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시 그리고 화두는 성우 스님과 평생을 함께했다. 사실 이 세 가지는 친연 관계로 볼 수 있을 만큼 가깝다. 스님은 통도사 강원 학인 시절 통도사 극락암 삼소굴에서 경봉 스님이 주신 차 한 잔의 인연으로 차의 세계에 눈을 떴다. 이후 범어사에서 차 생활을 시작하여 1981년에는 『다도』(한겨레출판사)라는 책을 낼 정도로 깊이 빠져들었다. 스님이 『다도』를 낸 이유는 ‘이 땅의 흙냄새 물씬한 바탕 위에’ ‘산중에서 맛보는 찬물같이 마음을 시원케 하는’ 우리의 차 문화를 찾기 위해서였다. 당시 한국의 차 문화는 일본풍의 모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스님은 우리 차 문화의 바탕이 한국의 불교문화이고 형식적 틀 또한 불교의례와 발우 공양이 원형임을 규명하고자 했다.
성우 스님은 『차와 선』(토방, 1998)이라는 책에서, 『다도』를 내고 나서 제목 때문에 “땡감을 먹은 듯한 기분이었다.”고 술회했다. 우리에게는 (현재 우리가 말하는 의미의) 형식화된 ‘다도’는 없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출판사에서는 일반인들에게 이미 익숙해졌다는 이유로 ‘다도’를 제목으로 붙였다. 스님은 우리 차 문화의 구체화된 모습을 일컫는 말로 다도 대신 ‘차례(茶禮)’를 제시한다.
차와 선
“다도라는 말 자체가 일본식 이름이에요. 일본에선 다도, 서도, 궁도, 무도 등으로 도를 붙이기 좋아하죠. 중국에서도 다도라는 말은 쓰지 않아요. 그들은 다예(茶藝)라고 하죠. 생활예술이라는 겁니다. 우리나라에는 다도라는 게 없었어요. 하지만 분명히 차 문화는 찬란히 꽃피었습니다. 그것이 차례예요.”
초의 스님이 쓴 『동다송(東茶頌)』을 봐도 차의 효능과 이에 관한 고사, 동다(한국 차)의 우수성, 차의 성질과 모양, 차 생활의 요체 등을 말할 뿐 ‘다도’라고 일컬을 만한 내용이 없다. 초의 스님이 『다신전(茶神傳)』(청나라 모환문(毛煥文)의 『만보전서(萬寶全書)』에 장원(張源)이 지은 「다록(茶錄)」을 정리하여 실은 것을 초의 스님이 1830년에 필사하여 『다신전(茶神傳)』이라 이름 붙였다.)을 베껴 쓴 이유를 밝힌 글에서 ‘다도를 알기 위해서’, ‘총림에도 간혹 조주의 유풍이 있지만 모두들 다도를 모르므로 베껴 써서 보이니 두려워할 만하다’고 하면서 다도를 언급했다.[정민(2011)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서울:김영사)] 참고.)
『다신전(茶神傳)』의 내용은 제다법, 보관법, 마시는 법, 물 선택하는 법, 도구 등에 대한 설명이다. 그런데 초의 스님은 차를 신격화하여 ‘차 신의 전기’라 이름 붙였다. 그렇다면 초의 스님이 언급한 다도는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넓게는 찻잎을 따서 차를 만들고 마시기까지의 전 과정, 즉 차 전반에 관한 일반론으로서 다도다. 좁게 이해하면 ‘다신(茶神)’을 만나는 법으로서의 다도다. 다시 말해 좋은 물로 차의 정수를 드러내는 일이다. 『다신전』의 「품천(品泉)」에 “차는 물의 신(神)이고, 물은 차의 체(體)다. 진수(眞水)가 아니고서는 그 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정차(精茶)가 아니면 그 체를 엿보지 못한다.”고 했다. 쉽게 말해서 좋은 물에 좋은 차로 다신을 만나는 일이 다도라는 것이다.
초의 스님이 『다신전』 후기에서 언급한 다도를 넓게 해석하든 좁게 해석하든 현재 우리가 말하는 행위 중심의 다도와는 다른 의미다. ‘다도’라는 말에는 심미성이 내포돼 있다. 초의 스님은 그것을 극대화시켰다. 성우 스님은 그런 식의 차 정신과 거리를 둔다. 물론 성우 스님도 차 문화의 정신성을 인정하지만, ‘차의 형이상학적 의미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라는 정도다. ‘다선일여(茶禪一如)’ 같은 표현도 수용하지 않는다.
‘다선일여’에 대해 성우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한 경지를 넘어선 분들에게는 다선일여가 맞겠지요. 그러나 그러지 못한 많은 분들에게는 맞지 않는 말이에요. 말을 하다 보면 의미를 부풀리게 되는데 그런 말은 매력이 떨어져요.” 스님의 오래된 생각이다.
한 잔의 차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인격 수양의 도구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적 인격은 이룰 수 없다. 여기서 절대적 인격이라 함은 진리의 완성을 의미한다.
흔히 차와 선을 같다[茶禪一如]고 하는가 하면, 다선동미(茶禪同味)라고들 한다. 이런 이야기는 차를 아끼는 이들의 말장난이 아닌가 싶다. 만약 차와 선이 같다고 한다면, 마치 노루 그림자만 보고 노루를 보았다고 하듯이 선의 이름만 듣고 선을 아는 체하는 것이 아닐까.
—『다도』(한겨레출판사, 1981) 212~213쪽.
다도
성우 스님은 어떤 분야의 일에서든 과도한 의미 부여나 과장된 몸짓을 좋아하지 않는다. 차 생활에서도 그렇다. 스님이 생각하는 차 문화의 본질은 ‘성심’과 ‘자연스러움’이다. “예불할 때 부처님께 차를 올리잖아요. 그 정성스러운 마음이 차 문화의 본질입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향가 가운데 〈안민가(安民歌)〉라고 있지요. 충담 스님이 3월 3일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께 차 공양을 하고 오는 길에, 대덕을 찾아오라는 경덕왕의 명을 받은 신하들에게 이끌려 궁궐로 가서 왕에게 차를 달여 준 다음 왕의 청으로 지어 준 노래가 〈안민가〉잖아요. 아마 마지막 구절이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할지면 나라가 태평하리라’ 하는 노래일 거예요. 임금 앞에서 ‘임금답게’ 하고 말하기가 쉽지는 않지요. 요즘 같으면 대통령 면전에서 ‘대통령답게’라고 말하는 건데, 힘든 말이잖아요. 이렇게 본다면 충담 스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죠. 그것이 바로 차 정신의 본질입니다. 그런 자연스러움에서 차 문화의 본질을 찾아야 합니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경덕왕을 만난 충담 스님은 해진 장삼에 앵통(櫻筒)을 진 모습이었다. 앵통 속에는 다구가 들어 있었다. 길을 떠나서도 차를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차 문화가 성행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겠다.
불교가 이 땅으로 전래될 때 차 문화도 함께 들어왔다. 신라, 고려 때처럼 불교가 흥성할 때는 차 문화도 활짝 꽃피었다. 조선시대에는 불교와 함께 차 문화도 쇠퇴했다. 초의 스님 같은 분의 열정으로 다시 살아나는 듯 했지만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나마 차 문화의 맥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건 절집의 의식과 생활 문화를 통해서였다.
성우 스님은 한국 차 문화의 정신적, 형태적 바탕이 우리의 절집 문화에서 찾았다. 그것이 차를 마시는 예법으로서 차례(茶禮)다. “부처님 앞에 다기가 있잖아요. 조선 시대에 들어 차가 귀해지기 전에는 요즘 같은 청정수가 아니고 차를 올렸죠. 육법공양에도 차가 들어 있습니다. 큰 절에서는 요즘도 부도 다례를 모시지요. 그리고 발우 공양은 차 생활의 형태적 근간입니다. 발우 공양의 격은 참으로 고아합니다. 먹는 일이 의식이자 수행입니다. 그리고 평등합니다. 이런 식의 식사법은 발우공양 말고 없습니다. 이 모습을 그대로 옮기면 차를 마시는 법도가 됩니다. 우리 차 생활 문화의 근간은 발우 공양입니다. 소참 법문 때도 차를 마시는데 이것이 생활 차의 원형적 모습이고요.”
성우 스님이 생각하는 우리 차 문화의 원형은 부처님께 올리는 차 공양과 스님들의 발우 공양이다. 그리고 그 정신은 성심, 평등, 자연스러움이다.
· 집필자 : 윤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