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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 43년 갑신 4월 보름 향화각 상량기

「강희 43년 갑신 4월 보름 향화각 상량기」는 현재 영산전의 상량문으로 1704년 4월 15일에 작성되었다. 건물의 격이 높지는 않아 상량문의 내용 역시 간략한 편이다. 글의 시작은 화엄사의 위치와 향화각의 의미를 간략히 서술하고, 동북남서상하 6방향에 무엇이 있는지 경관을 묘사하고 있다. 이어서 왕과 왕비 세자에 대해 축원과 연화질이 기록되어 있다. 연화질에는 산중대덕과 시주자, 사중질(寺衆秩, 사찰의 스님 명단), 목수, 공양주, 화주, 별좌 등이 기록되어 있다. 상량문 내용 중 ‘삼천팔백 비보 화엄사 제일 향연각(三千八百裨補華嚴寺第一香烟閣)’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화엄사가 도선스님이 말한 3,800개의 사탑을 세워 삼한의 땅을 이롭게 한다는 비보설에 의한 곳임을 표현한 것으로 그 중 향화각이 제일의 향연이 피어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즉, 향화각은 화엄사의 여러 향로각 중 제일 수위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상량문의 형태 문서 크기는 가로 63.4㎝, 세로 58.3㎝로 총 1매이다. 장방형 종이에 먹으로 썼으며, 상량식때 지붕 마루도리나 장여에 넣기 위해 여러 번 접었던 흔적이 있다. 일부 훼손된 부분이 있어 전체 글자를 판독하기는 어려운 상태이다. 현재 화엄사 성보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상량 건물 정보 향화각은 화엄사의 노전(爐殿) 중에서 서쪽에 있어 서노전이라고도 불렸다. 지금은 영산전과 봉향각으로 부르고 있다. 향화각은 건물의 상량시기가 각황전 중창 직후라는 점과 주변에 각황전 이외의 불전은 없다는 점에서 1702년에 중창한 각황전의 노전으로 건립된 건물로 추정된다. 향화각과 관련된 다른 기록으로 1872년에 작성된 「각황전 봉향각 상량문(覺皇殿奉香閣上樑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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