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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등선원에 담긴 사상

학림사는 상선원(上禪院)인 오등선원(五燈禪院)과 하선원인 오등시민선원을 갖추고 있는 간화선 수행 사찰로 특성화되었다. 학림사 조실 대원 스님이 이 선원의 이름을 ‘오등’이라 명명한 배경은 무엇일까? 스님은 출가하여 경전을 익히고 난 뒤 오직 부처님 진리의 말씀, 조사 스님들의 공안에 대한 것을 확실히 증득할 필요를 느꼈다. 하지만 그게 교학을 익힌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알았기에 철저한 수행을 통해 부처님 진리에 부합할 수 있는 마음의 안목을 열었다. 그와 함께 조사 스님들의 간화선에 대한 것을 분명히 섭렵하게 되었다. 선종에서는 인도의 가섭(迦葉)을 비롯한 27조사와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로부터 6조 혜능(慧能)에 이르기까지 6조사를 더 해 33조사를 근본으로 삼고 있다. 이 33조사에 이어 깨달음을 얻은 조사들의 법어와 그 역사는 오늘날 한국의 선불교에까지 맥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진리의 등불이 이어지는 근거는 『오등회원(五燈會元)』이란 불서에서 찾을 수 있다. 『오등회원』은 『전등록(傳燈錄)』, 『광등록(廣燈錄)』, 『속등록(續燈錄)』, 『연등회요(聯燈會要)』, 『보등록(普燈錄)』의 다섯 개 등사(燈史)를 하나로 압축해 엮은 책이다. ‘오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먼저 『전등록』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을 줄인 말로 소주(蘇州) 승천사(承天寺)의 도원(道原)이 1004년에 엮은 책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래 역대 조사들의 법맥과 법어를 수록하고 있어 선종에서 중요한 저술로 손꼽히고 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에서는 승과 시험을 치를 때 『선문염송(禪門拈頌)』과 함께 『전등록』이 필수과목으로 손꼽혔다. 『광등록』은 1036년에 이준욱(李遵勖)이 지은 『천성광등록(天聖廣燈錄)』을, 『속등록』은 1101년에 불국유백(佛國惟白)이 지은 『건중정국속등록(建重靖國續燈錄)』을 각각 줄여 부르는 책 이름이다. 『연등회요』는 1183년에 오명(悟明)이 지었으며, 『보등록』은 1202년에 정수(正受)가 지은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을 일컫는다. 이 다섯 종의 책은 모두 합쳐 150권이나 되는데 이것을 항주 영은사의 대천보제(大川普濟, 1179-1253) 선사가 혜명 등 여러 제자에게 명하여 20권으로 축약해 만든 책이 바로 『오등회원』이다. 한마디로 『오등회원』은 선의 대의를 밝힌 입문서이며 선종의 역사를 기록한 통사로서 유명하다. “역대로 전해 내려오는 진리의 등불을 쭉 이어 나오는 것이 오등(五燈)입니다.” 대원 스님은 이 『오등회원』처럼 학림사 수행자들이 역대 선사들의 법맥과 법어, 깨달음을 계속 이어 나가자는 취지에서 선원 이름을 ‘오등선원’이라 명명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역대 조사 스님들의 어록을 기록한 『전등록』 등 다섯 가지 어록을 하나로 묶은 책이 『오등회원』인데 이러한 전등의 등불을 우리가 지금 잇고 있다는 뜻에서 학림사 선원의 이름을 ‘오등선원’과 ‘오등시민선원’으로 짓게 된 것입니다.” 학림사 선원을 ‘오등선원’이라고 명명한 데서 대원 선사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오등선원
한편 스님은 법문할 때 『금강경』이나 『반야심경』 등 반야부 경전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경전은 대승불교 사상을 핵심적으로 요약하고 있는데 이런 반야부 경전의 사상적인 특징에 대해 스님은 “공(空)과 혜(慧)를 두드러지게 드러내서 말씀하신 것으로 우리 중생이 실천에 옮겨 세상을 살아가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정의한다. 반야부 경전에서 가장 강조되는 사상은 ‘공사상’이다. 그러나 일반 불자들 입장에서는 공이라는 게 쉬운 듯하면서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이기도 하다. 그런 뜻에서 스님께 평소 법문할 때 공사상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지 그 실제적인 사례를 들어달라고 청했다. 이때 스님이 반문했다. “축구할 때 공을 묻는 겁니까?” 과연 선사다운 질문이었다. 처음엔 공(空)에 대해 여쭸는데 축구공을 말씀하시다니 잘못 알아들으신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다가 곧바로 축구공이야말로 공을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사물이라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평소 축구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걸 공한 것이라고 봅니까, 아니면 공하지 않은 색이라고 봅니까?” 이런 선사의 질문은 평소에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영역이었다. 축구공 자체는 색(色)이면서 그 안을 채우는 건 공(空)이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란 정의에 대한 가장 적절한 비유가 축구공이나 농구공인 셈이다. “공이라는 것은 세상 만물에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축구공은 그 안이 비어 있는 까닭에, 텅 빈 까닭에 차면 휙휙 날아갑니다. 그러니까 축구공은 색이면서 그 안은 공한 것이니 공이 되고 공이면서도 색이 됩니다. 그러나 그 두 가지는 실체가 고정되어 있는 것은 없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설명한 뒤 공 사상을 본격적으로 설명했다. “공 사상이라는 것은 현실 세상에 드러나 있는 모든 모양, 목전(目前)의 모든 만상이 다 드러나 있지만 그 드러나 있는 모양 자체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걸 말합니다. 딱히 고정된 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라는 게 있다면 마음의 실체도, 고정된 어떤 실체의 모양도 없습니다. 밖으로 드러난 모든 만상의 모양도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고 또 마음의 세계가 있다 해도 그 마음 자체도 실체가 고정되어 있는 게 없습니다. 딱히 고정된 것이 없는 그 실체를 공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공이라고 볼 수 있는 그런 안목을 바로 지혜라고 합니다. 지혜의 눈으로 비추어서 모든 만물을 꿰뚫어 봅니다. 그걸 관조(觀照)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우주 만유의 모든 물건을 뿌리까지 뒤집어서 보는 것을 관조라고 합니다. 그렇게 마음의 실체나 우주 만유에 드러나 있는 모양의 실체나 이런 것을 꿰뚫어 보니 딱히 고정된 실체가 없고 텅 비어 있다고 보는 눈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런 지혜가 바로 공이고 공이면서 각(覺)이라고 합니다.” 대원 선사는 참선 지도와 수행자들에 대한 점검은 물론 대중들에게 대승 경전을 수없이 강의하고 있다. 최근에 출판된 『조주록 강설』도 그런 강의와 법문의 결실이었다. 선사는 이런 불교 고전을 강의하면서 시대에 맞는 언어로 해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스님이 가장 강조하는 핵심은 ‘나는 무엇인가’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 누구인가를 바로 보고 깨닫는 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경전을 강설할 때나 법문할 때 ‘내가 누구인가’를 모르고 살면 우치(愚痴)한 중생으로 남아서 영원한 평안함과 행복도 모르고 인생을 허망하게 사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걸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부처님 말씀과 조사 스님들의 의지에 부합해서 본다면 결국 우리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빨리 돌아보고 깨달아서 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안목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을 늘 강조해 왔습니다.”
조주록 강설
· 집필자 :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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