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황전 봉향각 상량문」은 1872년(동치 11) 6월 19일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 서산(西山) 대사의 후인(後人) 등계 지원(登階智圓) 스님이 글을 썼다. 앞면에는 법운(法雲) 스님이 향각을 창건하였고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중창하게 되었다는 봉향각의 내력을 밝혔고, 이어서 육위송, 축원문이 적혀있다. 뒷면에는 여러 관계자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데 첫 부분에는 사찰의 승려명단을 신분에 따라 산중대덕(山中大德), 선덕(禪德), 전함(前啣), 중청(中廳), 사미(沙彌)로 구분하여 적었다. 이어서 공사와 직접 관계된 사람으로 목수(木手), 공양주(供養主), 대시주(大施主), 사찰의 소임자, 도감(都監), 별좌(別座), 화사(化士) 등의 명단이 적혀있다.
축원문에 국왕과 와비, 세자에 대한 축원이 빠져 있고, 뒷면 관계자 명단의 가장 처음에 대시주자로 현감인 방효함(方孝涵)을 적었고, 뒤쪽 시주질에도 관아의 향리 근무처인 작청의 계원 36인이 기재되어 있다. 이런 내용은 19세기에 들어 사찰과 지방관과의 관계가 중요시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방효함은 1869년 12월에 구례현감으로 부임했다.
문서 크기는 가로 65.1㎝, 세로 111.5㎝이고, 1장 앞뒤 2면에 글이 쓰여 있다. 현재 화엄사 성보박물관어 수장되어 있다.
상량 건물 정보
봉향각은 각황전의 노전(西爐)으로 향화각(香火閣), 향연각(香烟閣) 등의 명칭으로도 불리고, 현재는 영산전으로 부른다. 상량문 내용 중에 동재(東齋)는 원통전과 명부전, 중재(中齋)는 대웅전, 서재(西齋)는 각황전이라고 하여 전각을 관할하던 노전의 다른 명칭이 보인다. 봉향각과 관련된 기록으로는 이 상량문보다 앞선 1704년 4월 15일에 작성된 「강희 43년 갑신 4월 보름 향화각 상량기(康熙四十三年甲申四月望香火閣上樑記)」가 있다.
원문
覺皇殿奉香閣上樑文
伏以 物成毁而經刦 緬昔丁火之蕩焚 理消長而復雷 見今申金之營繕 參差鷰雀騰賀 贔屭龍象效勞 窃惟覺皇殿香閣 肇刱法雲師卓錫之初 中廢人委夷屠炬之後 狂塵板蕩 法界蕭凉 盖齋僧尊奉之體例 東齋則圓通冥府之當中齋則大雄羅漢之殿惟覺皇愼重之所 以西齋之久曠難免供禮勤慢之差 爲中齋之兼知亦云讚偈簡煩之判 迺者叢林僉議擬復舊規 貲難猝辦幾見瓶鵲之飛 役未易張頻送井蛇之走 迄于今春 縣大夫修信淨土特捐須達園之金 僉君子募緣福田又施祖堂寺之貨 於時 龜筮從恢拓之地鼎出遺墟先驗苟完之靈籙 鳳曆簡營建之辰石撑新砌更據爽塏之高標 營室爛垂天光 測圭潛覘日影 陶工燔瓦煙盪炎烘 榟匠輸材雲屯雨集 斤風振而丁丁槖槖 鉅雪飛而漫漫紛紛 柍桭枅楣棟宇榮梁遂隊整頓 欂櫨株檽椳闑店楔循序安排 塗墍告功 輪奐稱制 二層甍凝紫金精光 六丈龕放白毫瑞氣 法輪無礙於三千大界 功墖不虧於百萬微塵 遂成短關之歌 載助脩梁之擧
兒郎偉拋樑東 佛寶玲瓏瑞日紅 香水新炊擎午飯 愉神天樂戞雲中
兒郎偉拋樑南 薰風噓滿貝經函 六塵都淨上方寂 見性圓機覺海函
兒郎偉拋樑西 聖教東來如耳提 願携多少迷方子 共入蓮花極樂蹊
兒郎偉拋樑北 八域煙花聖御極 解脫床中高竪拂 無量燈照恒沙域
兒郎偉拋樑上 彩虹横亘銀河漾 天孫濯錦袈裟製 爲是新齋虔供養
兒郎偉拋樑下 肻敎明鏡纖埃惹 慣聞清梵天龍降 十笏房前花雨灑
伏願上樑之後 六趣銷滅 三乘圓融 不騫不崩房櫳永尊於盤泰 于安于吉衣鉢共棲於煙霞 大庇下界今生俾離煩惱之障 長護西方古像緣登定慧之門
同治拾壹秊壬申六月十九日西山後人登階智圓謹識
大施主 知縣 方孝涵
山中大德秩
雲庵堂敬坦 恩虛堂善源 悟庵堂策化 儀峰堂斗性 影潭堂奉悟 松庵堂道寬 景峰堂智圓 喚峰堂永珉 中庵堂世岸 蒙恩堂戒定 瑞雲堂敏喚 徹虛堂聖昱 石般堂致彦 印潭堂性祉 虎城堂晶連 霞月堂由連 虎峰堂莊元 草雲堂攝律 圓化堂德周
禪德秩
直倫 天有 宇政 智性 喜定 世元 頓儀 光彦 富桓 茂謙 能祐
前啣秩
善馹 之善 斗信 道益 有閑 永喜 錦俊 準察 戒詵 惠日 華爱 守信 池按
中廳秩
謹宥 善定 順弘 有安 聖洪 晦寬 奉玉 奉華 幸俊 奉仁 坦井 祥倫 奉㻇 脩佾 會仁 應文 必俊 奉連 景雲 伸元 奉彥 在順 在衍 永信 印雲 日成 會性 學仙 有政
沙彌秩
覺善 覺珍 妙順 覺信 性仁 覺順 幸旻 赫仁 奉寬 日新 紀順 紀華 萬和 奉宗 性幸 珍幻 錤禪 敬祐 敬滿
童 半重 澤龍 潤澤 得春
木手秩
都片手 喚峰堂永珉
副片手 贊寬
結墨 李吉玉
首頭 李大奎
公員 崔炳赫
供養主 性幸 幸民
大施主秩
友松堂永寬靈駕
慶月堂大淵
金守坤
曺衡國
作廳褉員三十六員
大持殿 瑞雲堂敏喚
奉三殿 霞月堂由運
時住持 會性
時書記 永信
三綱 善定 學仙 印雲
牌將 準察 華爱
先頭 奉華
都監 喚峰堂永珉
別座 錦俊
化士 儀峰堂斗性 蒙恩堂戒定
※교열: 불교학술원
번역문
각황전 봉향각 상량문
삼가 생각컨대, 사물이 이루어지고 허물어지는 데 오랜 세월이 걸리니 옛날 화재를 입어 재가 되었고, 소멸하고 자라는 이치에 따라 다시 움직임이 있어 이제 연장으로 다시 짓게 되었네. 크고 작은 제비와 참새들이 날며 축하하고, 씩씩하고 용감한 아라한(阿羅漢)이 힘을 다하네. 각황전의 향각을 삼가 생각해보니, 법운사가 머물던 때 창건되고 중간에 왜구가 불 지르고 살육한 후 어지러운 세상의 티끌로 폐허가 되어 법계가 쓸쓸하고 황량하게 되었네. 대개 재승이 불공을 올리는 규정에 동재에는 원통전과 명부전이 해당되고 중재에는 대웅전과 나한전이 해당되는데, 오직 서재인 각황전이 안타깝게도 오래 비어 있어 불공을 올리는 예에 부지런함과 태만함의 차별을 면하기 어려웠고, 중재에서 함께 예를 행하는 것도 찬게의 간편함과 번잡함이 다르다고 했다. 그리하여 총림에서 모두 의논하여 옛 규모를 복원하기로 했다. 자금을 갑자기 마련하기 어려워 병 속의 참새가 날아가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으며, 공사를 벌이기가 쉽지 않아 우물 속의 뱀이 달아나는 것을 여러 번 보냈네. 금년 봄, 고을 수령이 정토신앙을 닦고 특별히 수달원의 돈을 내고, 여러 군자가 인연을 따라 시주를 모으고 조당사의 재물을 베풀었다. 그때, 점괘를 따라 닦은 옛터에서 솥이 나와 건축을 완공할 수 있다는 신령한 징조를 미리 보여 주었고,봉황 달력으로 날을 받아 주춧돌과 섬돌을 놓으니 밝고 상쾌한 표지가 우뚝 섰네. 영실(북방의 별)이 하늘의 빛을 눈부시게 내리고 규표(圭表, 해 그림자를 재는 기구)를 재어 해 그림자를 가만히 관찰하네. 도공이 기와를 구울 때 연기가 자욱하며 화염이 치솟고 목수가 재목을 운반하여 구름처럼 쌓아 놓네. 바람을 가르는 도끼 소리 쩡쩡 탁탁, 톱밥은 어지러이 풀풀 나네. 평고대, 가로보, 상인방, 마룻대 등이 종류 별로 정리 되고, 박로(기둥 위 노리), 주유(짤막한 기둥), 외얼(문설주), 점설(문턱) 등은 순서대로 안배되었네. 회칠이 마무리되자 건물의 높이와 칸수가 규정에 맞으며, 이층 용마루에 자금(아름다운 빛을 내는 광물)의 광채가 모이고 부처의 감실에서 백호의 서기를 내뿜으니, 법륜이 삼천대천세계에 막힘이 없고 공든 탑이 지극히 작은 먼지에 가려지지 않으리라. 마침내 짧은 노래를 지어 상량식의 거행을 돕노라.
여보게들, 떡을 들보 동쪽에 던지세
불보가 영롱하고 상서로운 해가 붉으며
향수로 새로 밥을 지어 점심을 바치니
유쾌한 정신이 하늘과 화합하여 구름 속을 스치네
여보게들, 떡을 들보 남쪽에 던지세
훈풍이 불어 불경의 함 속에 가득하고
육진이 모두 정화되어 가람이 정숙하니
부처 되어 해탈함이 바다처럼 가없음을 깨닫네
여보게들, 떡을 들보 서쪽에 던지세
부처의 가르침 동쪽으로 와 속삭이듯 자상하니
길을 잃은 많은 사람을 데리고
연화극락의 세계에 함께 들어가기를 원하노라
여보게들, 떡을 들보 북쪽에 던지세
온 나라에 봄꽃이 피고 임금이 등극하시어
해탈의 상 위에 총채를 높이 세우시니
무량수불의 등이 항하(恒河)의 모래만큼 많은 곳을 비추리
여보게들, 떡을 들보 위에 던지세
오색 무지개 은하수 위에 뜨니
직녀가 비단을 씻어 가사를 지어
이 새 집을 위하여 경건히 공양하네
여보게들, 떡을 들보 아래에 던지세
어찌 맑은 거울에 먼지가 일게 하리오
천룡이 내려온다는 독경소리를 익히 듣더니
작은 방 앞을 꽃비가 씻네
상량 후에 윤회의 육도가 소멸하고 삼승이 원만하고 융통하며, 기울거나 무너지지 않은 집이 단단하고 반듯하게 영원히 자리 잡고 편안하고 착한 승도가 안개와 놀 속에 함께 살며, 슬퍼하고 번뇌하는 이 세상 이 중생의 장애를 크게 비호하고 서방의 고상을 길이 보호하는 인연으로 정혜의 문에 오르기를, 엎드려 바라노라.
동치 11년 임신(1872) 6월 19일 서산 후인 등계 지원 삼가 쓰다.
대시주
지현 방효함
산중대덕질
운암당 경탄/ 은허당 선원/ 오암당 책화/ 의봉당 두성/ 영담당 봉오/ 송암당 도관/ 경봉당 지원/ 환봉당 영민/ 중암당 세안/ 몽은당 계정/ 서운당 민환/ 철허당 성욱/ 석반당 치언/ 인담당 성지/ 호성당 정련/ 하월당 유련/ 호봉당 장원/ 초운당 섭률/ 원화당 덕주
선덕질
직륜/ 천유/ 우정/ 지성/ 희정/ 세원/ 돈의/ 광언/ 부환/ 무겸/ 능우
전함질
선일/ 지선/ 두신/ 도익/ 유한/ 영희/ 금준/ 준찰/ 계선/ 혜일/ 화원/ 수신/ 지안
중청질
근유/ 선정/ 순홍/ 유안/ 성홍/ 회관/ 봉옥/ 봉화/ 행준/ 봉인/ 탄정/ 상륜/ 봉전 / 수일/ 회인 / 응문/ 필준/ 봉련/ 경운/ 신원/ 봉언/ 재순/ 재연/ 영신/ 인운/ 일성/ 회성/ 학선/ 유정
사미질
각선/ 각진/ 묘순/ 각신/ 성인/ 각순/ 행민/ 혁인/ 봉관/ 일신/ 기순/ 기화/ 만화/ 봉종/ 성행/ 진환/ 기선/ 경우/ 경만
(이하 4명 동자승)반중/ 택롱/ 윤택/ 득춘
목수질
도편수 환봉당 영민
부편수찬관
결묵 이길옥
수두 이대규
공원 최병혁
공양주 성행/ 행민
대시주질
우송당 영관 영가[입적]/ 경월당 대연/ 김수곤/ 조형국/ 작청계원 36명
대지전 서운당 민환
봉삼전 하월당 유운
당시 주지 회성
시서기 영신
삼강 선정/ 학선/ 인운
패장 준찰/화원
선두 봉화
도감 환봉당 영민
별좌 금준
화사 의봉당 두성/ 몽은당 계정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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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 43년 갑신 4월 보름 향화각 상량기「강희 43년 갑신 4월 보름 향화각 상량기」는 현재 영산전의 상량문으로 1704년 4월 15일에 작성되었다. 건물의 격이 높지는 않아 상량문의 내용 역시 간략한 편이다. 글의 시작은 화엄사의 위치와 향화각의 의미를 간략히 서술하고, 동북남서상하 6방향에 무엇이 있는지 경관을 묘사하고 있다. 이어서 왕과 왕비 세자에 대해 축원과 연화질이 기록되어 있다. 연화질에는 산중대덕과 시주자, 사중질(寺衆秩, 사찰의 스님 명단), 목수, 공양주, 화주, 별좌 등이 기록되어 있다. 상량문 내용 중 ‘삼천팔백 비보 화엄사 제일 향연각... -
각황전각황전은 왕실의 지원으로 1702년(숙종 28)에 계파성능(桂波性能)스님이 재건한 불전이다. 이 자리에는 장륙전이라는 이름의 불전이 있었고, 내부에 화엄석경이 봉안되어 있었으나, 정유재란 때 건물은 소실되고 화엄석경은 파괴되어 만여 점이 넘는 조각으로만 남아 있다. 전란 이후 벽암 각성스님의 중창 당시 대웅전만 재건되고 장육전은 재건하지 못하였는데, 1699년에 홍각, 등계, 성능스님이 영남 예천 학가산에서 와서 재건의 업적을 이어 2층 7간의 대전을 원통전과 함께 재건하였다. 공사는 1699년(기묘) 봄부터 1702년... -
각황전 건축각황전은 대웅전과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는 화엄사의 두 주불전 중 하나이다. 석축의 조성수법을 보았을 때, 대웅전 영역보다 각황전 영역이 먼저 조성되었고, 후대 사역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대웅전과 다른 건축물이 배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각황전의 왼쪽편에는 영산전으로도 불리는 봉향각이 자리하는데 이 건물이 각황전의 노전이다. 각황전은 전면 7칸, 측면 5칸의 다포를 올린 중층건축물로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이고 지붕가구는 상층지붕 기준으로 1고주 7량이다. 대규모 석축으로 대지를 조성하고 건물의 어칸 중심과 석등, 석축 계단... -
봉향각봉향각은 각황전의 노전으로 여러 기록에서 다양한 이름이 나타나고 있다. 1704년 상량문에서는 향화각(香火閣)으로, 1872년 상량문에는 봉향각(奉香閣)으로 부르고 있으며, 사적기에는 서노전(西爐殿)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최근까지 사중에서는 영산전(靈山殿)이라고도 불렀다. 건물의 초창은 각황전이 재건된 직후인 1704년으로 각황전을 관리하는 소임자의 거처로 세워졌다. 이후 1872년에 중수하였고, 1970년에 서까래 교체, 1998년 11월에 해체수리를 하였다. 해체수리 당시에는 영산전이라 부르고 조실스님이 기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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