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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수행 방편이든 간절하면 성취합니다” —성우 스님의 수행관

불교 교리의 다층성과 다원성은 2,600여 년이라는 불교 역사의 전개 과정에서 시대와 공간(지역)에 따라 고(苦)의 문제에 대처한 응병여약(應病與藥)의 결과다. 이로 말미암아 불교는 다경전, 다방편의 종교가 되었다. 1,600여 년간 이어져 온 한국불교의 역사 속에서도 다양한 교설과 신앙이 전개되었다. 현대 한국불교에도 다양한 전통들이 혼융되어 있다. 당장 한국의 어떤 사찰에 가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새벽 도량석에는 천수경을 읽고, 상단예불 후에는 신중단 의식을 행한다. 이것에만 해도 관음, 다라니, 화엄, 신중 신앙이 공존한다. 웬만큼 큰 절에는 대웅전(대웅보전), 대적광전(대광명전, 비로전), 영산전, 극락전(무량수전, 미타전), 관음전(원통전), 지장전(명부전, 시왕전), 응진전(나한전) 등 다양한 전각이 있고 이에 더하여 산신각(산왕각, 산령각), 삼성각(독성각, 칠성각) 등 민간이나 외래 신앙의 대상까지 수용돼 있다. 가히 대승적 스케일이라 할 만하다. 한국불교의 대중들은 다양한 신앙 대상과 수행 방편의 혼융 상황을 혼란으로 받아들이거나 모순으로 여기지 않는다. 타성적 전통 수용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불교가 도그마에 갇힌 종교가 아니라는 점에 기인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고, 또한 중생의 삶—업—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 불교의 수행 현장에서는 참선 수행만이 최상승의 수행법이고 확철대오만 하면 모든 문제가 단박에 해결될 것이라는 식의 인식이 짙게 깔려 있다는 점이다. 깨달음 지상주의는 다수 불자들의 실제 신앙과 삶, 사회 현실과 겉돈다. 한국불교의 수행 현장에서 선—특히 간화선—이 과잉 대표되는 문제에 대한 비판은 십여 년 전부터 공론의 장에서 개진되었다. 비판적 논자들은 배타적 선 우월주의, 깨달음의 신비화, 몰사회성 등을 문제 삼는다. 성우 스님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떤 수행 방편이든 간절하게 실천하면 성취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화두든 염불이든 근본은 하나예요. 마음에서 하잖아요. 둘이 될 수가 없어요. 자기 근기 따라 화두 하는 사람은 화두를 하고 염불할 사람은 염불할 따름이지 어느 것이 수승하다, 어느 것이 하열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어느 것을 하든 결국은 마음의 문이 열립니다. 수월 스님 같은 분은 다라니를 하셨어요. 염불로 성취하신 분도 적지 않아요.” 성우 스님은 모든 수행 방편을 동등하게 인정한다. 하지만 스님의 개인적 수행의 중심은 참선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선방 수행을 했었고 이후로도 화두를 놓은 적이 없다. 1977년 『반야사상』, 『열반사상』을 출판한 이래 『선문답』(한겨레출판사, 1979), 『차와 선』(토방, 1998), 『선의 메아리』(불교춘추사, 2011) 같은 선 관련 책을 여러 권 냈을 정도로 실참과 언설 양면에 걸쳐서 탁마를 이어왔다. 다만 선(禪) 우월주의자가 아닐 뿐이다. 성우 스님이 쓴 『선의 메아리』는 중국과 한국의 선사 이야기다. 단순히 역사적으로 전해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목 그대로 선의 ‘메아리’ 즉 반향인데, 그 소리의 울림통인 성우 스님의 목소리로 담은 선사 이야기다. 스님은 이 책 곳곳에서 선불교의 고답성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부처님 말씀을 보면 어느 것 하나 어려운 것이 없다. (…) 그런데 부처님 마음의 법을 깨달았다고 하는 조사들의 말씀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스님이라는 이름 앞에 형용사는 사실 필요한 게 아니고 외려 추해 보이기까지 한다. 선사, 율사, 강사, 종정 같은 남루한 형용사에 의탁한 모양새는 수행한 스님, 마음의 문이 열려진 스님에게는 무관한 것이다.” “진리란 어려운 게 아니고 중뿔나게 특수한 게 아니다. 어떤 조홧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도 더더구나 아니다. 참되게 마음의 문이 열렸다면 누구보다도 더 진실한 목소리, 맑고 기운찬 생활어로 이야기해야 한다. 육도중생이 알아들어야 그게 법어가 되고 진리의 실상이 된다.” 스님의 이러한 의식은 젊은 시절 해인율원에서 공부할 때 당시 종정이었던 고암 스님 곁에서 듣고 배운 바이기도 하다. 스님은 고암 스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법은 활(活)로써 진체를 시현합니다.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일체 명상을 거부합니다. 부단한 자기부정을 통하여 창조의 연속으로 깊은 진실 면목을 발현합니다. 그러므로 불자의 믿음은 결코 관념적인 신앙이나 추상적인 고원한 법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모름지기 구체적인 현실 위에서 발현되어야 하며 행동으로 창조와 직결되어야 합니다.”(『선의 메아리』 171쪽)
선의 메아리
성우 스님은 율사라는 이름에 스스로를 얽어매지 않는다. 젊은 시절 선지식의 행을 보고 체득한 바다. “자운 스님은 율사였지만 아주 무섭게 정진했고 용성 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았어요. 율사였던 석암 스님도 선방에서는 철저히 정진한 분이고, 파계사에 계셨던 종수 스님 하면 율사를 떠올리게 되지만 젊었을 때는 전국의 여러 선방에서 정진을 했습니다. 율사니 선사니 하는 딱지가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한국불교의 선 수행 우위 풍토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조선 후기와 구한말 불교의 전통 회복과 중흥, 일제강점기 왜색불교로부터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 불교정화운동을 이끈 주된 동력이 선 수행이었다. 당대의 현실 문제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때와 다르다. 선의 일상성, 실천성이 결여되면 활발발(活潑潑)의 반대편에서 형해화하고 만다. 성우 스님은 재가 불자들의 기도에 대해서도 방편에 우열이 있을 수 없고 오로지 간절히 해야 할 따름이라고 말한다. “현대는 갈등의 시대지요. 번뇌가 성하니까요. 그러면 자신을 주체하기 어려워요. 기도해야죠. 염불이든, 사경이든, 독경이든 어느 것이든, 반듯하게 간절히 행하면 성취할 수 있습니다.” 성우 스님의 수행관은 업사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른 것처럼 저마다의 업이 다르다. 시대적, 사회적 고통 또한 달라지게 마련이다. 수행 방편이 한 가지일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 집필자 : 윤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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