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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해탈로서의 태교

상상력은 예술 분야에만 긴요한 게 아니다. 사는 일에서도 품격을 높이는 상상력에 비례한다. 역지사지가 어려운 이유도 상대의 처지를 헤아리는 능력이 상상력의 범주에 속하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상대한 사람이, 세상이라는 바다의 어디쯤에 놓여 있는지를 생각한다는 게 쉬울 리 없다. 거기에 닿는 힘이 상상력이다. 스님과 태교.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성우 스님의 ‘태교’도 상상력의 소산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우선 스님들의 삶은 결혼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스님이 ‘태교’를 설했다. 스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사람보다 귀한 것은 없어요. 어떤 사람이 더 귀하냐? 사람다운 사람이 귀해요. 그런 사람을 맞이하는 일이 태교예요.” 성우 스님은 사람다운 사람을 맞이하는 일을 불교사상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궁리를 거듭했다. 홍콩 홍법원에 있을 때였다. 화두를 들려고 앉았는데 화두는 간 데 없고 태교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실소했다. 그때 한 생각이 떠올랐다. 업보사상. 태교라는, 스님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상상이 업보 사상으로 스님을 데리고 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 업으로 태어납니다. 업보 중생인 것이지요. 이렇게 태어난 중생은 자기 업대로 살다가 업이 다하면 이 세상 떠납니다. 그래서 세상엔 찌들은 삶을 사는 사람이 많은 겁니다. 제가 불교의 업 사상에서 태교의 방편으로 발견한 것이 ‘원력소생’이에요. 부처님은 500생 동안 자비행을 닦아 금생에 부처를 이루었습니다. 자기 원력으로 태어난 것이지요. 이에 비해 불보살의 가피력으로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자장 스님 같은 분이 그렇게 세상에 나왔습니다. 자장 스님의 아버지는 마흔 살이 되어도 자식이 없자 천수대비께 ‘일점혈육을 점지해 주신다면 나의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불법의 대들보로 삼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의 원력으로 태어난 사람이 자장 스님이에요. 아버지의 기도로 이루어진 원력소생이었던 것이지요.” 성우 스님이 말하는 태교는 사람다운 사람, 아름다운 사람을 맞이하고자 하는 원으로서의 기도다. 스님의 태교 시집 『사랑,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모자라는 아기에게』의 서시를 보면, 스님의 뜻이 고스란하다. 수정보다 맑은 마음으로 기다려온 인연 기다렸던 시간은 금싸라기 같은 행복이었네 무언가 모르지만 조금은 막연하지만 한 생명을 기다리는 이 지엄한 행복 순간순간의 염원은 밝은 빛으로 하늘에 닿으리라. —태교 시집 『사랑,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모자라는 아가에게』(고요아침, 2003) ‘서시’ 전문. 성우 스님은 위 시집의 모든 시에 시작 노트를 겸한 짧은 글을 붙여 놓았다. 서시에 곁들인 스님의 짧은 산문에는 시라는 형식으로 담아내지 못한 스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 “어머니와 아기의 만남은 이 세상의 어떤 인연보다도 소중하다. 어머니는 설레는 마음으로 아기가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아기는 어머니를 보고 싶어 한다. 배 속에서부터 아이를 생각하고 항상 바른 말만 하고 바른 일만 하라.” 스님의 당부는 ‘항상 바른 말만 하고 바른 일만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스님은 부담으로 느낄 수 있는 교훈적 말을 직설적으로 하기에 앞서 어머니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아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밝은 빛으로 하늘에 닿기를 염원한다. 출세간의 스님이 생명의 탄생이라는 세간사에 동참하는 방식이다.
사랑,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모자라는 아기에게
성우 스님은 한 세월 태교에 성심을 다했다. 사람이 세상에 오는 일은 절박한 현실의 문제라고 봤기 때문이다. “불교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내가 선택하는 거예요. 업, 다른 말로 카르마에 의한 것이지요. 업보소생입니다. 그렇게 태어나면 업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어리석은 짓, 지혜롭지 못한 짓, 박복한 짓, 박덕한 짓을 하게 되는 거예요. 너무 안타까운 일이죠. 그래서 숙세에 걸친 탐진치에 의한 업의 과보를 이겨 내는 방편으로서 태교를 한 것입니다.” 정업(定業)은 깨달은 이도 피해갈 수 없다 했다. 하지만 바른 행으로 정업을 감당할 힘은 기를 수 있다. 탐진치에 의한 업의 과보를 이겨낸다는 것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성우 스님은 『태교』(백양출판사, 1986)를 시작으로 많은 태교 책을 냈다. 태교 시집 『하늘 맑은 날』(토방, 1995), 『태교에세이』(토방, 1996), 『전통 태교 의미의 재조명』(토방, 1996), 『태양처럼 솟아나소서: 임신부가 부처님께 올리는 발원문』(토방, 1996), 『사랑,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모자라는 아기에게』(고요아침, 2003) 등의 책들이 태교에 바친 성우 스님의 노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말해준다.
태교
성우 스님은 책을 낸 이후로 법문을 청하는 데가 있으면 어디든 갔다. 가서는 태교 이야기를 했다. 통상적인 법문이야 어떤 스님들에게도 들을 수 있지만 태교 이야기를 하는 스님은 없었다. 청소년 수련법회에 가서도 태교 강의를 했다. 스님과 BTN의 인연도 태교 강의에서 시작되었다. 사찰이 아닌 곳에서도 태교 강의를 청하는 곳도 많았다. 스님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태교 강의에서는 늘 “태교는 태아를 한 인격체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인식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생명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살아 있는 불교 교육이었다. 성우 스님은 태교를 한 인간의 탄생에 관한 것으로만 보지 않았다. 부모의 원력으로 선업을 지은이가 많이 태어나면 그만큼 사회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스님은 업의 사회적 속성을 이렇게 말한다. “업을 짓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스님의 이 말에서 198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이르기까지 열풍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붐을 이루었던 여느 태교와 변별점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태교에 대한 대체적인 인식은 ‘천재 낳는 비법’ 정도였다. 세상의 현실은 모든 개인의 업과 업이 뒤엉켜 돌아가는 업의 총체다. 그래서 세상은 잡회(雜會)로도 번역되는 사바(娑婆, sahā)일 수밖에 없다. 성우 스님은 이런 현실에서 정토를 실현할 방편으로 태교를 상상했다. 그 상상을 업보 사상과 연결지어 귀한 생명을 기다리는 원력소생의 기도로 구체화했다. 상상은 몽상이나 공상과 달리 구체적 현실의 지평 위에 서 있다. 냉정하게 현실을 보고 투철하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만이 상상한다. 성우 스님의 태교는 사바라고 하는 현실 세계의 고통 타개, 사회적 해탈의 상상이기도 했다. 저출생 문제가 국가적 현안이 된 지금, 태교를 태아와 산모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공동체의 책무로 받아들일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대중교통 수단의 임산부석 같은 공공 시스템을 약자 배려 차원을 넘어 사회적 태교로 시야를 넓히자는 것이다. 이것을 미리 보여준 것이 성우 스님의 태교다.
하늘 맑은 날
· 집필자 : 윤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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