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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오돈수 논쟁

서기전 544년 무렵, 부처님이 열반하신 직후 제자들은 생전의 부처님이 남긴 법문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결집(結集)했다. 이 제1차 결집 때만 해도 문자가 없었기에 기억력이 매우 뛰어난 아난다가 부처님 법문을 암송하는 식으로 결집을 해나갔다. 당시 제자들의 두뇌에 입력된 부처님 법문은 빠르고도 정확하게 송출되었겠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형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1차 결집 후 100여 년이 지나 이뤄진 제2차 결집 때는 제자들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몇 가지 이론(異論)이 제기되어 논쟁이 치열해졌는데 그게 원인이 되어 상좌부불교와 대중부불교로 종파가 분열되었다. 훗날 이 사건을 두고 ‘근본 분열’이라 부르고 있다. 이후 불교 교단에서는 제4차 결집까지 이뤄냈는데 제4차 결집 때는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대로 돌아가자’며 대승불교가 일어난 시기였다. 대승은 여러 사람이 함께 탄다는 뜻으로, 오늘날엔 흔히 버스나 지하철을 대승에, 오토바이나 자가용 등은 소승에 비유하고는 한다. 대승불교 운동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불교학자들은 경전을 매우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학문에 몰두했다. 결국 경(經)과 율(律)로만 이뤄졌던 초기 경전은 논(論)을 추가하여 경율론 삼장(三藏)이라는 형식을 갖출 수 있었다. 이 논을 산스크리트어로 아비달마(Abhidharma)라 부른다. 하지만 부처님 가르침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세부적인 가지를 치다 보니 일반인들은 불교 교리를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고 차츰 거리를 두게 되었다. 이 때문에 날이 갈수록 불교를 대중화하는 게 어려워짐에 따라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났다는 게 일반적인 학설이다. 대승불교를 주창했던 학자와 스님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본래의 가르침대로 해석하고 실천하며 출가자든 재가자든 다 함께 성불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자신들을 대승(大乘)이라 불렀으며 상대적으로 불교 이론만 연구하던 학자들을 소승(小乘)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후 중국, 한국 등 동북아시아 지역에는 대승불교가 전파된 반면, 소승불교는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전해졌다. 지금은 대승불교나 소승불교라는 말 대신 북방불교, 남방불교라고 용어를 바꿔 부르는 게 대세이다. 아울러 남방불교는 부처님 생존 시의 가르침과 제자들의 수행 전통을 원형대로 계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대승불교는 보살과 중생이 다 함께 성불하는 걸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이는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이 가장 강조했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대승의 가르침과 홍익인간의 개념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많다. 이에 대한 대원 스님의 분석을 들어보았다. “홍익인간 사상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함께 이익을 주고 함께 이익을 공유하는 걸 말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실질적이며 체계적인 이론이 정립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대승의 보살들이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으로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란 말을 씁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화중생이라는 것은 바로 보살의 여섯 가지 수행 덕목인 육바라밀(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바라밀)로 체계를 잘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홍익인간 사상에는 대승의 진리를 깨닫겠다는 상구보리의 개념도 없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은 우리가 깨달음을 얻고 성불하여 널리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뜻이니 홍익인간 사상과는 차이가 아주 크다고 봅니다.” 한편 근대의 한국 선불교는 경허 선사 이후 크게 일어났으며, 깨달음을 얻은 많은 선사들이 등장하면서 불교계는 활기에 넘쳤다. 우리 시대의 선사들 중 불교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이로는 성철(性澈, 1912-1993) 스님을 첫손에 꼽게 된다. 해인사 백련암에 주석하시던 성철 스님이 열반했을 때 온 국민이 ‘이 시대를 대표하던 한국불교의 얼굴’이라거나 ‘불교계 마지막 전설’이라며 추모할 만큼, 참다운 수행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시대의 스승이었다. 그의 가르침은 여러 권의 법어집으로 출판된 바 있고 지금도 많은 불자들이 찾아 읽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그 많은 가르침 중 ‘돈오돈수(頓悟頓修)’는 성철 스님의 사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용어로 손꼽히고 있다. 돈오돈수는 단박에 깨쳐서 단박에 닦는다는 뜻으로 한번 깨닫고 나면 더는 수행할 게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상은 고려 때의 보조국사가 강조했던 ‘돈오점수(頓悟漸修)’와 대척점을 이루며 한때 불교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치열한 논쟁의 주제로 떠올랐다. 그로 인해 선불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높아졌으며 궁극적으로 불교계가 활력을 찾는 데 일조했다. 그렇다면 대각을 이룬 뒤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고 때로는 법거량으로 깨달음을 점검받은 적이 있던 대원 스님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여쭤보았다. “육조 혜능(六祖惠能, 638-713) 선사가 제자 남악 회양(南嶽懷讓, 677-744) 선사에게, 수행을 해서 바로 증득하는 게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남악 스님이 수증즉불무(修證卽不無)이나 오염즉부득(汚染卽不得)이라고 답했습니다. ‘우리가 수행하여 증득하는 게 없지는 않겠지만 이것을 물들일 수는 없습니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의 자성 자리는 허공처럼 비어서 허공에 뭘 칠하면 칠할 수도 없고 걸 수도 없듯이 본 자성의 마음자리는 물을 들이려야 들일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고 나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 말은 육조 스님의 게송인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菩提本無樹], 명경 또한 대(臺)가 아니다[明鏡亦非臺]. 본래 하나의 물건도 없는 것이니[本來無一物], 어디서 티끌이 일어나리오[何處惹塵埃].”라는 의미와 부합합니다. 그게 돈오돈수입니다. 그러나 신수(神秀, ?-706) 대사의 게송인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身是菩提樹], 마음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 같네[心如明鏡臺]. 자주 부지런히 털고 닦아[時時勤拂拭], 먼지가 끼지 않게 해야 하네[勿使惹塵埃].”라고 말하면 돈오점수에 해당합니다. ‘때가 끼지 않게 닦아라’ 하는 것이니 닦음이 들어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남악 스님이 말한 것처럼 “수행하여 증득하는 게 없지는 않겠지만 이것을 물들일 수는 없습니다.”라는 말과 “때가 끼지 않게 닦으라.”는 말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래 부처님이 말씀하신 깨달음의 자리에는 돈오돈수니 돈오점수니 하는 것이 없습니다. 돈오돈수나 돈오점수를 세우는 것은 중생 차원의 근기에 따라서 상상(上上) 근기는 한마디 말끝에 크게 깨닫는, 언하대오(言下大悟)를 이뤄 확실히 깨달아서 더는 닦고 말고 할 것이 없습니다. 이에 비해 하근기(下根機)는 뭘 좀 알긴 안 것 같은데 알았다 하더라도 확실하게 중생의 의식이 아직도 완전히 소각된 게 아니고 아직도 좀 남아 있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거기에서 완전히 소각할 수 있도록 좀 더 수행을 해야 된다는 것이 따르게 됩니다. 이처럼 중생의 근기에 따라서 돈오돈수, 돈오점수가 벌어지는 것이지 우리 부처님이나 조사 스님들의 깨달음의 차원, 진리의 자성 자리에선 그런 것을 따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돈오점수 이론에 따르면 불자들이 수행하는 목적이 깨달음을 얻는 것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깨달음을 얻는 것과 별도로 수행을 계속해야 한다는 이야기인지 혼동을 일으킬 수가 있다. “보편적으로 일반 사회의 가정을 예로 들면 어떤 집 아들이 자꾸 나쁜 짓을 하고 다니다가 훌륭한 스승을 만나 그것이 잘못됐다는 점을 확실하게 깨닫고 나면 그 사람은 다시는 나쁜 짓을 안 하고 바른 인생을 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수행자가 확실하게 깨닫고 나면 깨달은 차원에서 살아가는 것이지 또 무엇을 깨닫기 위해서 수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퇴옹 성철 대종사
· 집필자 :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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