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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중수기 현판

「화엄사 중수기」 현판은 1840년(헌종 6) 9월 통훈대부 허무(許茂, 생몰년 미상)가 찬술한 것으로, 화엄사의 내력과 1830년을 전후로 하여 정문, 대로전, 삼전을 중건한 불사의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중수기에는 1827년(도광 7, 정해)에 금봉 우익(錦峰祐益, 생몰년 미상) 스님이 낭규(郞奎), 인윤(寅允)스님과 함께 정문(正門)을 중건하고, 1836년(도광 16, 병신)에는 대로전(大爐殿)을 중건하고, 오환(悟幻), 창수(暢守)스님과는 삼전을 중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우익스님은 1837년(정유)에도 내원암을 세웠다고 적고 있어 정문, 대로전, 삼전, 내원암 모두 우익스님이 주도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기문 끝에는 정문과 삼전 관련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데, 삼전과 관련하여 당시 주지로 ‘봉일(奉一)’이 기록되어 있으나, 「도광 16년 노전 상량문」에는 그 이름이 ‘봉일(奉日)’로 기록되어 있다. 한국학문헌연구소에서 편찬한 『화엄사지(華嚴寺誌)』(아세아문화사, 1997)에 현판을 채록한 것으로 보이는 「대화엄사중수기(大華嚴寺重修記)」가 수록되어 있는데, 현판과는 행자수와 일부 글자가 다르다. 현판의 형태 현판 크기는 가로 113.5㎝, 세로 37㎝이고, 형식은 궁양형 현판이었으나 테두리가 탈락된 상태이다. 바탕은 검은색으로 먹칠을 하였고, 글씨는 음각하고 흰색으로 처리하였다. 행간을 구분하는 세로선 계선이 새겨져 있다. 성보박물관에 수장 중이다.
원문
華嚴寺重修記 智異山般若峯西鍾石臺下艮坐之原有所謂華嚴寺盖新羅眞興 王五年甲子刱建者也年代寢遠殿字成敗亦多沿華況梵僧烟起 東國名師慈莊道詵元曉義湘諸國師之遺塵住躅猶有存者又其 印海碧巖桂波祐益相繼修補者終不得泯焉庶幾與此山不磨不 滅與之相終始豈不猗歟盛哉梁武帝大同十二年新羅眞興王五 年甲子法流禪師與法雲子開刱焉唐太宗貞觀十年新羅善德王 三秊丙申慈莊法師建釋尊塔及燈籠露柱雙寶塔唐僖宗乾 符二年新羅憲康王元年乙未道詵祖師重建八寺隋煬帝大業十 三年新羅眞平王三十九年丁丑元曉國師久留此寺海會堂讀習大 經兼補寮舍法堂唐高宗咸亨元年新羅文武王十年庚午義湘國 師多住本寺重興輪寺大明萬曆二十五年本朝宣祖三十年丁酉 爲倭寇所敗先師遺躅盡付兵燹粤三十年庚午印海和尙與 智英思印等重刱法典寮舍大明崇禎三年本朝仁祖八年庚 午碧巖和尙與德一大師共出隻手重新舊制大淸康熙年間桂 波和尙繼建丈六殿二層七間道光七年本朝純宗二十七年丁亥祐益 和尙捐錢百金與朗奎演允等重建正門粤十年丙申自費己力重 建大爐殿又與悟幻暢守等重建三殿又明年丁酉獨出己財又建內 院庵盖此寺之幾弊復甦祐益之力居多焉幸使千餘年幾圮之茄 藍煥然復明於斯世吁亦盛矣後之覽者亦皆效此而興起焉余與 本寺僧誠沾尤善詳知其事之顚末又以前後來歷詳告故遂爲之記 上之六年庚子九月 日通訓大夫前司書許茂識 正門施主秩 時宗師 華嚴堂桓倫 聖月堂六玹 大施主 淸潭堂惠奎 景波堂悟定 鷲峯堂悟幻 時持殿 德芸 智演 普永 時住持 敬弘 大功德主 前住持祐益 大施主 前住持朗奎 前住持演允 前住持再芸 前住持極仁 前住持祐坦 前住持暢守 前住持照悔 前住持暢俊 供養主 具密 都片手 朴松連 僧正堪 僧道閑 三殿重建幷力秩 時宗師 景波堂悟定 鷲峯堂悟幻 主三殿 月峯堂有尺 印月堂紀寅 時持殿 德芸 世訓 住持秩時任 奉一 朗奎 祐益 極仁 暢守 照悔 斗民 定允 供養主 謹裕 都片手 定一 定玉
번역문
대화엄사 중수기 지리산 반야봉 서쪽 종석대 아래 간좌 언덕에 소위 화엄사가 있으니, 대개 신라 진흥왕 5년 갑자(544)에 창건된 것이다. 연대가 오래 되어 건물들의 건축과 파괴에도 변화가 많다. 게다가 인도 승려 연기와 우리나라의 이름 난 대사 중에 자장, 도선, 원효, 의상 등 여러 국사의 흔적과 아름다운 발자취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 있고, 또 인해, 벽암, 계파, 우익 등이 서로 이어 보수하여 끝내 사라지지 않아, 이 산과 더불어 깎이지 않고 멸망하지 않고 처음과 끝을 서로 함께 할 수 있었으니,아! 어찌 훌륭하지 않은가. 양 무제 대동 12년, 신라 진흥왕 5년 갑자(544)에 법류선사가 법운자와 이 절을 개창했다. 당 태종 정관 10년, 신라 선덕왕 3년(당 태종 10년 병신년은 선덕왕 5년) 병신(636) 자장법사가 석존탑과 등롱, 노주, 쌍보탑을 세웠고, 당 희종 건부 2년, 신라 헌강왕 원년 을미(875)에는 도선조사가 여덟 절을 중건했고, 수 양제 대업 13년, 신라 진평왕 39년 정축(617)에는 원효국사가 이 절에 오래 머물며 해회당에서 대경(아주 중요한 경전)을 읽고 익히며 아울러 요사와 법당을 보수했고, 당 고종 함형 원년, 신라 문무왕 10년 경오(670)에는 의상국사가 본사에 오래 머물며 흥륜사를 중건 했고, 명 만력 25년, 본조 선조 30년 정유(1597)에는 왜구에 의하여 파괴되어 선사들이 남긴 자취가 모두 전란의 잿더미로 변했다. 33년 후 경오년(1630) 인해화상과 지영, 사인 등이 법전과 요사를 중창했다. 명 숭정 3년, 본조 인조 8년 경오년(1630)에 벽암화상과 덕일대사가 함께 재물을 내어 건물의 옛 격식을 거듭 새롭게 했다. 이어 청 강희 연간(1662~1722)에 계파화상이 장육전 2층 7간을 지었다. 도광 7년, 본조 순종 27년 정해(1827)에 우익화상이 돈 백금을 내어 낭규, 연윤 등과 더불어 정문을 중건했고, 10년 후 병신년(1836)에 스스로 재물을 내어 대로전을 중건하고 또, 오환, 창수 등과 삼전을 중건하고 또, 이듬해 정유년(1837)에 혼자 재물을 내어 내원암을 세웠다. 대개 이 절이 거의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살아남은 것은 우익의 힘이 크다. 다행히 천여 년 간 거의 폐허 가 되었던 가람을 다시 이 세상에 환하게 빛나게 했으니, 아! 또한 훌륭하도다. 훗날 이 글을 보는 사람들도 모두 이것을 본받아 감동하여 분발할 것이다. 내가 본사의 승려 계점, 우선 등과 그 일의 전말을 상세히 알고 또, 전후의 내력을 상세히 알려야 하기 때문에 마침내 기를 쓴다. 헌종 6년 경자(1840) 9월 일 통훈대부 전사서 허무 쓰다. 정문시주질 시종사 화엄당 환륜 / 성월당 육현 대시주 청담당 혜규 / 경파당 오정 / 축봉당 오환 시지전 덕운 / 지연 / 보영 당시 주지 경홍 대공덕주 전주지 우익 대시주 전주지 낭규 / 전주지 연윤 / 전주지 재운 / 전주지 극인 / 전주지 우탄 / 전주지 창수 / 전주지 조회 / 전주지 창준 공양주 구밀 도편수 박송련 / 승 정감 / 승 도한 삼전중창병력질 시종사 경파당 오정 / 축봉당 오환 주삼전 월봉당 유척 / 인월당 기인 시지전 덕운 / 세훈 주지질 시임 봉일 / 낭규 / 우익 / 극인 / 창수 / 조회 / 두민 / 정윤 공양주 근유 도편수 정일 / 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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