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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門答(선문답)』을 통해 본 성우 스님의 포교와 ‘글쓰기’

성우 스님에게 포교는 상당 부분 ‘글’이라는 ‘뗏목’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문서 포교다. 사실 그것도 포교를 작심하고 한 것이라기보다는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레 행해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성우 스님은 수행과 포교를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는다. “수행자라고 하면 한쪽으로는 수행하고 한쪽으로는 포교하는 것이 정답이에요. 그런데 많이들 오해하지요. 상구보리해야 하화중생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행 그 자체가 포교이고, 포교 자체가 수행입니다.” 수행이 곧 포교라는 관점은 원론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상구보리 없이는 하화중생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원론적이고, 수행이든 포교든 수행자가 저마다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현실적이다. 세간에서든 출세간에서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본분사를,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의 결합을 통해 추구하게 마련이다. 이것이 조화로울 때 강력한 힘이 발휘된다. 성우 스님이 편저한 책 『반야사상』과 『열반사상』이 좋은 예다. 깨달음의 결정체 즉 ‘오도송’을 『반야사상』으로, 무여열반(無餘涅槃)의 경계인 ‘열반송’을 『열반사상』이란 책으로 언어화했다. 역대 제불·조사와 선지식이 보인 궁극처를 한국불교 수행자의 관점에서 정리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 깊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출판을 포교라고 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주 독자층을 출가 수행자로 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포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성우 스님은 『반야사상』과 『열반사상』을 편저하는 과정에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을 샅샅이 살폈다. 그 과정에서 딱히 의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책이 탄생할 씨앗이 여물고 있었다. 그 씨앗에서 피어난 책이 『禪問答(선문답)』이다. 이 책은 『반야사상』과 『열반사상』의 대중 버전이라 할 수 있겠는데, 책을 내게 된 계기는 불교계 밖에서 왔다. “시인 조지훈 선생의 얘기를 간접적으로 듣게 되었어요. 무슨 얘기였는가 하면, 한국 문학이 정말 한국 문학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서구에서 들어온 사조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탈피하는 방향을 선(禪)에서 찾으면 좋을 것이다, 이런 말이었어요. 그 말이 깊이 와 닿았어요. 그걸 하기 위해서는 선문답(禪問答)이 참 좋은 도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그래서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禪問答』은 1979년에 초판이 나왔다. 선(禪)을 주제로 한 대중서 가운데 최초의 국내 저술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표지에는 석성우 ‘편저’라고 적혀 있다. 편저라고 해서 쉽게 만들어졌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해다. 이 책의 저본은 『경덕전등록』인데 ‘선’에 대한 안목이 없으면 읽기도 힘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읽기 쉽도록 편저하는 일도 쉽지 않다. 『경덕전등록』은 중국 송나라의 도원(道源) 스님이 역대 부처님과 조사들의 행장과 어록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이전의 고승전이 고승의 행적을 중심으로 서술된 것과 달리, 역대 조사의 오도 기연을 담은 선문답이 중심이다. 흔히 말하는 1,700공안의 연원이 이 책이다. ‘종문(宗門) 제일의 서’라고 불린 『벽암록』도 이 책을 저본으로 했고, 고려 중기에 혜심 스님이 찬술한 『선문염송』도 마찬가지다. 『경덕전등록』은 선종 수행 지침서로서 공안선(公案禪) 시대를 열었다. 성우 스님의 『禪問答』이 포교 매체로서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는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식층에 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선에 대한 그들의 지적 욕구에 응답하는 데는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는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에 의해 선이 서구에 알려져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때였다. 현재의 관점에 따르면 서구에 알려진 선이 지적 호기심의 충족 혹은 동양에 대한 신비주의적 경도로 판단할 대목이 있지만 당시로서는 한국의 지식층도 상당한 자극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은 『禪問答』의 맨 뒤에 실린 성우 스님의 ‘해설’에서도 읽을 수 있다. 요즘 동양에서는 물론이려니와 서양에서까지 선(禪)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럼 선사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기에 오늘날 같은 세상에 서양인들까지 이 사상을 도입, 연구하고 있는 것일까? (…) 필자가 범어사에 있을 때 프랑스 국적을 가진 수녀가 찾아왔었다. 그녀는 한국에 오기 전 일본에서 이 년 동안 머물며 선을 공부하였다고 했고 함께 탁마하기를 간청하였다. 그러니까 천주교 쪽에서는 이미 선에 관한 책이 몇 권 있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 선을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은 이를 선지식이라 한다. 선지식이 참선을 수행하여 마음의 문을 활짝 연 사람과 나눈 대화를 선문답이라 한다. 평범한 사람의 식견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 아무튼 이 책에서 의도하는 것은 밤하늘의 찬란한 별들처럼, 이 역사 위에 슬기로웠던 선지식들의 지혜의 편린이나마 다시 오늘날 재현하여 우리들의 가슴에 밝게 비쳐 보고자 하는 데 근본 의도를 두었다. —『禪問答』(한겨레출판사, 1979), 231~240쪽 어떤 형태로든 포교는 일정 부분 시대의 요청에 대한 응답이다. 또 일정 부분은 시대적 과제의 해결이다. 성우 스님은 『禪問答』이라는 책을 통하여 선에 대한 일반의 관심에 부응하는 한편, 지식인층을 불교의 품으로 이끌려 했다. 『禪問答』이라는 책을 주목하는 이유다. 이 책은 성우 스님이 대중을 대상으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이유의 준거로 볼 수 있다. 한때 한국불교는 기복 불교와 등치되었고 ‘치마 불교’라는 조롱도 받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나 논박은 이 글의 의도 밖이므로 논외로 하고) 일정 부분 불교계가 자초한 면도 있다. 남성 불자들의 과소, 사회 문제에 대한 무관심 등이 주된 이유일 텐데 1980년대까지도 이의 극복이 한국 불교계의 다급한 과제 중 하나였다. 이런 흐름 속에서 성우 스님은 지적, 철학적 열망으로 불교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禪問答』이라는 책을 내밀었다. 성우 스님은 단행본으로 60여 권의 저술을 남겼다. 이 가운데 시집이 가장 많고 수행자로서 생활 가운데 단상을 담은 산문집, 다도 관련 이론서와 다시집, 태교 시집과 태교 에세이, 영가천혼법어 등이 있는데 이를 포교 방편으로 범주화하여 보자면 문학적·문화적 접근이라 하겠다. 이에 비해 『禪問答』은 선을 중심으로 ‘수행’의 관점에서 포교 방편을 펼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1996년에 『상당법어1』, 『상당법어2』를 펴냈다. 이 책은 역대 조사들의 선지를 맛볼 수 있는 법어집이다. 승조, 혜능, 마조 스님을 비롯한 중국 선문의 조사는 물론 나옹, 휴정, 만공, 한암, 경봉, 성철 스님 등 한국의 역대 선사들과 당시 생존 중이던 서옹, 월하, 월산, 서암 스님 등 247명 선사의 법어를 수록했다. 성우 스님은 많은 책을 저술했지만 『범망경 보살심지계품 강의 초안』을 제외하고는 경전 강의나 교리 강설을 내용으로 한 책을 낸 적이 없다. 성우 스님의 저술을 종합하여 보면 하나의 맥이 관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 수행을 중심에 두고 시대의 요구에 응하여 혹은 시대정신으로서 불교의 가르침을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전했다는 것이다. 부언하자면 선어록 같은 고담을 선호하면서도 그것을 당대의 문맥 속에 풀어내는 사회적 감수성으로 세상에 다가갔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대중 추수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다. 대중으로 다가가되 마냥 대중의 기호나 눈높이에 맞춘 것이 아니라 대중의 눈높이를 불교의 높이에 맞추려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완고한 현실주의자’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포교 방편으로서 성우 스님의 저술 행위는 세상의 요구에 응하여 현실의 어떤 한 부분이라도 불법의 차원으로 고양시키는 일이었다.
선문답
· 집필자 : 윤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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