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종」은 위암 장지연(張志淵, 1864~1921)의 문집 『위암문고(韋庵文稿)』 권9, 「조선불교관(朝鮮佛敎觀)」 에 수록된 글의 일부이다. 의천(義天, 1055~1101)의 「화엄사 연기조사의 진영에 참배하고(華嚴寺禮緣起朝師影)」 시와 『호남도 구례현 지리산 대화엄사 사적(湖南道求禮縣智異山大華嚴寺事蹟)』 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화엄종의 초조(初祖)에 관하여 연기조사(煙起祖師)를 언급하였다. 또한 신라 헌강왕 사후 서발한 김임보 등으로 하여금 60권본 『화엄경』 (진본)과 40권본 『화엄경』(정원본)을 자주색과 푸른색의 석벽에 베끼게 하였다는 화엄석경에 대한 내용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신라 법흥왕 당시 영취산의 낭지대사(朗智大師)가 『화엄경』을 강설한 것을 화엄종의 효시로 보았고, 이어서 원효와 의상을 화엄종의 초조라고 하였다. 『위암문고』는 『한국사료총서4』(국사편찬위원회, 1956)에 수록되어 있다.
원문
華嚴宗
華嚴宗, 其淵源據高麗大覺國師之詩史, 當以智異山華嚴寺之煙起祖師, 爲最初之祖, 大覺師詩云, 偉論雄經罔不通, 一生弘護有深功, 三千義學分燈後, 圓敎宗風滿海東, 又按華嚴寺誌曰, 昔粱陳間, 新羅僧開山祖煙起, 講究華嚴經起信論, 始創寺云, 有石塔石像, 而身戴舍利, 又云新羅憲康王薨後, 命舒發翰金林甫等, 寫晉本華嚴經六十卷及唐貞元本四十卷于紫靑兩石, 而爲石壁以藏焉。
新羅法興王時, 朗智大師在靈鷲山, 講華嚴經, 亦爲本宗之嚆矢, 然以實跡言之, 元曉義相兩師, 賞爲華嚴之初祖也。
출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관련기사
-
대화엄사 사적(필사본)화엄사의 사적기(事蹟記)는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대사가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화엄사를 중창할 때, 문도들이 중관 해안(中觀海眼, 1567~?) 대사에게 사찰의 사적기 집필을 부탁하면서 처음으로 정리되었다. 1636년(인조 14)에 『호남도 구례현 지리산 대화엄사 사적(湖南道求禮縣智異山大華嚴寺事蹟)』이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화엄사사적』이 완성되었다. 화엄사의 개창과 연혁, 석존의 생애 및 불교의 동전(東傳), 고승의 전기, 화엄사의 전각, 최치원(崔致遠, 857~?)의 찬문 등으로 구성되었고, 주로 ... -
대화엄사 사적(목판)화엄사의 사적기(事蹟記)는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대사가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화엄사를 중창할 때, 문도들이 중관 해안(中觀海眼, 1567~?) 대사에게 사찰의 사적기 집필을 부탁하면서 처음으로 정리되었다. 1636년(인조 14)에 『호남도 구례현 지리산 대화엄사 사적(湖南道求禮縣智異山大華嚴寺事蹟)』이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화엄사사적』이 완성되었다. 화엄사의 개창과 연혁, 석존의 생애 및 불교의 동전(東傳), 고승의 전기, 화엄사의 전각, 최치원(崔致遠, 857~?)의 찬문 등으로 구성되었고, 주로 ... -
대화엄사 사적(만우 정병헌)화엄사의 사적기(事蹟記)는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대사가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화엄사를 중창할 때, 문도들이 중관 해안(中觀海眼, 1567~?) 대사에게 사찰의 사적기 집필을 부탁하면서 처음으로 정리되었다. 1636년(인조 14)에 『호남도 구례현 지리산 대화엄사 사적(湖南道求禮縣智異山大華嚴寺事蹟)』이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화엄사사적』이 완성되었다. 화엄사의 개창과 연혁, 석존의 생애 및 불교의 동전(東傳), 고승의 전기, 화엄사의 전각, 최치원(崔致遠, 857~?)의 찬문 등으로 구성되었고, 주로 ...
-
조선불교통사-화엄종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중편, 화엄종 조에 수록되어 있다. 신라부터 고려까지 이어지는 화엄사의 역대 조사는 개산초조 연기조사 이래 해동화엄초조 의상법사, 고려개국 도선국사, 별대덕 현준법사 등이 있으며, 화엄사의 「조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원문 華嚴宗 智異山華嚴寺。本緣起祖師。率三千弟子。弘圓敎之處。亦係義相傳大敎之宗剎。故道詵國師。初就本寺。讀習大經。學徒百千。駭服稱神。賢俊大德。亦結華嚴經社。當時又刻華嚴經諸本于覺皇殿之石壁。 ※출처: ‘CBETA Online’, 中華電子佛典協會...
-
대각국사문집-화엄사 연기 조사의 진영에 참배하고「화엄사 연기조사의 진영에 참배하고」는 칠언절구로 의천(義天, 1055~1101)의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 권17에 수록되어 있다. 시의 내용은 의천이 화엄사 연기조사의 진영에 예를 올리고, 해동에 화엄의 종풍을 드날린 연기조사의 공적(功績)을 찬미한 것이다. 이 시는 화엄사 영전에 봉안된 [화엄사 창건 공덕주 연기조사(華嚴寺創建功德主緣起祖師)] 진영의 왼쪽 상단에 영찬(影讚)으로 수록되었다. 한편, 금명 보정(錦溟寶鼎, 1861~1930)의 『대동영선(大東詠選)』에는 「원효스님을 예찬하다(贊元曉師)」로 잘못 표...
-
연기 조사연기조사(생몰년 미상)는 화엄사를 창건한 스님이다. 그 이름은 기록에 따라 연기(緣起), 연기(烟氣), 연기(烟起), 연기(鷰起) 등으로 전한다. 스님의 출신에 대해서는 첫째, 6세기 신라 진흥왕대에 인도에서 온 스님이라는 설, 둘째, 8세기 중반 경주 황룡사 스님이라는 설이 있다. 연기조사가 인도 스님이라는 설은 1636년(인조 14) 중관 해안(中觀海眼, 1567~?) 스님이 쓴 『호남도 구례현 지리산 대화엄사 사적(湖南道求禮縣智異山大華嚴寺事蹟)』 중 544년(진흥왕 5) 범승(梵僧) 연기(烟起)가 창건하였다는 기록... -
각황전각황전은 왕실의 지원으로 1702년(숙종 28)에 계파성능(桂波性能)스님이 재건한 불전이다. 이 자리에는 장륙전이라는 이름의 불전이 있었고, 내부에 화엄석경이 봉안되어 있었으나, 정유재란 때 건물은 소실되고 화엄석경은 파괴되어 만여 점이 넘는 조각으로만 남아 있다. 전란 이후 벽암 각성스님의 중창 당시 대웅전만 재건되고 장육전은 재건하지 못하였는데, 1699년에 홍각, 등계, 성능스님이 영남 예천 학가산에서 와서 재건의 업적을 이어 2층 7간의 대전을 원통전과 함께 재건하였다. 공사는 1699년(기묘) 봄부터 1702년...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