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 스님의 시는 따뜻하다. 찻잔을 감싸 쥔 두 손에 깃든 봄볕의 온기 같다. 그 온기는 은미하다. 풀꽃이나 씨눈, 이미 시들어버린 떡잎,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에 어린 온기다. “잃어버린 떡잎에 묻어둔 씨눈 한 알”(『화엄의 바다』, ‘1’)을 이루어낸 온기이고, 다시 그것들이 세상에 내 놓은 온기다. 스님은 그 온기가 이루어 낸 세계의 실상을 이렇게 노래한다.
봄볕 한 사래
머금고
바람 한 움큼
쥐고.
—‘풀꽃’ 전문(『그대 창을 두드리는 바람 잠시 뿐이리니』, 한멋, 1986)
성우 스님이 ‘풀꽃’으로 그려낸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의 도리다. 사실 풀꽃은 보잘것없지만 그 배후는 소리 없이 거대한 ‘봄의 약동’이다. 스님은 그 생동의 기운을 화선지의 순백 속에 묻고 풀꽃을 전경화함으로써 ‘화엄사상’을 4행의 짧은 시로 압축한다. 물론 모든 독자가 이 시를 화엄사상과 연결지어 이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서 이 시의 성취가 반감되지는 않는다. 봄볕을 ‘사래(사리)’, 바람을 ‘움큼’으로 즉물화하여 풀꽃 하나가 너끈히 봄을 감당하게 함으로써 우리 앞에 생명의 경이를 펼쳐 놓은 것만으로도 시적 성공이다.
성우 스님의 시는 쉽게 읽힌다. 스님이 뜻한 바다. “시는 쉬워야 하고 또 읽혀져야 한다는 소신은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그대 창을 두드리는 바람 잠시 뿐이리니』, ‘군더더기’(시인의 말)] 스님은 어려운 시어나 화려한 수사를 선호하지 않는다. 선시에서는 반상합도(反常合道)의 파격을 더러 구사하지만 대체로 평범한 일상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읽기’ 쉽다. 하지만 읽기 쉽다는 것이 반드시 ‘이해하기’ 쉽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스님의 시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불교사상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시가 그렇다.
바람 지나간 자리 흩어진 꽃잎들을
잎잎이 줄을 꿰니 아름다운 꽃타래네
봄날에 드는 낮잠은 제왕보다 느긋하이.
—화엄의 바다 연작 ‘60’ 전문(『화엄의 바다』, 토방, 2000)
위 시를 ‘화엄사상’에 대한 이해 없이 읽을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 무르익은 봄날의 서경, 근심걱정 놓아버린 한 도인의 서정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사사무애(事事無碍)의 경계’를 해득하는 것만 할까? 성우 스님의 시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불교사상의 오의를 쉽게 펼쳐 놓은 데 있다. 역대 조사들의 선어록에 주옥같이 남겨진 난해한 개념어들을 가져다 쓰지 않고, 스님의 체험을 그대로 드러낸 데서 나오는 힘일 것이다. 스님의 시가 쉽게 읽힌다는 건 반쯤 맞는 견해로 봐야 한다.
성우 스님의 시작(詩作) 주제는, 선(禪), 도(道), 화엄, 업(業), 인과, 윤회, 해탈 같은 것들이다. 하나같이 큰 주제다. 반면에 그것을 시적으로 형상화할 때 구사하는 언어는 대부분 단순하고 평범하다. 그래서 ‘시의 화자’는 수행자로서의 정체성보다 늘 몇 걸음 뒤에 있고, 시적 형상화에서도 문학성보다는 전달력을 우위에 둔다.
화엄의 바다
성우 스님의 시를 보면 발표 시기를 막론하고 풀잎, 꽃잎, 들풀, 별, 별빛, 햇볕/햇빛, 봄, 봄볕 같은 시어를 즐겨 사용한다. 그 가운데서도 ‘-볕’이 빈번하다. “보리밭 밭고랑 볕살 절로 밝아 이쁘다”(‘선시·19’). “동 트는 새벽 볕살을 혼자 쓰고 갔구나”(‘선시·42’), “바람 속 먼지들이 햇볕을 등에 지고”(‘화엄의 바다·22), “햇볕 나지 않아도 풀잎 색깔 분명하고”(‘화엄의 바다·99) 같은 시행들이 그렇다. 이 시문에서 ’볕’을 ‘빛’으로 바꾸어도 통사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 우리들의 일상 어법에 비추어 보면, ‘볕살’보다는 ‘빛살’, ‘햇볕’보다는 ‘햇빛’이 더 자연스럽다. 그런데 왜 스님은 ‘-볕’으로 썼을까. 의도적 선택인지 본능적 이끌림에 따른 것인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그것이 다음과 같은 따뜻한 시를 낳았다.
아주 진실한 것은
여백
조금 아름다운 게
수선스럽지
크게 아름다운 것은
드러나지 않는 법
마음도 고운 마음은 봄 볕살.
—‘봄 볕살’ 전문(『사랑,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모자라는 아기에게』, 고요아침, 2003)
2연의 두 행, ‘조금 아름다운 게/ 수선스럽지’.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눈에서 떠나지 않고 마음에 붙는다. 이 구절의 낙처는 ‘마음도 고운 마음은 봄 볕살’이다. 이 시를 낳고 기른 건 ‘볕’이다. 빛이 광학적 물리 작용으로 우리의 시각에 길을 내 준다면, 볕은 따뜻한 손으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우리를 크게 아름다운 세계로 데려간다. 그리하여 도달한 곳은 ‘따뜻하게 밝은 세상’이다.
성우 스님의 시 세계에서 주제는 선(禪), 도(道), 화엄, 업(業), 인과, 윤회, 해탈 같은 큰 주제라고 앞에서 썼다. 하지만 스님은 그런 주제의 교학적, 사변적 해석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궁극의 목적은 오직 ‘업’과 ‘윤회’라는 고통의 극복—해탈—이다. 마음을 ‘밝게’ 하여 ‘자비’로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 하여 스님의 시는 ‘따뜻한 밝음’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성우 스님의 근작 시집의 제목은 『봄볕에 차를 달이며』(토방, 2002)인데, ‘시인의 말’에서 “한 세상 살면서/ 그 존재만으로 내 마음이 한 가닥 빛이 되었던 분들을 잠시 돌아보았다./ 그 분이 있어 행복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다음 생에도 다시 만나고 싶은 인연들이다.” 하고 썼듯이, 99분 선지식, 즉 사람에 관한 시다. 스님에게 봄볕은 ‘사람’이었다. 스님이 불교 태교를 주창한 것도 생명 그 자체, 불성을 지닌 인간에 대한 절대긍정이었듯이.
성우 스님은 ‘볕의 시인’이다.
사랑,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모자라는 아기에게
· 집필자 : 윤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