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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를 ‘시(詩)’로 나누다

성우 스님은 첫 시집 『어둠이 온다고 서러워 말라』(한겨레출판사, 1979) 이후 모두 14권의 시집을 냈다. 2008년에는 9권의 시집을 묶어 『석성우 시전집』(토방)을 발행했다. 『석성우 시전집』에는 806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이후에도 3권의 시집을 더 냈으니 족히 1,100편이 넘는 시를 발표했다. 50년이 넘는 시력을 감안하더라도 다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작 시집은 『봄볕에 차를 달이며』(토방, 2022)인데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쓴 시를 묶어 낸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스님이 남긴 시편의 수가 많고 적음은 말할 거리가 못 된다. 거의 일기처럼, 시작은 생활의 일부였다.
석성우 시전집
성우 스님은 ‘차(茶)’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징검다리’라 했다. 스님에게는 ‘시(詩)’ 또한 하나의 징검다리였다. 징검다리는 갈지자걸음으로 건널 수 없다. 나의 보폭은 지우고, 징검돌과 나의 호흡을 일치시켜야 한다. 큰물이 나면 징검다리는 소용없다. 시인과 독자 사이의 징검다리를 건널 때도 감정의 격랑이 잦아들기를 기다려야 한다. 때로 물이 말라 징검돌이 그저 발길에 채는 돌멩이에 불과할 때도 못 본 척 직진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아주 미련한 소통 방식이다. 하지만 전광석화처럼 즉각적이기도 하다. 성우 스님은 왜, 시라는 징검다리를 놓았을까. 스님은 첫 시집 『어둠이 온다고 서러워 말라』의 ‘남은 말(서문)’에 이렇게 썼다. “산에 와서까지 시를 쓴다는 일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부끄러운 줄 알면서 깨끗이 이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일이 더욱 부끄럽다. 이렇게 나를 발가벗기고 보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스님은 ‘서문’, ‘자서’, ‘시인의 말’ 같은 일반적 표현 대신 굳이 ‘남은 말’이라 했다. 시집에서 ‘시 이외의 말은 군더더기(잉여)’라는 의미일 텐데, 실은 시 쓰는 일의 ‘부끄러움’을 밝혀 두고자 한 데 더 큰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 부끄러움의 정체는 시로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부처도 눈 감겨놓고 푸른 죄 하나 짓자 가슴에 묻어 아프지 않을. ―‘가을에’ 전문, 『어둠이 온다고 서러워 말라』.(한겨레출판서, 1979) 성우 스님은 가을에 맑은 하늘을 쳐다본 것을 ‘죄’라고 했다. 왜 그것이 죄인가. 하늘을 보고 쓴 ‘시’는, “바라본 하늘빛을 다 다스리지 못한 형벌”이고 “데데한 짓거리”일 뿐이다.(위 시집의 ‘남은 말’) 심지어는 시를 ‘번뇌의 꽃’이라고 했다. “산에 취하고 구름과 노을빛에, 풍경소리에, 새벽 별빛에, 저녁 북소리에, 종소리에, 봄볕에, 산빛에, 밤바람 소리에, 그런 외부적 환경에 자기를 어쩌지 못해 어설픈 감정에 젖는다면 그는 사문이 아니고”, “번뇌의 오랏줄에 묶여 운문(시)의 그늘 속에 빠진다는 것은 그 자체가 파계이다.”(‘시작노트’ 『산란』(한겨레출판서, 1979)는 아연한 진술을 접하면, 시 쓰는 일의 ‘부끄러움’을 단순히 시적 역설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조금 성급한 면이 있지만, ‘시의 그늘에 빠지는 것’을 ‘파계’라고까지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은, 시 쓰기를 빙자하여 자연을 완상하고 고요를 즐기는 것에 탐착하지 말라고, ‘순경계(順境界)’에도 안주하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보내는 경고로 읽을 수 있겠다. 성우 스님의 시 쓰는 일에 대한 부끄러움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묽어지거나 둔감해지지 않았다. 불교학술원과의 대담에서도 “수행자로서 시를 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거예요. 정말이지 부끄러워요. 그런데 전생 업이 남아 있어서 쓰게 됐나 봐요. 쓰면서도 나 혼자 웃어요. 역시 내가 나에게 속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하고 말한다. 스님의 부끄러움은 진심이다. 그 마음에서 이런 시가 나왔을 것이다. 일종의 ‘자경문(自警文)’이다. 도적의 마음은 허하다 때로 낙엽을 훔치기도 하지만 때로 낙서도 한다. 자기 마음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남의 마음 훔치러 칼을 간다. ―‘칼을 간다’ 전문, 『마음 비워 좋은 날』.(토방, 1992) 위 시의 제목 ‘칼을 갈다’는 심검(尋劒) 즉 참선을 말한다. 참학자(參學者)인 시인은 스스로를 도적으로 3인칭화 하여, 자연을 노래하고 시 쓰는 일을 ‘낙엽 훔치기’와 ‘낙서’에 비유했다. 그리고 크게 한 방, ‘자기 마음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남의 마음 훔치러 칼을 간다’고 정수리를 내려친다. 이 시의 성취는 시의 화자인 시인이 스스로에게 시원하게 한 방 먹인 것이 아니다. 이 시의 기만한 전달력이 독자가 스스로를 (그가 누구든) 도적의 자리에 앉히게 한다는 데 있다. 딱히 참선이 아니어도 마음공부 혹은 수행의 요체가 무엇인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깨닫게 한다. 한 권의 수행 지침서를 읽는 소득에 비할 바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징검돌 하나는 얻는다. 징검다리를 놓는 사람은, 돌의 모양새에 신경 쓰지 않는다. 가까이 있는 것 가운데 적당한 것을 생긴 대로 앉힌다. 성우 스님의 시작도 이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시의 형태에 대한 어떤 고정관념 같은 걸 갖고 있잖아요. 그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런 것과 상관없이 한 순간의 생각, 떠오르는 생각 그대로 글로 담자, 그런 생각으로 썼죠.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이, 그저 내 마음의 한 차원을 생각 그대로 드러내는 거죠.” 성우 스님의 시작 태도는 자신의 경계를 드러내는 데 거짓과 꾸밈을 용납하지 않는 선문(禪門) 가풍에 뿌리를 둔다. 언어의 세공에 크게 마음 두지 않는다. 초고가 거의 퇴고다. 설사 나중에 봤을 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그냥 내보낸다. 어차피 시란 것은 쓸 때의 마음 차원일 따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언어의 조탁이 수행보다 우위를 점하지 않게 한다. 성우 스님은 시 쓰기를 부끄러운 일이라 여기면서도 써야 했던 이유를 『연꽃 한 송이』(불광출판사, 1995)의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시는 삶의 부스러기. 그게 때론 은빛으로 빛날 때가 있다. 그 은빛 그늘에 목마른 마음을 쉬어갈 수도 있겠거니 하는 생각이 또 시를 쓰게 한다. 물론 지나친 자만이다. (…) 일상의 공간에 밝은 빛이 가득하기를 염원하는 소박한 사람들의 영혼 앞에 이름 없는 작은 풀꽃으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바람이 낳은 시가 우리 곁에 바람처럼 다가왔다. 일진이 좋지 않은 날은 혼자 작설차나 마시지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말게 구름이 많은 날은 혼자 산길이나 걸어야지 친구를 만나지 말게 바람이 센 날은 국화꽃을 꺾지 말게 낙엽이나 주워다가 바람에 띄워 보내게 ―‘한일(閑日)’ 전문, 『마음 비워 좋은 날』.(토방, 1992) 위 시는, 제목 ‘한가한 날(閑日)’과는 정반대의 상황, 일진 사나운 날, 구름—근심 걱정—많은 날, 바람 센—고단한—날을 ‘일 없는 날’로 만드는 비결(?)을 일러 주는 시다. 피곤한 일상에 힘겨운 현대인들에게 보내는 성우 스님의 위로 편지다. 시력 50년이 넘는 성우 스님은 늘 시 쓰기를 부끄러워했다. 최근에서야 부끄러움을 언급하지 않은 시집을 냈다. 『봄볕에 차를 달이며』(토방, 2022)라는 시집이다. 스님에게 ‘행복’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아 준 아흔아홉 분 선지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분들의 생애를 기린 시다. 한 편만 보자. 무거운 가사 접어 부처님께 바치고 썩은 주장자는 불소시게 하였지 맨몸에 살 터지는 추위 혼자 감당하였네. ―‘사명 대사’ 전문, 『봄볕에 차를 달이며』.(토방, 2022) 마침내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을 내려놨다.
석성우 시전집
· 집필자 : 윤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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