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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수습 상량문

「일주문 수습 상량문」은 1941년(소화 16) 9월 9일 해운 성조(海雲性照, 생몰년 미상) 스님이 찬술한 것으로, 화엄사의 내력과 육위송, 기원문, 연화질로 구성되어 있다. 화엄사의 내력은 연기조사의 창건 이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스님이 중창한 일과 상량문이 작성될 당시 주지였던 병선 동월(秉善東月, 생몰년 미상)화상의 노력으로 효탑(孝塔, 사사자 삼층석탑), 향각(香閣, 향화각), 선원(禪院, 구층암)과 함께 중수하였다는 경위가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병선 동월스님의 주지 재임 기간은 1938~1942년이다. 관련된 인물의 명단인 연화질에는 노덕(老德), 전 주지, 주지, 감무, 법부, 재무, 제감, 시전 등의 소임자 명단과 편수(片手) 8인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소임자 명단 끝에는 ‘시중(時衆) 80’이라고 적어 명단 이외에 80명의 승려가 화엄사 사중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상량문의 형태 문서 크기는 가로 132.1㎝, 세로 64.3㎝이고, 1장의 종이에 먹으로 글을 썼으며, 상량식 때 접어서 넣은 자국이 남아 있다. 상량문의 끝에 저자를 밝힌 부분을 보면 해운 성조스님의 법명 좌측 두 곳에 전서체 도장이 붉은 색으로 찍혀 있다. 성보박물관에 수장 중이다. 상량 건물 정보 일주문은 계곡을 지나 화엄사 사역의 첫 번째 문이다. 기록에는 일주문이라는 명칭 이외에 조계문(曹溪門)이라는 표현도 자주 등장한다. 이 상량문에는 글의 첫 부분에 표제어가 없어 글의 내용만으로는 정확히 어느 건물의 상량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1998년 일주문 수리 당시 수습되어 ‘일주문 수습 상량문’으로 이름 하였다. 일주문과 관련된 기록으로는 「지리산 화엄사 일주문 상량문 (智異山華嚴寺一柱門上樑文)」(1866)과 「지리산 대화엄사 조계문 중수 연기(智異山大華嚴寺曺溪門重修緣起)」(1919), 「일주문 중수기(일주문중수기)」(1998)가 있다. 상량문의 저자 해운 성조(海雲性照) 스님은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 스님의 후인으로 1940년을 전후하여 진행된 화엄사의 여러 불사에서 일주문과 적묵당(「지리산 대화엄사 적묵당 남별당 개건 상량문 (智異山大華嚴寺寂默堂南別室改建上樑文)」)의 상량문을 찬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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