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납자(雲水衲子). 스님을 일컫는 말 가운데 하나다. 도를 구하여 행각하는 모습을 ‘행운유수(行雲流水)’에 빗댄 것이다. 하지만 도는 산수 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우 스님에게는 시(詩) 또한 행각처였다.
‘맘껏 문학 공부하는 것’은 스님의 출가 동기 중 하나였다. 행자 시절에 그 꿈은 멀어진 듯했지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다. 본시 쉽게 사라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시마(詩魔)라는 말이 생겼을까. 그것에 ‘들리기’가 어렵지, 들렸다 하면 쉬 떨칠 수 없다.
성우 스님에게 다시 시가 찾아들었다. 강원, 율원에서 공부한다고 해서 경전만 보는 것은 아니다. 쉬어 가기도 한다. 그때 흘러나온 생각이 ‘시’의 형태를 갖추기도 했다. 스님은 그것을 세상에 흘려보냈다. 1970년 『월간문학』 신인상, 『시조문학』 추천 완료로 등단했다. 절집 말로 하자면 문학 세계에 ‘방부’를 들인 것이다.
스님은 등단을 위해 본격적인 문학 공부를 한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수련과 점검은 받았다. 정운 이영도(1916-1976) 시인과는 서신으로 문학적 조언을 구했다. (현대시조에 국한하여 말하자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시조시인이 이영도였다고 할 수 있다. 이영도 시인은, 시조문학의 거두 이호우(1912-1970) 시인의 누이동생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 시조문학의 대가 백수 정완영(1919-2016) 시인과도 깊이 교감했다. 정완영 시인의 시 세계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뿌리를 두고 있다. 탐진치 삼독의 제거를 시적 함축의 방법론과 연결 지을 정도로 불교적 색채가 강한 시인이었다. 스님은 두 시인과는 작고할 때까지 교분을 이어갔다.
스님은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문학을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신춘문예는, ‘신춘’이라는 말의 어감만큼이나 매혹적이다. 하지만 스님은, ‘어디 한번 보내나 볼까’ 하는 심사로 투고했다. 마침 ‘산란(山蘭)’이라는 작품을 써 둔 것도 있었다. 실제로 그 무렵에 산란을 많이 키우기도 했다.
어느 날 어느 별에 가누어 온 목숨이냐
실바람 기척에도 굽이치는 마음 있어
네 향기 그 아니더면 산도 어이 깊으리.
산기슭 무거움에 실뿌리를 내리고서
생각은 골 깊어도 펼쳐 든 하늘 자락
검보다 푸른 줄기로 날빛 비켜 서거라.
정토 저 아픔이 얼마만큼 멀다 하랴
산창에 빛을 모아 고쳐 앉은 얼음 속을
장삼도 먹물에 스며 남은 날이 춥고나.
―「산란(山蘭)」 전문,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어쭙잖지만 ‘오독의 자유와 권리’를 행사하여 해석해 보자면) 1연에서 시인은, 생명의 실상을 본다. 그것은 무시무종한 시간, 광대무변한 공간의 아득한 저편에서부터 ‘가누어’온 ‘목숨’이다. 그 목숨은 추상적이지 않다. 밭 매는 엄마 혹은 시장에 좌판을 깔고 장사하는 엄마의 등에 업혀, 목이 끊어질 듯 구부러진 채 잠든 아기처럼 ‘가누어’ 온 목숨이다. 산은, 그 목숨에 깃든, ‘실바람 기척에도 구비치는’ 마음의 향기로 하여 ‘깊어’진다. 그 세계는 ‘산은 산(山是山), 물은 물(水是水)’인 세계다.
2연에서는 1연의 세계가 전복된다. 따라서 2연을 (산란이) 산기슭 골짜기에 하늘로 줄기를 뻗고 있는 즉물적 풍경으로 읽으면 안 된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산기슭에 산란이 꽃핀 ‘실경(實景)’이 아니라 ‘산란이 실뿌리로 산을 붙들고 있는’ ‘진경(眞景)’이어야 한다. 이 ‘경(景)’은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세계의 경이다. 산란의 실뿌리에 들어 올려진 산은 주름이 깊다. 시인은 그 주름, 골 깊은 생각 위로 ‘하늘 자락’을 펼친다. 이제 산란은 곧 시인 자신이다.
시인은 말한다. ‘검보다 푸른 줄기로 날빛 비켜 서거라.’ 이 검(劍)은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칼이 아니라 ‘심검(心劍)’이다. 시인은 이 검으로 ‘날빛’을 비켜 세우고자 한다. 날빛이란,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인데, 어쩌자고 시인은 그 빛을 비켜 세우려 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시인이 누구인지를 새삼 확인해야 한다. 시인은 ‘입도인(入道人)’이다. 시인은 ‘현상계의 빛’, ‘색신의 빛’을 비켜 세우고자 한다. 이로써 도를 구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는 선명해진다.
3연에서 시인은 ‘정토’를 내세운다. 독자인 우리는 주춤거리며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우리는 ‘정토’가 놓인 자리에 ‘깨달음, 성불, 적멸, 열반’ 같은 말을 바꾸어 넣고 쉽게 갈 수도 있다. 2연에서 본 시인의 의지를 이어 읽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시인은 섣불리 ‘궁극처’를 말하지 않는다.
1연과 2연의 독법을 견지하면 3연은 다시 ‘산은 산, 물은 물’의 세계다. 그런데 시인은 정토를 말한다. 시인은 그 정토의 세계를 서쪽 저 멀리 10만억 불토(佛土)를 지난 곳에 존재하는 세계로 상정하지 않는다. 시인에게 정토의 길은 10만억으로 운위되는 ‘거리’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아픔’에 있다. 그 아픔의 무게와 부피는 10만억 거리 만큼이다. 그것은 입도인으로서 시인이 감당해야 할 ‘인욕(忍辱)’의 무게와 부피다. 도(道)에 드는 길은 ‘인욕’에 있다고 보는 시인의 인식은, 이어지는 시행 “산창에 빛을 모아 고쳐 않은 얼음 속을/ 장삼도 먹물에 스며 남은 날이 춥고나”에서 더 분명해진다.
스님들이 입는 옷의 색깔은 회색이다. 그 색은 괴색 즉 색이 무너진 색이다. 먹물을 들여 그 색을 만든다. 그런데 시인은 먹물이 장삼에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장삼도 먹물에 스며 남은 날이 춥고나.’ 하고 말한다. 이 마지막 시행은 시 전체를 떠받침과 동시에 수행자로서 입도의 길은 색신의 ‘날빛’을 비켜 세우는 ‘인욕’에 있음을 명토 박는다. 그 태도는 냉철하고 담박하다. 섣불리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를 말하지 않고, ‘할’과 ‘방’의 어투로 선(禪)의 기개와 호방을 뽐내지 않는다. 그것이 이 시의 미덕이고, ‘장삼도 먹물에 스며 남은 날이 춥고나.’ 하는 가절을 낳게 했다.
‘산란(山蘭)’은 50여 년 전에 쓴 시다. 이 시 한편으로 스님의 시 세계를 다 알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많은 시집을 냈다. 그것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란’이라는 시는 매우 시사적이다. 스님의 평생 삶과 수행 그리고 시작(詩作)의 지향을 드러냈고, 큰 틀에서 보자면 이후로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성우 스님의 시 전집
· 집필자 : 윤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