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화엄사 일주문 상량문」은 1866년(동치 5) 4월에 회성(會性, 생몰년 미상)스님이 작성하였고, 1998년 10월 2일에 일법(一法, 생몰년 미상) 스님이 옮겨 적은 것이다. 화엄사의 경관과 내력, 약식의 육위송, 기원문을 적고 ‘동치 5년 세차 병인 4월 지리후인 회성 근고’라고 일시와 찬술자를 밝히고 있다. 뒤이어 ‘1866년(동치 5) 병인 4월 16일, 1640년(숭정 13) 경진 6월 26일 상량’이라는 옛 부재의 기록을 옮겨 적었다. 마지막에는 ‘1998년(불기 2542년) 무인 10월 2일 조계후인 일법 씀’이라고 옮겨적은 일시와 글쓴이를 밝혀두고 있다. 옛 기록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 1866년 중창 당시 관계자 명단은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
상량 건물 정보
일주문은 계곡을 지나 화엄사 사역의 첫 번째 문이다. 기록에는 일주문이라는 명칭 이외에 조계문(曹溪門)이라는 표현도 자주 등장한다. 이 상량문에는 글의 첫 부분에 표제어가 없어 글의 내용만으로는 정확히 어느 건물의 상량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1998년 일주문 수리 당시 수습되어 ‘일주문 수습 상량문’으로 이름 하였다.
일주문과 관련된 기록으로는 「지리산 화엄사 일주문 상량문(智異山華嚴寺一柱門上樑文)」(1866)과 「지리산 대화엄사 조계문 중수 연기(智異山大華嚴寺曺溪門重修緣起)」(1919), 「일주문 중수기(一柱門重修記)」(1998)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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