰년 미상)스님과 도감 회성(會性, 생몰년 미상)스님이 중수하였다는 내력을 전하고 있다. 이후 50년이 지나 서까래와 부연이 퇴락하고 도리가 썩어 중수하게 되었다고 배경을 적고 있다. 이어서 상량일자를 기록하고 주지, 총무, 재무, 회계, 서무, 전주지, 지전, 덕장전 감원 등의 소임자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끝에 산중의 현재 비구와 비구니는 97명이라고 덧붙여 적고 있다. 당시 주지는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1) 스님이다. 이 문서는 일주문 해체 수리시 출토된 것으로, 글의 형식과 내용은 제목과 같이 기문(記文)이지만, 상량일시를 기록하고 접어서 건물의 상량도리에 넣어둔 모습을 볼 때 상량문 대신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계문은 현 일주문의 이름으로 「지리산 화엄사 일주문 상량문 (智異山華嚴寺一柱門上樑文)」(1866)과 「지리산 대화엄사 조계문 중수 연기(智異山大華嚴寺曺溪門重修緣起)」(1919), 「일주문 중수기(一柱門重修記)」(1998)과 같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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