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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와 보조국사의 사상

우리 역사에서는 불교사상을 우뚝 일으켜 세운 여러 고승이 있다. 그중에서도 각 시대를 대표할 스님을 한 분씩만 손꼽는다면 신라 때는 ‘불교의 새벽’을 열었던 원효(元曉) 대사를, 고려 때는 ‘불교의 정오’를 두루 비춘 보조국사(普照國師)를 각각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조선 시대에는 ‘불교의 석양’이라 할 수 있는 서산(西山) 대사를 망설임 없이 손꼽는 게 일반적이다. 공교롭게도 세 고승의 법명이나 법호는 한국불교의 연기(緣起)를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새벽이 지나면 한낮이 오고 한낮이 지나면 저녁이 되며 그것을 인연으로 새벽이 되는 것이니, 서산 대사 이후 지금의 불교계는 다시 새벽이나 오전쯤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불교는 한반도에 전해진 뒤로 1,700여 년 동안 한민족의 사상과 문화, 역사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원효 대사와 보조국사, 서산 대사를 비롯한 고승들은 불교의 근본 가르침을 널리 일깨워 주어 이 땅의 사상계를 넓고 깊게 다졌으며 한편으로는 외침을 당했을 때 부처님 가르침으로 나라를 구하는 일에 앞장서서, 높이 추앙받고 있다. 이런 전통은 한국불교가 이웃 중국이나 일본의 불교와 구별되는 특성을 유지하게 했다. 학림사 대원 스님의 관점으로 볼 때 한국불교가 가진 사상적 특징은 무엇일까? “한국이나 중국, 일본은 대승적인 불교를 지향해 온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 한국불교가 이 땅에 들어와 전래해 내려오면서 일본불교와 가장 다른 점은 선불교를 주창해 왔다는 점입니다. 한국불교는 항상 통불교적인 것을 지향하면서도 그 가운데의 알맹이, 핵심은 선불교에 대한 높은 관심과 수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점이 일본불교와 다른, 한국불교만의 특징이라고 봅니다.” 역시 대원 스님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선사답게 선불교를 우선시해 왔던 한국불교의 전통과 특징을 언급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선불교는 인도 출신의 달마 대사가 중국에 전하여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로 추앙받게 된 이래 6조 혜능(惠能, 638-713) 이후 당나라와 송나라 때 ‘선의 황금시대’를 이루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이러한 선불교는 통일신라 때의 법랑(法朗) 스님이 이 땅에 처음 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법랑 스님은 진덕여왕이 재위하던 647년∼654년 사이에 당나라로 건너간 구법승으로, 중국에 유학하던 중 선종의 제4조인 도신(道信, 580-651) 선사에게 선불교의 교리를 배우고 귀국해 한반도에 선불교를 널리 알렸다. 그 뒤 법랑 스님의 제자 신행(愼行, 704-779) 스님과 9세기 초반에 활약한 도의(道義, ?-825) 선사 등이 일반 민중에게 널리 알리면서 선불교가 대중화되었다. 아울러 현재 선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자리 잡은 간화선은 송나라 때 임제종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가 처음 제창했고 약간 늦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이 『간화결의론』을 통해 이 땅에 처음 소개하면서 전파되었다. 그 뒤 임제종의 전통을 직접 이어받은 태고 보우(太古普愚, 1301-1382) 국사를 통해 오늘날까지 간화선 수행법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법랑 스님보다 먼저 태어나 법을 펼친 신라의 원효(元曉, 617-686) 대사는 선불교보다는 불교의 이론과 사상을 대중에게 널리 전하려고 힘쓴 교학의 대가였다. 일찍이 의상(義湘, 625-702) 대사와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려던 그는 두 번째 유학 시도 중 해골 속의 물을 마시고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걸 깨닫고 유학을 포기했다. 그 뒤 학문과 수행을 통해 신라는 물론 당시 북방불교권의 사상계를 지배할 정도의 고승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원효 대사는 한국의 불교계를 비롯해 고대 사상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천재적인 재능을 선보였으며 일심사상(一心思想)과 화쟁사상(和諍思想)을 주창한 고승이었다. 여기서 일심이란 ‘반야의 지혜를 닦아 도달해야 하는 참된 마음’을 가리키는데 원효 대사는 일심으로 열반에 이르는 것에 삶의 의미를 두었다. 그는 자신의 대표적인 저술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에서 이 일심사상을 체계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한편 화쟁이란 ‘십문화쟁론’이란 말에서 비롯된 용어로 부처님 열반 후 그 가르침이 학자들에 의해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었으며 그로 인해 무수한 불교 종파가 탄생했지만, 부처님 뜻은 ‘자비(慈悲)’로 수렴할 수 있으므로 불교 종파도 통합하는 게 좋다는 의미였다. 이와 같은 일심사상이나 화쟁사상을 통해 원효는 당시 중국과 일본 승려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대원 스님은 원효 대사의 가르침이 신라 이후 한국 불교사상에 끼친 영향에 대해 다음처럼 평가하고 있다. “원효 스님께서는 마음의 세계가 어떤가를 이론적으로 안 것이 아니고 실질적인 체험에서 깨달음을 얻고 부처님의 대승적인 진리를 완전히 드러내신 행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원효 스님의 화쟁사상은 『금강경』에 나오는 무쟁삼매(無諍三昧)라는 개념에서 파생된 의지라고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원효 스님은 신라 때의 모든 중생에게 대승불교의 사상을 완전히 드러내어 널리 전파한 분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려 때의 보조국사 지눌은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추진하면서 당시 타락하고 부패했던 승가를 크게 정화하였고 특히 이 땅에 처음으로 간화선 수행을 소개한 것으로 잘 알려진 고승이다. 그 뒤 보조국사의 제자들이 대를 이어 국사로 추증됨에 따라 오늘날 송광사는 16국사를 배출한 승보종찰로 자리매김했다. 보조국사가 주창하여 실행되었던 정혜결사는 불교 수행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함께 닦는다는 정혜쌍수론을 바탕으로 하는 불교계 정화운동이었다. 지눌은 불교의 교(敎)와 선(禪)을 나누어 보아선 안 되며 부처님 가르침과 역대 조사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와 같은 정혜쌍수와 동시에 계율을 실천하는 일도 중요시했다. 그렇기에 정혜는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내포하는 용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지배적인 해석이다. 보조국사 당시의 승가는 왕권의 비호를 받으며 부처님 정법에서 크게 벗어난 채 타락하고 세속화되었다. 출가한 뒤로 이런 일들을 직접 겪으며 성장한 지눌은 청년기가 된 후 뜻에 맞는 도반들과 더불어 정혜결사를 추진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여건이 충분치 않아 훗날을 기약하게 되었다. 이후 전국 각지를 돌며 여러 사찰에서 치열하게 선정 수행하여 세 차례나 깨달음을 얻은 뒤 순천 송광사를 근본도량으로 삼아 정혜결사를 추진하였다. 맑고 깨끗한 도량에서 승려들이 공동체를 이뤄 참선수행에 전념하여 고려의 승가를 불교 본래 모습대로 회복하자는 게 정혜결사의 정신이었다. 정혜결사에는 당시 대다수 승가가 동참했으며 이 정신에 찬성하는 유학자 등 지식인들까지 순천 송광사로 모여들게 했다. 이 운동은 지눌이 열반하면서 그치게 되었지만, 그 정신은 연면히 이어져 지금과 같은 한국불교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다시 말하면 선과 교를 함께 배우고 수행하며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한국불교만의 특성을 갖춘 것이었다. 대원 스님은 보조국사를 ‘우리 불교가 되살아날 수 있게 한 위대한 스승’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눌 스님 생존 시에는 불교가 교나 선에 대한 것이 완전히 대중화되지 않았습니다. 선종만 해도 완전한 체계가 서 있지 않았는데 그처럼 어려운 시대에 보조국사께서 선에 대한 교리를 완전히 대중화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보조국사는 불교가 어려운 그 시대에 선 수행 체계를 정립해 모든 스님들이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한 분입니다. 덕분에 우리 불교가 더 크게 되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보조 스님은 그 가운데도 특히 선에 대한 수행을 두드러지게 드러내서 체계를 잡아주신 대선지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불교가 이 세상에 우뚝 서게 만드신 스승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대원 스님의 언급처럼 보조국사가 남긴 학문적이며 사상적인 성과는 오늘날 한국불교의 지표가 되고 있다. 보조국사는 당시 학승들에게 유행처럼 자리 잡은 중국 유학을 떠나지 않고도 국내에 전해진 중국의 수많은 불서를 읽으며 사상적인 바탕을 닦아나갔다. 그리하여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계초심학입문(誡初心學入門)』, 『화엄론절요(華嚴論節要)』,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竝入私記)』 등을 저술하며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하였다. 이밖에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과 『수심결(修心訣)』은 그의 대표적인 저술로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고 있으며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진심직설(眞心直說)』, 『계초심학입문(誡初心學入門)』 등 여러 불서를 편찬했다. 이는 보조국사의 지극한 정성과 노력에다 천재성이 덧붙여진 사상적 결실로 볼 수 있다. 보조국사는 이와 같은 저술을 통해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했다. 그와 함께 선과 교를 별도로 구분하지 않는 선교합일(禪敎合一)을 주장하면서 한국불교의 사상적인 전통을 세웠다. 무엇보다 보조국사는 심즉시불(心卽是佛), 즉 ‘마음이 곧 부처’라고 강조하면서 마음을 잘 닦아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에 의지해 꾸준히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돈오점수(頓悟漸修)’ 이론이다. 이 돈오점수 이론은 현대의 고승 성철(性徹, 1912-1993) 선사가 주창한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대립 관계에 놓이게 되어 한때 불교계의 불꽃 튀는 논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돈오점수와 돈오돈수 중 어떤 주장이 옳은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두 선사 모두 생사를 걸다시피 치열한 수행을 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고 그 결과 한국불교의 사상적인 지평을 넓히는 데 이바지했다는 게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계초심학입문
· 집필자 :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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