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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엄사 사적(만우 정병헌)

화엄사의 사적기(事蹟記)는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대사가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화엄사를 중창할 때, 문도들이 중관 해안(中觀海眼, 1567~?) 대사에게 사찰의 사적기 집필을 부탁하면서 처음으로 정리되었다. 1636년(인조 14)에 『호남도 구례현 지리산 대화엄사 사적(湖南道求禮縣智異山大華嚴寺事蹟)』이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화엄사사적』이 완성되었다. 화엄사의 개창과 연혁, 석존의 생애 및 불교의 동전(東傳), 고승의 전기, 화엄사의 전각, 최치원(崔致遠, 857~?)의 찬문 등으로 구성되었고, 주로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1636년에 중관 대사가 찬술한 필사본 『화엄사사적』은 1697년(숙종 23)에 백암 성총(栢庵性聰, 1631∼1700) 스님이 발문(跋文)을 붙여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만우 정병헌 스님의 『화엄사사적』 만우(曼宇) 정병헌(鄭秉憲, ?~1969) 스님은 1932년 7월부터 1938년 8월까지 화엄사 주지로 재임하였다. 1636년에 중관 해안 대사가 찬술하고, 1697년에 백암 성총 스님이 목판으로 간행한 『호남도 구례현 지리산 대화엄사 사적』에 내용의 오류와 혼란이 있는 것을 바로잡고자 노력하였다. 당시 화엄사에 소장하던 목판본의 『화엄사사적』과 조선 정조(正祖, 재위 1776~1800) 연간 이후에 찬술된 『봉성지(鳳城誌)』 등의 문헌 및 현판, 금석문 등을 참고하여 사적기를 완성하였다. 만우 정병헌 스님의 사적기는 중관 해안 대사의 그것을 토대로 하면서도 내용의 전거를 밝혔고, 사실 고증에 노력하였다. 특히, 불국사 관련 기록인 『불국사고금역대기(佛國寺古今歷代記)』, ‘비로자나문수·보현보살상찬(毘盧舍那文殊·普賢菩薩像讚) 등의 기록을 삭제하였다. 또한 자장 율사가 가져 온 사리를 화엄사에 안치하였다는 내용은 중관 해안 대사의 「철면자기(鐵面子記)」에서 인용하였다고 구체적으로 출처를 밝혔다. 다만, 불국사 관련 최치원의 글 「위헌강대왕결화엄경사원문(奉爲憲康大王結華嚴經社願文)」과 「왕비김씨시곡원문(王妃金氏施穀願文)」 등은 여전히 수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적기의 집록 당시까지 근세기의 화엄사 중창에 관한 사실을 시간 순으로 기록하고 있는 점에서 화엄사의 연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만우 정병헌 스님이 생전에 완성한 『지리산대화엄사지』이라는 이름의 사적기는 미간행인 채로 있다가, 1969년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에서 활자화하여 간행하였다. 원문은 『불교학보』 제6집에 『해동 호남도 구례현 지리산 대화엄사 사적(海東湖南道求禮縣智異山大華嚴寺事蹟)』(만우 정휘헌 집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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