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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불교가 수승한 이유

대원 스님은 남방불교와 북방불교의 교류가 활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남방이 초기 불교의 전통을 잘 살린 것에 비해 북방은 그런 불교 이론을 대승적으로 발전시켰기에 북방불교가 상대적으로 우월하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대학원을 마친 사람이 다시 대학에 입학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대승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한 사람은 굳이 남방불교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남방불교와 북방불교의 교류 자체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스님의 결론이다. “사람들의 근기가 깊거나 얕음에 따라 그 처방하는 방편도 다릅니다. 어떤 의사에게 갖가지 증세를 가진 환자들이 찾아오는데 각각의 환자들마다 다른 약을 처방하듯이, 인간의 근기에도 깊고 얕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참선을 하는 것도 근기에 따라 다릅니다. 앉기만 하면 상기병(上氣病)이 일어나 금세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고, 생각이 너무 복잡하고 망상이 일어나 도대체 화두를 들 수 없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근기인 사람에게는 마음의 번뇌, 망상을 잠식시키고 조용히 가라앉혀 제2의 선을 할 수 있는 차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수행법이 남방불교의 관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기초입니다. 하지만 그건 깨달음이 아니고 단순히 심신을 안정시키는 수준이지요. 또 어떤 사람이 색을 좋아하며 여자 생각 때문에 수행을 못 한다, 욕심과 탐심, 진심(嗔心)이 많아 수행을 못 한다면 수식관(數息觀)으로 번뇌 망상을 제거하고 안정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관법이나 수식관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기에 그런 사람이 한 걸음 더 나아가 깨달음을 얻으려면 우리나라로 와서 참선 수행을 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남방에서 관법 수행으로 기초를 다진 사람들이 ‘이뭣고’ 화두를 들면 잘된다고 합니다. 옛날엔 안 됐는데 지금은 ‘이뭣고’를 하니까 일사천리로 잘된다는 겁니다. 관법으로 기초를 익혔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서로 교류하는 것은 나쁠 게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방불교 국가의 스님들이나 남방에서 관법을 배워 기초를 다진 수행자들이 간화선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그토록 그 기초 관법을 무시해 버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바로 선으로 들어가게끔 가르친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렇게 운을 뗀 스님은 대체로 우리 중생들은 무엇을 한 가지 익히고 나면 그 자체가 습성이 된다고 했다. 그 습성에 국집한 나머지 다른 것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관법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편안해지면 그걸로 다 된 것으로 여겨 거기에 집착해 다른 것을 하지 않으려는 병통이 생깁니다.” 그렇기에 관법으로 마음을 안정시킨 게 다인 줄 알고 집착해 물러앉아 있으니까 오히려 그것도 병통이 돼서 다시 선으로 끌어올리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방불교에서는 그런 국집에 머물지 않고 처음에 힘들더라도 단도직입적으로 바로 간화선 수행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바로 들어가도록 애쓰면 오히려 남방불교를 거치는 것보다 더 빠릅니다. 그래서 관법을 무시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참선하라고 말하는 겁니다. 고려 때의 보조국사나 조선의 서산 대사, 사명 대사가 모두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스님의 이와 같은 설명에도 의문은 계속 이어졌다. 수행과 마찬가지로 경전 또한 초기의 원시 경전과 대승 경전의 성립 시기가 다르고 그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직후 수행이 뛰어난 제자들 500명이 모여 제1차 경전 결집을 한 뒤 약 100년 주기로 네 차례의 결집이 더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일부 문구나 내용에 대해선 제자들의 성향에 따라 조금씩 변형되었고 그러다 보니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으며 그 결과 수십 개의 계파로 분열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까닭에 불교 이론이 갈수록 난해하고 복잡해져서 대중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하자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보다 많은 대중이 부처님 가르침을 받고 그 정신을 실천하게 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른바 대승불교 운동이 이렇게 태동한 것이다. 이 대승불교 운동에 따라 용수, 세친 등이 반야부 경전을 비롯한 대승경전을 편찬하여 중국 등 북방으로 전했다. 그렇다면 초기 경전과 대승 경전은 그 내용에도 차이가 있을 것인데 그것이 부처님 재세 시의 설법과 근본적으로 계합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문에 대해 대원 스님은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대학에서도 똑같은 교수가 가르치더라도 특별히 뛰어난 학생들은 스승과 같은 수준에 올라가는 반면, 교수보다 못한 학생들도 많은 것과 같아요. 부처님 제자들도 모두 완벽한 게 아니고 부처님 말씀을 제대로, 완벽하게 이해한 사람도 있고 부처님과 수준이 다른 제자들도 있을 게 아닙니까? 내가 볼 땐 달마 대사와 같은 분은 부처님의 큰 의지를 완벽하게 깨달았는데 그런 분들이 중국으로 건너오셔서 북방불교와 남방불교에 차등이 생긴 게 아닐까 합니다.”
상원사 청량선원 동안거 기념
· 집필자 :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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