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광 16년 병신 3월 10일 신시 상량문」은 1836년(도광 16)에 노전(爐殿)을 수리하고 작성한 상량문으로 저자가 누군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내용은 사찰의 경관과 수리의 동기, 기원문을 적고 이어서 종사(宗師), 노덕(老德), 전함(前啣), 주지(住持), 삼강(三綱), 대시주(大施主)의 명단을 적고 있다. 그 아래에는 공사 관계자 명단인 연화질(緣化秩)로 도감(都監), 화별(化別), 편수(片手), 공양(供養)를 기록하였다. 그 다음에는 사중의 인물 명단을 지전(持殿), 역군(役軍)으로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역군 명단에는 패장(牌長)과 서기(書記)가 같이 표기되어 있다.
대시주로는 구례현감(求禮縣監) 이교익(李敎益)과 가선대부(嘉善大夫) 금봉 우익(錦峰祐益, 생몰년 미상) 스님이 기록되어 있다. 금봉 우익 스님은 전대 화엄사 주지로서 전함질(前啣秩)에 보인다. 명단의 여러 인물 중 봉일(奉日)스님은 당시 주지이자 도감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화엄사선생계안록』의 내용으로는 상량일 당시 주지는 1835년(을미년) 1월 2일부터 1836년 5월 8일까지 부임한 신성(愼成)으로 기록간에 차이가 있다. 봉일 스님은 1830년, 1833년, 1838년, 1840년, 1847년 총 5번에 걸쳐 주지로 부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840년에 작성된 「화엄사 중수기(華嚴寺重修記)」에 금봉 우익 스님 등이 1827년에 정문(正門, 보제루)을, 1836년에는 대로전(大爐殿)을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어 상량문의 ‘노전’과 「화엄사 중수기」의 ‘대로전’은 같은 건물로 보이며, 지금은 영전으로 사용하는 건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각황전 봉향각 상량문」(1872)에서는 화엄사의 3개 노전을 각각 동재(東齋), 중재(中齋), 서재(西齋)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중재가 대로전이다. 문서 크기는 가로 267.3㎝, 세로 43.6㎝으로 2장의 종이를 이어서 사용했다. 현재 성보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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