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현대불교』, 불교는 언제나 ‘현대’ 불교임을 밝히다

책을 내면서 ‘필자’만 하던 성우 스님은 『다담』 발행을 하면서 독자와 필자를 모두 상대해야 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정기간행물은 구독자와 시간의 구속을 받기 때문에 자기 호흡대로 하는 글쓰기와 다르다. 월간지를 발행하면 한 달을 하루처럼 살게 된다. 『다담』지 발행이 몸에 붙어갈 즈음 성우 스님에게 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차피 힘들게 월간지를 만들고 있는데 불교 전문지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역시 스님이 즐겨 하는 표현대로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이번에는 하나가 더 붙었다. 문서 포교. 스님이 정색을 하고 ‘포교’를 의식한 처음 일이었다. 『현대불교』지를 창간하기로 마음을 정한 성우 스님은 당시 조계종 종정이었던 성철 스님을 뵈러 해인사 백련암으로 갔다. 해인율원 학인 시절 고암 종정 스님과 함께 하는 108참회 때 쓸 향을 얻으러 가곤 했던 그 백련암이다. 그 무렵, 훗날 하나의 고유명사가 된 성철 스님의 ‘100일 법문’을 듣고 나서 성철 스님을 찾아 가 “스님, 법문이 너무 어려워요.” 하고 솔직하게 소감을 밝혔던 때로부터 22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다음이었다. 스님은 종단의 큰 어른이신 성철 스님께 『현대불교』지 창간을 고하고, ‘목어가 승천하고 일월이 빛나리라.’는 축하 법어를 받았다. 잡지 『현대불교』는 불기 2533년(1989) 8월호를 ‘창간호’로 세상에 나왔다. 성우 스님은 ‘사람답게 사는 일에 관심 둘 때’라는 제하의 ‘창간사’를 통해 『현대불교』의 창간 취지를 밝혔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일 한 가지만 손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마음[心性]을 다듬는 일이 아닐까 싶다. (…) 예나 이제나 그리고 어떤 시대나 사람이 살아간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 역사가 바뀌고, 제도나 문화가 바뀌어도 결국 구성하는 주체는 인간이다. (…) 일찍이 석가모니 부처님은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인간이 살아가야 할 길을 열어 주셨다. 그 가르침이 이천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 우리들의 가슴에 절실하게 와 닿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현대불교』는 오늘과 동시에 내일을, 성실하고 값지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동반자가 되고자 한다. (…) 한 마음 깨끗하면 온 누리 깨끗하고 한 생각 밝으면 영혼 또한 광명이다. —『현대불교』 창간사(성우 스님, 1989) 어떤 잡지든 창간호를 보면 지향과 성격을 알 수 있다. 『현대불교』는 창간호 권두 대담으로 철학자 고형곤(1906~2004) 선생을 모셨다.(대담: 이정범 편집장) 창간 특집으로 ‘Ⅰ. 한국의 정신’, ‘Ⅱ. 오늘의 불교, 이렇게 진단한다’는 두 가지 큰 주제를 선정하여 불교계 안팎 전문가의 글을 실었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현대불교』가 어떤 잡지였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한국의 정신’이라는 기획 주제에는 「한국 사상의 원류」(김용구), 「우리 민족 사상의 흐름」(윤구병)을 실었다. ‘오늘의 불교, 이렇게 진단한다’는 주제에는 「한국 불교의 현실과 처방」(김성규), 「우리에게 믿음은 무엇인가」(김재영), 「한국불교운동 어디까지 왔는가」(여연), 「언론 출판의 본질적 오류」(김형균), 「왜 불교가 현대인을 치유할 수 있는가」(윤재근) 같은 글이었다. 묵직하면서도 현실적인 문제들을 짚는 글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지금 다시 꺼내 펼쳐도 좋을 만큼 현재 시점에서 봐도 문제적이다. 『현대불교』에 글을 쓴 필진들의 면모도 주목할 만하다. 지금은 농사짓는 철학자로 널리 알려진 윤구병 선생은 당시 충북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 사상계에 실천적 혁신의 바람을 일으켰다. 성우 스님과는 동년이기도 하다. 윤재근 교수는 동양 고전을 현대인에게 쉽게 풀어 전달하는 데 탁월한 베스트셀러 저자였다. 김재영 선생은 청소년 포교에 큰 공적을 남긴 탁월한 실천가이자 저술가로 현재까지도 왕성한 불교 신행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창간호 필자 가운데는 뜻밖의 인물도 있다. 양인자 선생이다.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 작사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소설가로 글쓰기를 시작하여 다수의 드라마를 쓴 작가다. 불교적 사유가 짙은 노래 ‘타타타’도 양인자 선생이 가사를 썼다. 원로 미술사학자 윤열수 선생도 당시 40대 초반일 때 필진으로 참여하여 우리 기층문화와 불교문화의 친연성을 알렸다. 돈연 스님은 불교의 생활화를 설파했고, 이상범 시인이나 황충상 소설가는 문학으로 불교를 전하는 역할을 맡았다. 『현대불교』 창간호 표지화는 석정 스님의 채색 연꽃 그림이었다. 성우 스님과 석정 스님의 깊고 오랜 인연으로 볼 때 그 선택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후 표지화의 변화는 『현대불교』가 지향한 바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1년 정도 표지화의 작가는 산정(山丁) 서세옥(1929~2020) 화백이었다. 수묵 추상의 선구자였던 서세옥 화백은 거장의 위치에서도 끝없이 변혁을 추구했다. 성우 스님은 서세옥 화백을 무척 좋아했는데, 자기를 뛰어넘는 정신과 간결한 화풍에 매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는 어느 시대든 ‘현대’불교여야 한다는 『현대불교』의 지향과 일치하는 점이라 하겠다. 일랑(一浪) 이종상 화백의 그림도 몇 번 표지화로 나갔다. 1938년에 출생하여 한국화의 자생미학을 추구했던 이종상 화백은 최초로 독도 진경을 그린 화가다. 현재 유통되는 5,000원권, 50,000원권 화폐의 율곡과 신사임당 그림을 그린 화가이기도 하다. 『현대불교』 창간호에는 특별기고문이 실렸다.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에 할 말 있다’는 제목으로 현기 스님이 쓴 글이었다. 창간호를 위해 준비된 글은 아니었다. 마침 1989년 5월에 출간된 도올 김용옥의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는 책이 화제가 되었는데 도올의 언사는 매우 거칠고 편협했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이 분쟁으로 난맥상을 보였던 터라 도올의 비판에 박수를 보내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었다. 당연히 감수해야 할 비판이었다. 그렇지만 현상적 왜곡상과 부분적 문제를 일반화시키고 불교 자체를 낮잡아 보고 조롱하는 태도는 다른 문제다. 『현대불교』는 특별기고 형식으로 이 문제를 지적했다. 『현대불교』가 세상에 하고 싶은 얘기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불교』는 신행과 교양 중심의 불교 월간지나, 신문 매체가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는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자 한 야심 찬 기획이었다. 필진의 면면으로도 알 수 있듯이 성우 스님의 다양한 인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역시 문제는 재정난이었다. 애당초 돈을 벌려는 목적이 아니었지만 판매 수익으로는 현상 유지도 어려웠다. 한국 출판·잡지 시장의 오래된 문제를 극복하기에는 스님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고 폐간을 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1년 반 정도 지나서 고심 끝에 ‘봉은사’가 발행 주체가 되는 것으로 정리됐다. 『현대불교』는 그렇게 봉은사에서 발행되다가 사보(寺報) 『봉은』과 통합되었다.
현대불교
· 집필자 : 윤제학

관련자료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