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 스님은 1979년 ‘중앙불교승가학원(현 중앙승가대학교)’을 설립, 초대 원장을 역임했다. 한국 현대불교의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의아해 할 만한 이력이다. 스님은 왜, 얼핏 생각해도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했을까?
시인의 상상력은 언어를 조탁하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사물의 뒤편을 감각하는 능력이야말로 시인의 특기다. 시인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다. 시대가 감기에 걸릴라치면 먼저 몸살을 앓는 사람들이다. 시대의 공기를 누구보다 민감하게 호흡한다. 당시 불교계의 시대적 화두 가운데 하나가 ‘승려 자질’ 문제였다. 스님은 개탄보다는 개선, 비판보다는 실천을 선택했다. 중앙불교승가학원은 그렇게 탄생됐다.
중앙승가대학교
성우 스님은 평생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다. 중앙불교승가학원도 뜻 맞는 스님들과 공부하는 것이 계기가 되었다. “성문 스님을 비롯하며 정말 가슴 뜨거운 사람들이 모여서 공부를 했어요. 한 번은 조종현 스님을 모시고 공부를 했어요. 이분도 시조시인이었어요.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우리가 교육기관을 만들자 하고 뜻을 모았어요.” 배우는 입장에 서자 교육기관의 필요성이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때만 하더라도 스님들이 강원을 나오면 더 공부할 방법이 없었어요. 그리고 변하는 시대상에 맞춰 현대적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도 이유였고요. 물론 동국대학교가 있었지만 돈 없는 스님이나 학력이 안 되는 스님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었죠. 그래서 만든 거예요. 장소를 내주는 절이 없어 헐리기 직전의 비구니 사찰을 떼쓰듯이 빌려서 시작했지요.” 스님은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 배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가로막는 문턱을 낮추고 싶었다.
공부 모임에 모신 조종현 스님은 소설가 조정래 씨의 부친이기도 하다. 한용운 스님의 영향을 받아 만당(卍黨), 조선불교청년동맹 활동을 했고 고등학교 교장, 불입종 교정원장(敎政院長)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성우 스님을 비롯한 공부 모임 구성원의 성향은 상당히 개방적이고 개혁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발기인 중 한 명이었던 성문 스님은 1기 졸업생으로 제7대 중앙승가대 총장을 지냈다.
1979년 2월 4일 의정부 쌍용사에서 발기 모임을 갖고 같은 해 3월 18일 돈암동 보현사를 학사로 문을 연 중앙불교승가학원은 첫 입학생으로 연수부 30명, 교양부 30명을 모집했다.(중앙승가대 홈페이지) 초대 원장은 성우 스님이었다. 강사진으로는 관응·서경보·월운·무진장 스님 등이 참여했고, 홍정식·이종익·원의범 등 동국대 교수, 조종현·황영진 등 환속한 불교인들도 이름을 올렸다. 이들 면면을 보면 당시 중앙불교승가학원이 지난한 과정이긴 했지만 불교계의 지지와 호응 속에 출범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비록 학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영리 추구가 목적이 아닌 교육기관을 젊은 스님들 몇몇이 꾸려가기에는 벅찼다. 예상한 바였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문을 닫을 수는 없었다. “다행하게도 성수 스님이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계셨어요. 범어사에 살 때 제가 아주 좋아하고 존경했던 스님이었죠. 그래서 성수 스님을 찾아갔어요. 성수 스님이 계시는 세곡동 절(법수선원)로 가니까 아침 공양 중이시더라고요. 같이 공양을 하자고 해요. 그래서 ‘스님, 제 이야기 들어 주시면 공양할 거고, 아니면 그냥 갈 겁니다’ 하고 처음부터 억지를 부렸죠. 그러자 스님께서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하셔서, 공양을 마친 다음 말씀드렸어요. ‘스님, 저희들이 하고 있는 승가 학원은 종단에서 해야 할 일이지 개인적으로 할 일이 아닙니다. 스님께서 총무원장으로 계실 때 좀 받아 주십시오.’ 하고 간청했어요. 그러니까 스님께서 받아 주겠대요. 성수 스님이 참 순수한 분이에요. 세상 물정을 몰라서 받아 준 거예요.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고 경비도 상당히 들어가는 일이거든요. 어쨌든 그렇게 해서 중앙불교승가학원은 조계종단으로 운영 주체가 바뀌었어요.”
중앙불교승가학원은 조계종단으로 운영 주체가 바뀌면서 1980년 ‘중앙승가대학’으로 개칭하고, 석주 스님을 초대 학장으로 모셨다. 석주 스님은 성우 스님의 은사 스님과 도반이다. 현 BTN 사옥 1층의 ‘무상사’ 법당의 한글 현판 글씨를 석주 스님이 썼다. 석주 스님의 소박하고 인자한 성품이 그대로 보이는 글씨체다. 불법 문중의 소중한 인연은 이렇듯 아름답게 이어진다.
중앙승가대학은 2023년 2월 24일 제4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1996년 정규대학으로 인가를 받았다. 승려전문교육기관이라는 특수성을 유지하면서도 대학으로서의 보편성을 갖춘 것이다. 2002년부터는 대학원을 설립, 석·박사 학위자를 배출했다. 현재 중앙승가대학교가 배출한 스님은 3천여 명에 이른다. 조계종 승려교육기관으로서 탄탄한 기반과 위상을 갖추게 된 것이다.
중앙불교승가학원은 몇몇 젊은 스님들에 의해 평지돌출격으로 설립된 것 같은 모양새를 띠지만 사실은 조계종단에서도 20년 가까이 논의하고 궁리해 오던 일이었다. 불교정화운동 후 조계종이 출범하면서 천명한 3대 사업 즉 ‘역경·포교·도제양성’ 중 도제 양성의 과제로 승려 전문 교육기관 설립을 논의해 왔다. 하지만 논의만 무성했을 뿐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그런데 젊은 스님들이 어떻게든 하고 보자는 결기로 판을 깔았다.
시인은 태생적으로 혁명가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다.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이 우주라고 믿는 사람이다. ‘한 티끌에서 우주를 보는(一微塵中含十方)’ ‘화엄’의 세계관은 또 얼마나 혁명적인가.
중앙불교승가학원 개원법회에서 법어를 하는 석주 스님
· 집필자 : 윤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