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는 조선총독부박물관 고적조사 문서철 가운데 화엄석경과 관련된 자료를 모은 것이다. 화엄석경은 당시 ‘화엄경석(華嚴經石)’으로 지칭되었고, 화엄사 각황전 수리 과정에서 조사 및 정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화엄석경 조사 복명서 관련 자료에는 1936년(소화 11), 1937년(소화 12), 1941년(소화 16)의 날짜가 확인되며, 담당자로는 조선총독부박물관 학무국 고적계 소속의 촉탁 가야모토 가메지로(榧本龜次郞)와 화엄사각황전수리사무소 현장주임 카미쿠보 큐시로(上久保九市郞)의 이름이 보인다. 자료는 크게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①전라남도 구례군 화엄사 각황전 화엄경석 조사복명서 표지(관리번호 F009-005-001-001)
②복명서(관리번호 F009-005-002-001∼F009-005-002-021)
③복명서(관리번호 F009-005-003-001∼F009-005-003-014)
④편지(관리번호 F009-005-004-001)
⑤경석발견보고서(관리번호 F009-005-005-001∼F009-005-005-003)
⑥봉투(관리번호 F009-005-006-001∼F009-005-006-002)
⑦전라남도 화엄사 각황전 서북쪽모퉁이 돌담상부 실측도(관리번호 F009-005-007-001)
⑧복명서(관리번호 F009-005-008-001∼F009-005-008-017)
이밖에도 구례군마산면화엄사잔존화엄경석각탁본(관리번호 F123-005-020-001∼F123-005-020-002), 화엄사경석정리수납에관한건(관리번호 F160-133-001-001∼F160-133-001-002), 조선문예사수록화엄사석각화엄경잔석 (관리번호 L002-026-014-001∼L002-026-014-002)의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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