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장육전 중건 상량문

「조선국 전라도 구례현 지리산 대화엄사 장육전 중건 상량문」은 현 각황전의 1701년 중건에 대한 상량문으로 1936~1940년 사이 각황전 해체 중건 공사 시에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장은 1701년(숙종 27) 9월에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이 찬술하였고, 실제 상량일은 1701년 11월 2일이다. 내용은 화엄사의 경관,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이후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의 중창, 장육전(丈六殿)의 내력과 중건 동기, 계파 성능(桂坡聖能, 생몰년 미상) 스님의 장육전 중건 경위, 중건된 장육전의 묘사, 육위송, 기원문, 연화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량문은 종이의 앞뒷면에 연이어 적었는데 앞면에는 작성일자와 작성자로 끝나는 본문과 대시주자 2명에 대한 축원이 적혀있고, 뒷면에는 상량일시와 주상전하와 명현왕후, 무진년생 세자(훗날 경종)에 대한 축성과 나라의 안녕을 비는 축문이 쓰여 있다. 이후 연화질에는 대시주 28인과 별좌, 도편수, 대화주가 차례대로 기록되어 있다. 상량문 본문 끝에 이어서 기록된 대시주는 ‘원당대시주 연잉군 친왕자 갑술생 이씨 수명장(願堂大施主延礽君親王子甲戌生李氏壽命長)’과 ‘성조대시주 친왕자모 경술생 최씨 수명장(成造大施主親王子母庚戌生崔氏壽命長)’로 훗날 영조(英祖, 재위 1724~1776)와 그의 친모 숙빈 최씨(淑嬪崔氏, 1670~1718)이다. 이 두 사람이 본문 이후에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은 장육전 중건에 실질적인 후원자였음을 의미하고 있다. 상량문의 형태 문서 크기는 가로 54.7㎝, 세로 11.5㎝이고, 총 1장 2면으로 장방형 종이에 먹으로 글을 썼으며, 절첩 형식이다. 앞면 본문 끝에 전서체로 된 ‘은와(恩窩)’, ‘중기(仲耆)’, ‘채팽윤(蔡彭胤)’ 도장이 순서대로 찍혀 있다. 장육전의 명칭 변화 장육전은 정유재란 때 소실된 이후 계파 성능이 1699년에 재건을 시작하여 1702년 완공되었다. 다음해 1703년에 숙종(재위 1674~1720)이 ‘각황전(覺皇殿)’이라는 편액을 내려주면서 지금과 같이 각황전이란 명칭이 쓰이게 되었다. 상량문의 저자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은 자가 중기(仲耆), 호가 희암(希菴)·은와(恩窩)이며, 1687년 19세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724년 영조 즉위 이후 승지, 도승지, 대사간, 부제학, 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그의 문집 『희암집(希菴集)』(권25, 上樑文)에 장육전 상량문의 본문이 수록되어 있다.
원문
朝鮮國全羅道求禮縣智異山大華嚴寺丈六殿重建上樑文 自有而無 自無而有 如是我聞 其成也毁 其毁也成 不圖今見 水雲動色 龍象收悲 原西敎之布流 遡上方之興廢 盖五山蓄靈於滄海 智異竝名 而三國疊迹於祇林 建元爲首 法寶開山之世 始鋪黃金 銀梯躡月之朝 代起丹臒 曼聖演偈 夢寐證禦禳之區 一師按圖 山川占裨補之域 於是飛羽讓潛崖之錫 神光繚宜壽之鐘 前控鷄岑之芙蓉 傍父蓮社之松竹 赤庵東眺 濃霞染漢旗之痕 般若北贍 聚靄蘊靈窟之氣 廷欒包壑 累榭絡嵓 遠而望之 聯聯秋鴈之齒列 近而察之 矗矗露蜂之房懸 叢寮泛華 送月邀月 複檻流影 栖雲引雲 磵溜彎回 瓏瓏而臨鏡 蓮花暎帶 隱隱而凝香 最其中層三架霄 丈六題牓 圓敎授矩 類迦蘭之施園 了空承跌 侔大士之依樹 植金粟於中坐 嵬若有餘 虧銀河於上榮 鬱其無極 壁劖珍典 綴雲根而相圍 檐引凝鈴 捎洞府而彌遠 三界之風雨阻絕 六時之天龍護呵 桑田剎那 閱滄嶼之三轉 玉尺贍部 祝聖人之萬年 不幸龍蛇之訌 併淪豺虎之藪 兇焰所熸 詎饒解脫之門 刦灰自燒 無亦流行之禍 青鴛夷蕩 焮須彌之迣巒 白馬悲鳴 繞乾笁之危塔 山乘共綸書齊燬 佛香與仙梵俱銷 爱有黃面嫡傳 碧巖禪老 收合四十霜餘燼 輦䟽千百載道場 澡介鱗之腥而 薰以簷蔔 掃瓦礫之地而 化爲菴羅 金界寶洲 依歸有所 花宮柰苑 長第告成 唯資訾之易殫 獨壯麗之未暇 名存斷牒 盖度金軀之長 字缺殘經 空傳石壁之陊 尋眞者指顧而興惜 慕古者彷徨而發嘆 惟我桂坡道人性能 水月涵晶 雲霞寫質 菩提明鏡 竗歲登昭影之壇 貝葉靑蓮 玄文透迦衛之鍵 眡道林之座則 王謝之履舃方交 弛文暢之簦則 柳韓之篇章且滿 曺溪法水 注爽於言泉 鶴駕祥嵐 騰霏於藻思 放雲游之迹 振衣周流 臨烟起之墟 住杖延竚 肆因信者大悲之念 用結前人未了之緣 經營苦心 再刳椔翳 礱斲斷手 三易凉溫 爾其雄梁拖虹 脩栱插日 高標仍舊 倍尋爲常 增搆維新 不參以貳 丹梯未半 先壓衆山之冠 綉闥將窮 已平老檜之頂 浮埃歸而斂色 飛鴿赴而墜翎 參辰隔橑 諸天通呼吸之氣 氷雪生霤 六月屏蘊隆之氛 毒鱗潛而龍潭開 清搖懸棟 宿雨罷而鰲山出 翠滴迴廊 方諸落星 未遜其峻 譬彼多珤 何慙厥靈 信端嚴之攸廬 宜苾蒭之競勸者也 嗚呼 頭陀重闢 同泰長煤 福地不常 善因難覯 向非道人力宜功德 不負誓心 啟不住之檀門 獲修國師之緒 登有爲之願路 克奉兜率之驩 烏得以有今日哉 倘所謂待其人者茲告十方之衆 敢陳六偉之謠 兒郎偉拋樑東 天王蒼翠拂簾櫳 霽日滿林鳴磬遠 伽陵啼在雜花中 兒郎偉拋樑西 畫欄烟雨夕陽低 千年更理尋真夢 碧海靈柯彩鳳啼 兒郎偉拋樑南 琪樹陰陰暎碧龕 不見當時烟起處 晚晴霏翠自成嵐 兒郎偉拋樑北 般若浮天綠如卽 欲識高僧千古心 君看叢栢雪中色 兒郎偉拋樑上 南斗去簷不尋丈 俯看三界烟霧濛 人語依依半空響 兒郎偉拋樑下 衆峯如案齊脩架 曹溪一派古今流 聽經老龍廕碧瓦 伏願上樑之後 佛力增重 璇基永般 質之慧燈 九闕貢岡陵之壽 濟用慈筏 四方無金革之聲 重欄方丈兩不騫 德水南溟長無竭 聖上二十有七年辛巳孟秋宣務郎前守司諫院正言知製敎蔡彭胤撰并書 (도장) 恩窩 仲耆 蔡彭胤 願堂大施主迎礽君親王子甲戌生李氏壽命長 成造大施主親王子母庚戌生崔氏壽命長 康熙肆拾年辛巳十一月初二日上樑 幹善小比丘性能 因斯普願奉祝 辛丑生主上殿下萬歲萬歲壽萬歲 明顯王后丁未生閔氏 仙駕上生兜率之天堂 受諸快樂 戊辰生世子殿下 齊年齊年壽齊年 后妃親王子諸君諸宮室各安寧 文武百僚盡忠良道內三營兵役消 城主兩位忠補理 及與願我同種大小諸檀信 與隨喜結願勸引勸語施主等 入我同心發願 助緣緣化比丘衆次 及內外守護正法天龍八部土地伽藍五方地神禁護天王大神禁伐山神禁護木神洞神大小川澤江神一切護法護事諸位神衆 世世生生無量刦來煩惱障惡業障惑業障有漏 因一切含寃輕垢之罪 願以此因緣永滅消 際發菩提無邊廣大願王 同往蓮花佛國世界 親親如來玉毫光紫摩金容 親開真空法摩頂授記悟無生惡 還度多生父母普及一切冤結 次及遠近大小曳役蠢蠢一切有生靈之類 急死橫死壓死一切含魂等 衆離麤漏身速還人天同人願王龍華會中盡同授記普濟群品願已發願已 諸檀信芳名皆列于后 願堂大施主 甲戌生李氏保体 大施主庚戌生崔氏保体 大施主己卯生李氏保体 大施主己酉生金氏保体 大施主甲申生李貴榮 大施主丙戌生卞戒業 大施主壬申生趙淨生 大施主中訓大夫藝文館奉敎兼春秋館記事官世子侍講院說書洪重益 大施主壬午生金孝悅 大施主甲申生朴老淨 大施主丙戌生劉氏保体 大施主丁亥生鄭氏保体 大施主癸酉生張氏保体 大施主乙酉生金氏保体 大施主壬戌生劉氏保体 大施主丙申生趙道生 大施主甲午生朴孝定 大施主癸卯生李氏保体 大施主吳座首士賓 大施主王都監振玉 大施主甲戌生金氏 大施主己丑生金氏 大施主丙申生金氏 大施主金敬難 大施主朴玉淨 大施主林蹤業 大施主庚子生盧氏 大施主丁亥生金氏 施主 梁 別座 始終龍城沙門順學 都片手 大木 長興天冠道人能悟 大化主 嶺南左郡醴泉桂坡道人性能 ※제공: 화엄사
번역문
조선국 전라도 구례현 지리산 대화엄사 장륙전 중건 상량문 있음으로부터 없음이 나오고 없음으로부터 있음이 생긴다고 내가 그렇게 듣더니, 만들어짐으로부터 부서지고 부서짐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을 뜻밖에 지금 보니, 자연이 감동하고 아라한이 슬픔을 거두는구나. 불교의 유포를 고찰하고 사찰의 흥망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대개 오산[1]동해에 있다는 다섯 선산이 신령스런 기운을 동해에 모았는데 지리산이 그 산과 이름을 나란히 했고 삼국이 기림[2]불교의 성지. 여기서는 화엄사 터를 말함에 발자취를 포겠는데 건원[3]법흥왕의 연호 때가 처음이었네. 법보로 산문을 열 때 처음 황금을 깔았고 은 사다리에 올라 달을 밟은 아침이면 대신 단청을 했네. 부처가 게송을 펼쳐 몽매간에도 재앙을 막는 곳임이 증명되고 한 대사가 도적(圖籍)을 살펴 비보의 땅으로 자리 잡았네. 그리하여 나는 새는 절벽에 숨은 오솔길을 석장에게 양보하고 신령스런 빛이 길이 보존될 종을 에워싸며, 앞에서 계잠의 연꽃을 당기고 옆으로 백련사(白蓮社)의 송죽과 사귀며, 적암을 동쪽으로 바라보면 짙은 노을이 한나라 깃발의 흔적을 물들이고 반야봉을 북으로 바라보면 운무가 신령스런 굴의 기운을 머금었네. 이어진 가름대(欒)가 골짜기를 안고 많은 정자가 바위를 에워 싸, 멀리서 바라보면 나란한 모습이 마치 가을 기러기의 행렬 같고 가까이서 살피면 촘촘한 모습이 말벌집이 매달린 것 같았네. 옹기종기 모인 요사채 꽃처럼 빛나 달을 보내고 달을 맞이하며 겹난간의 흐르는 그림자 구름을 맞이하여 구름에 숨고, 계곡물은 졸졸 굽이쳐 흘러 거울처럼 맑고 연꽃은 거기에 비치어 은은한 향기를 뿜었네. 그 중 최고는 하늘 높이 솟은 삼층 건물, 현판에 ‘장육’이라 했네. 원교[4]부처의 5대 교설 중 하나의 수구[5]땅에 집자리를 그려 표시하는 것가 가란타장자의 죽림원에 죽림정사를 지은 것과 같고 하늘 높이 가부좌를 튼 것이 부처가 나무를 의지한 것 같았네. 금속여래(金粟如來)를 가운데 세우니 우뚝하기가 여유가 있고 은하수가 처마에서 부서지니 빼어남이 끝이 없었네. 벽에 화엄경(珍典)을 새겨 구름의 뿌리를 이어 둘렀고 처마에 달린 풍경은 골짜기를 울리고 멀리 멀리 들렸네. 삼계의 풍우가 막혀 끊어지고 육시의 천룡이 보호하여 상전벽해의 찰나에 해안이 세 번 변함을 보고 물고기 노는 남섬부주(南贍部洲)로 임금의 만세를 축원했네. 불행히 임진왜란으로 모든 것이 도적의 무리에 짓밟혀, 흉악한 화염이 꺼졌으나 어찌 해탈의 문을 바라며 겁회[6]전쟁으로 인한 잿더미가 저절로 사그라져서 또한 유행하는 재난도 없어졌어도, 기와가 산산이 부서지고 수미산의 산줄기도 불타고 백마의 비명이 천축의 높은 탑을 감돌았네. 사찰의 역사와 임금의 교서가 모두 불타고 향불과 독경도 모두 사라졌네. 그때 부처(黃面)의 적전 벽암 선노가 있어 40여 년의 폐허를 수습하고 천백 년의 도랑을 가마로 소통시키며, 왜구의 비린내를 씻고 치자(簷蔔) 향을 피우며 황폐한 땅을 쓸어 향기로운 암라 나무의 정원으로 만들었네. 부처의 땅에 귀의할 바가 생기고 사찰의 긴 집이 완성되었네. 오직 재력이 쉬 바닥 나고 집을 장엄하고 아름답게 지을 겨를이 없으며, 조각난 문서에 이름이 남아 불상의 길이를 대략 헤아리고 조각난 석경에는 글자가 빠져 파괴된 석벽만 공허하게 전하니,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 가리키고 돌아보며 안타까워하고 옛날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방황하며 탄식했네. 오직 우리 계파도인 성능이 물에 잠긴 달과 같은 수정을 머금고 선인과 같은 자질을 타고나, 명경 같은 지혜로 소년에 소영의 문하에 들어가 불안(佛眼)으로 불경을 읽어 심오한 경문에 통달함이 마치 가위[7]석가모니의 탄생지의 열쇠를 여는 것 같았고, 도림[8]동진(東晉)의 승려 지둔(支遁)의 좌석으로 보자면 왕탄지(王坦之), 사안(謝安)의 족적과 비교할 수 있고 문창(당나라 승려)의 궤를 열면 유종원(柳宗元), 한유(韓愈)의 시와 글이 가득했고[9]성능의 교제가 넓었던 것을 도림, 문창에 비유한 것 조계의 불법이 말의 샘이 되어 솟고 선인의 상서로운 기상이 문장 속에 휘날렸네. 구름 같은 발자취를 놓아 옷을 털고 두루 떠돌다가 연기 가 나는 곳에 다다라 지팡이 세우고 오래 머물며, 대자대비의 마음을 펼치고 옛 사람이 못 다한 인연을 맺어, 계획하고 짓는데 마음을 다하고 고사목을 다시 켜 갈고 깎아 완성하는 데 삼년이 걸렸네. 그리하여, 웅장한 들보가 무지개처럼 늘어지고 긴 두공이 해를 찌르며, 높이의 표준은 옛날을 따라 두 길(尋)을 상으로 하고 더욱 새롭게 크게 지음에 세 사람이 있어도 두 마음이 아니었다. 계단이 반이 되기도 전에 먼저 뭇 산꼭대기의 기운을 눌렀고 화려한 문의 완성을 앞두고 늙은 회나무의 기세를 평정했네. 떠다니던 먼지가 가라 앉아 제 모습을 드러내고 날던 비둘기도 집을 찾아 깃들었네. 참신[10]각각 서방과 동방의 별처럼 서까래를 띄워 제천이 서로 호흡하는 기운을 소통하게 하고 어름과 눈이 처마의 낙수가 되어 6월의 무더운 기운을 막았으며, 흉악한 물고기가 숨자 용담이 열려 맑은 바람이 높은 용마루를 스치고 오랜 비가 그치자 오산이 드러나 비취빛이 회랑을 물들이네. 낙성루(落星樓)[11]강소성의 양자강 가에 있는 누각에 견주어도 그 빼어남이 손색이 없고 저 다보탑에 비교한들 어찌 그 신령스러움이 부끄러우리오. 진실로 장엄함이 깃든 곳이며 비구들이 서로 다투어 이끌고 노력하기에 좋은 곳이라. 오호! 두타의 세계가 거듭 열렸어도 동태사(同泰寺)[12]양나라 무제가 창건한 절는 오래 그을렸으니, 복된 땅은 변함이 없는 것이 아니고 좋은 인연은 만나기 어렵도다. 만약, 공덕을 감당할 힘이 있고 맹세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아 주석하지 않은 단문을 열고 국사의 실마리를 닦아 현세의 축원의 길에 올라 도솔천의 기쁨을 받든 도인이 아니면, 어찌 오늘이 있었겠는가. 아마도 이른 바 ‘그 사람을 기다린 것’일 것이다. 이에 시방의 대중에게 고하고, 감히 육위의 노래를 부른다. 여보게들, 떡을 들보 동쪽에 던지세 천왕봉의 푸르름이 주렴을 스치고 맑은 햇살 숲에 가득하여 풍경소리 멀리 울릴 때 가릉빈가는 꽃밭에서 지저귀네 여보게들, 떡을 들보 서쪽에 던지세 단청 난간 안개비 속에 석양이 저무는데 천년의 건물을 다시 지어 참된 꿈을 찾으니 푸른 바다 아름다운 배에서 봉황이 우네 여보게들, 떡을 들보 남쪽에 던지세 우거진 기수[13]선경(仙境) 의 옥수(玉樹)가 벽감을 비추어 당시 연기 나던 곳은 보이지 않고 화창한 오후의 비취빛이 스스로 남기(嵐氣)를 이루네 여보게들, 떡을 들보 북쪽에 던지세 반야봉이 하늘 높이 솟아 푸르름이 다가오네 천고에 변치 않는 고승의 마음을 알려거든 눈속의 측백나무 숲 색을 보게 여보게들, 떡을 들보 위에 던지세 남두성南斗星이 처마에서 열 자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삼계를 굽어보니 안개가 몽롱하고 사람들의 말은 조잘조잘 반은 공허한 소리네 여보게들, 떡을 들보 아래에 던지세 뭇 봉우리가 서안(書案)처럼 긴 시렁과 가지런한데 조계의 한 파가 고금에 흘러 독경 소리를 듣는 소나무(老龍)가 푸른 기와에 그늘을 드리우네 삼가 바라건대, 상량 후 불력이 증강하고 보배 같은 터가 영원히 안정되어, 혜거(慧炬)[14]모르는 것이 없는 지혜에 물어보면 천궁天宮이 산처럼 높은 수명을 바치고 중생을 구제하여 고해를 건너게 하여 사방에 전쟁의 시끄러움이 없으며, 겹겹 난간과 지리산[方丈] 모두 손상됨이 없고 여덟 공덕수와 남쪽 바다가 길이 다함이 없게 하소서. 성상 27년 신사(1701) 초가을, 선무랑 전수사간원정언 지제교 채팽윤이 짓고 쓰다. (도장) 은와 중기 채팽윤 원당대시주 영잉군 친왕자[15]훗날의 영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영잉군(迎扔君)’은 ‘연잉군(延扔君)’의 잘못이다. 갑술년(1694) 생 이씨의 수명이 길고, 성조대시주 친왕자의 어머니 경술년(1670) 생 최씨의 수명이 길기를 기원합니다. 강희 40년 신사(1701) 11월 2일 상량하고, 간선소비구 성능이 이 일로 인하여 다음과 같이 널리 기원하여 봉축합니다. 신축년(1661) 생 주상전하(숙종) 만세 만세 수만세. 명현왕후 정미년 생 민씨의 선가가 도솔천의 천당에 올라 많은 쾌락을 받으시기를. 무진년(1688) 생 세자전하[16]훗날의 경종(景宗) 제년[17]장수를 비는 뜻 제년 수제년. 후비, 친왕자 제군, 제궁실 등등도 각각 안녕하시기를. 문무백관들도 모두 충성스럽고 선량하시기를. 도내의 삼영에 전쟁이 소멸하기를. 성주 양위께서 충성스럽고 복이 많기를. 아울러 나와 같은 부류의 크고 작은 여러 단신, 그리고 수희, 결원, 권인, 권어, 시주 등과 나와 한 마음으로 발원한 조연, 연화, 비구중 등, 그리고 안팎으로 정법을 수호하는 천룡팔부, 토지와 가람의 오방지신, 금호천왕대신, 금벌산신, 금호목신, 동신, 크고 작은 내와 못과 강의 신 등등 불법을 수호하고 일을 지키는 모든 제위의 신과 대중이 세세생생 영원히 번뇌장, 악업장, 혹업장 등과 모든 원한을 품은 가벼운 죄가 이 인연으로 영원히 소멸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보리무변광대원왕과 함께 연화불국세계에 가서 여래의 옥호광자마금용을 직접 보고 진공법마정수기를 직접 듣고 악업을 짓지 않을 것을 깨닫고, 돌아와 다생부모를 제도하고 널리 모든 원한 맺힌 것에 미치며, 그 다음에 멀고 가깝거나 크고 작은 꿈틀꿈틀 기어다니는 살아 있는 모든 무리와 급사하고 횡사하고 압사한 모든 원혼들과 뭇 잡스럽고 추악한 무리의 몸을 속히 인천으로 돌아오게 하여 함께 원왕의 용화회에 들어가 모두 함께 수기를 받아 널리 모든 생령을 구제할 것을 발원할 따름입니다. 여러 단신의 방명은 모두 아래에 열거합니다. 원당대시주 갑술생 이씨 보체 대시주 경술생 최씨 보체 대시주 기묘생 이씨 보체 대시주 기유생 김씨 보체 대시주 갑신생 이귀영 대시주 병술생 변계업 대시주 임신생 조정생 대시주 중훈대부 예문관봉교 겸 춘추관기사관 세자시강원설서 홍중익 대시주 임오생 김효열 대시주 갑신생 박노정 대시주 병술생 유씨 보체 대시주 정해생 정씨 보체 대시주 계유생 장씨 보체 대시주 을유생 김씨 보체 대시주 임술생 유씨 보체 대시주 병신생 조도생 대시주 갑오생 박효정 대시주 계묘생 이씨 보체 대시주 좌수 오사빈 대시주 도감 왕진옥 대시주 갑술생 김씨 대시주 기축생 김씨 대시주 병신생 김씨 대시주 김경난 대시주 박옥정 대시주 임종업 대시주 경자생 노씨 대시주 정해생 김씨  시주양 별좌 처음부터 끝까지 용성사문 순학 도편수 대목 장흥 천관도인 능오 대화주 영남좌군 예천 계파도인 성능 ※제공: 화엄사
관련주석
  • 주석 1 동해에 있다는 다섯 선산
  • 주석 2 불교의 성지. 여기서는 화엄사 터를 말함
  • 주석 3 법흥왕의 연호
  • 주석 4 부처의 5대 교설 중 하나
  • 주석 5 땅에 집자리를 그려 표시하는 것
  • 주석 6 전쟁으로 인한 잿더미
  • 주석 7 석가모니의 탄생지
  • 주석 8 동진(東晉)의 승려 지둔(支遁)
  • 주석 9 성능의 교제가 넓었던 것을 도림, 문창에 비유한 것
  • 주석 10 각각 서방과 동방의 별
  • 주석 11 강소성의 양자강 가에 있는 누각
  • 주석 12 양나라 무제가 창건한 절
  • 주석 13 선경(仙境)
  • 주석 14 모르는 것이 없는 지혜
  • 주석 15 훗날의 영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영잉군(迎扔君)’은 ‘연잉군(延扔君)’의 잘못이다.
  • 주석 16 훗날의 경종(景宗)
  • 주석 17 장수를 비는 뜻

관련기사

관련자료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