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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황전 중건 상량문 현판

「지리산 대화엄사 각황전 중건 상량문」은 1938년(불기 2965) 5월 구산(龜山) 사문 영호 정호(映湖鼎鎬, 1870~1948)스님이 지었다. 내용은 화엄사의 연혁과 연기조사, 의상대사 이후 조선시대까지의 창건 및 중수와 관련된 인물, 각황전의 연혁, 당시 각황전 중수의 내력과 과정, 육위송, 기원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만 현판으로 전하고 있어 관계자 명단은 확인되지 않으며, 글 끝에 12월 14일에 상량하였다는 기록이 추가되어 있다. 실제 상량문은 현 각황전 마루도리에 수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가운데 고려 광종 때 홍경(洪慶) 대사의 중수, 1593년 계사년이라고 명확히 연도를 언급한 임진왜란 당시 화재로 인한 소실, 1768년의 개수(改修) 등에 대한 기록이 특징이다. 당시 공사를 주도한 인물은 주지 만우 정병헌스님으로 1932년 7월 5일부터 1938년 8월 3일까지 재임하였다. 당시의 각황전 중건은 신문기사에서도 확인되는데, 매일신보(每日新報) 1938년 5월 3일자에 공사비로 1만 2천 원을 분배한다는 기사와 1941년 4월 12일자에 중수된 각황전 사진, 그리고 10일에 낙성식을 거행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상량문의 형태 상량문이 새겨진 현판은 사변형으로 검은색 바탕에 음각으로 글을 새기고, 별도의 안료는 칠하지 않았다. 크기는 가로 121㎝, 세로 34.5㎝이다. 현재 성보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원문과 번역문은 『華嚴寺 覺皇殿 實測調査報告書』(문화재청, 2009)에 수록되어 있다. 상량문의 저자 영호 정호(映湖鼎鎬, 1870~1948)스님은 자가 한영(漢永), 호가 영호(映湖)·석전(石顚)이다. 속성이 박씨(朴氏)이고, 19세에 출가하였다. 1913년 『해동불교(海東佛敎)』를 창간하였고, 1931년 불교전문학교 교장, 광복 이후 조선불교중앙총무원회의 제1대 교정(敎正)을 역임하였다. 저서는 『석전시초(石顚詩鈔)』, 『석림수필(石林隨筆)』, 『석림초(石林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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