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필각 중수기」 현판은 1893년(고종 30) 11월 지현(知縣) 한헌교(韓憲敎, 생몰년 미상)가 작성한 것이다. 한헌교는 1892년 1월 27일에서 1894년 1월 25일까지 구례현감으로 재직하였다. 내용은 1892년 봄 구례현감으로 부임한 한헌교가 화엄사를 방문해 선조(宣祖) 어필과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에게 내려진 문서, 그 외 어배(御盃), 어석(御席) 등을 보고 별도의 전각을 세워 안치할 것을 권유하였고, 훗날 화엄사에서 어필각을 건립한 뒤 자신에게 기문을 부탁받아 작성한 경위를 전하고 있다. 현판의 끝 부분에는 당시의 원장(院長), 지전(持殿), 총섭(摠攝), 기실(記室), 삼강(三綱) 등 소임승과 전함질(前啣秩)이 기록되어 있다. 각성스님은 원조천교국일도대선사(圓照闡敎國一都大禪師)·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의 호와 의발을 하사받았는데, 어필각은 이를 안치한 곳이다. 건물은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현판의 형태
현판 크기는 가로 86.3㎝, 세로 30.8㎝으로, 현판 형식은 네 변에 사선으로 테두리를 붙인 모판형이다. 현재 상단은 파손되어 남아 있지 않다. 바탕은 검은색으로 칠하였고, 글씨는 음각에 흰색으로 칠하였다. 행간을 구분하는 세로선 계선이 새겨져 있다. 성보박물관 수장 중이다.
원문
御筆閣重修記
維歲壬辰之春 余來守玆土 幸其俗淳而事簡 雖五日一聽事 固無害於政治之緩急也 是以山明水麗之處 或有太守與客之飮而 亦不爲潘孟陽遊山而已矣 蓋聞州之北有華嚴寺 足以寓矚 故第於公退之暇 行尋招提之境 如入簷蔔林下 不齅餘香 但聞佛功德香 歇了半晌 有一衲奉安紅 袱而進前 余自不覺起敬而 盥手奉審 乃宣庙朝御筆 時書賜覺性之圓照闡敎國一都大禪師八道摠攝號大伽藍之職帖而 宝墨煌煌 又有御筆御盃御帝而 新彩隱隱 余叩其由 僧曰 粤在壬亂碧巖覺性大師 與西山泗溟同功一体 故先大王有此褒贈之典 嗟乎 余以晩生不得與大師共苦於氛侵之域而 先王之寵渥如是鄭重則 其爲國靖亂 奮發忠義之心凜凜然 數百載之下可以想像矣 余謂沙門曰 此寺之所重旣如是則 何不別建御筆閣而益加尊崇乎 僧曰 非不知建閣之停當而 禪徒無多 財力不逮 尙稽就此 然終必經營 上不負聖朝之隆恩 亦不孤明府之盛意也 未及一周 果符其言 修葺數間 不儉不侈 殿筆穩安 御器安閒 工旣訖功 屬余志之 余觀夫此寺之名初非尋常而 知其有以也 盖取其山谷之精華文明而 謂之華歟 取其御筆之尊嚴敬畏而 謂之嚴歟 山以寺而有名 寺以閣而益彰宜 其名垂萬世而毋廢者也 余不可以不文辭之 遂爲之記
聖上卽位三十年癸巳十一月 日
知縣 韓憲敎 謹誌
時院長 河月裕運
時持殿 鵬溟敬伸
時摠攝 致珣
前啣秩 恪進 琪善 德順 聞俊
時記室 幸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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