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 선사의 포교는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2010년에 라스베이거스(Las Vegas) 오등선원 포교당을 개설한 것을 일례로 들 수 있다. 이 포교당을 연 데는 라스베이거스에 거주하는 대덕화 보살의 원력이 컸다.
학림사 오등선원 미주분원
대덕화 보살은 미국에서 선법을 펴고 있던 숭산 스님의 지도를 받으며 참선 수행을 했는데 어느 날 『금강경』을 읽다가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에는 숭산 스님 외에 일본과 티베트 스님 등 세 분의 선지식이 대중들의 추앙을 받고 있었는데 대덕화 보살은 그 세 스님으로부터 자신의 깨달음을 점검받고 인가를 받았다며 들떠 있었다.
그 뒤 공부를 많이 했고 깨달음을 얻었으니 고국에 있는 선지식 스님들을 두루 친견해 보자는 생각으로 한국을 찾아왔다. 귀국한 대덕화 보살은 해인사의 법전 스님과 백양사 서옹 방장 스님, 해운정사의 조실 진제 스님과 인천 용화사의 조실 송담 스님 등 큰스님들을 뵙고 점검을 받았다. 큰스님들은 대덕화 보살과 문답을 나눈 뒤 공부를 잘했다며 칭찬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흡족한 마음으로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 보살의 동생 되는 비구니 스님이 말하길 “그러면 마지막으로 공주 학림사 오등선원의 조실 스님을 한번 뵙고 가세요.”라고 제안했다. 그때 대덕화 보살이 ‘대원 스님’이란 분은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하니까 비구니 스님은 “그 스님이 어떤 분인지는 언니가 직접 친견해 보면 알 테니 꼭 한번 학림사에 들렀다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한국에 온 게 모두 헛일이 됩니다.”라고 권했다.
결국 대덕화 보살은 마지못해 학림사까지 내려와 대원 스님을 뵙게 되었다. 대덕화 보살이 찾아온 연유를 자세히 말씀드리니 스님이 물었다.
“그래, 보살님은 미국에서 뭘 공부해서 어떻게 깨달았길래 선지식들의 칭찬을 받았습니까?”
이에 대덕화 보살이 답했다.
“『금강경』 제1 사구게인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라는 대목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에 스님이 물었다.
“그러면 내가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그 게송은 일체의 모든 중생, 천상 인간이 다 하늘같이 받들어 외우고 공경합니다만 그 게송에도 허물이 있으니 어떤 점이 허물인지 그 허물구에 대해서 한마디 일러보십시오.”
이렇게 묻자, 대덕화 보살은 분명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때 스님이 딱 잘라 말하길 “보살님은 아직 공부가 덜 됐으니 다시 공부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런 다음 스님이 다시 물었다.
“‘이 뭣고’에 대해서 깨달았다고 하니, 그게 무엇입니까?”
그러자 대덕화 보살은 손으로 바닥을 치더니 일어나서 절을 한 뒤 갑자기 ‘악’ 소리를 지르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왔다. 그 행동을 보고 난 스님이 다시 물었다.
“지금은 보살님의 몸이 이렇게 있어서 그와 같이 행동하지만 죽고 난 뒤에 몸을 화장하여 유골을 뿌리면 아무것도 없을 텐데 100년쯤 지난 뒤 누가 ‘그대는 무엇이냐?’고 물으면 뭐라 하겠습니까?”
대덕화 보살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도 했는데, 스님의 지견으로는 그 대답이 맞지 않았다. 말하자면 확실하게 깨달았다고 볼 수가 없는 상태였다.
“보살님은 아직 ‘이 뭣고’를 분명히 깨달은 게 아닙니다.”
이런 대답을 듣고 대덕화 보살은 담백하게 자신의 깨달음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큰스님 가르침 덕택에 제 공부가 덜 이뤄졌으며 확실히 깨닫지 못한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공부를 더 하겠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대덕화 보살이 얼마 후 스님을 초청했다. 그때 비행기표까지 보내주며 미국에서 중요한 법회가 있으니 꼭 오셔야 한다고 거듭 간청했다. 얼마 후 초청 날짜가 되어 대원 선사는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했는데 그곳에는 숭산 스님의 제자가 ‘대명선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스님은 이주천이라는 한의사가 큰 방을 내주어 그의 집에 21일간 머물며 대명선원에서 날마다 법문을 했다. 하루는 500명 가까이 되는 청중들이 각자 공부한 것을 점검받게 되었다.
그때 스님이 “이곳에선 어떤 공부를 합니까?”라고 묻자, 몇몇 청중들이 자신들의 공부법을 소개해 주었는데, 어떤 미국계 유대인이 자신은 30년 동안 묵조선을 했다고 답했다. 그 사람은 매우 점잖고 조용했으며 오랫동안 수행을 한 사람의 풍모를 드러내고 있었다.
스님이 물었다.
“뭘 합니까? 공부합니까?”
유대인이 답했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합니다.”
“아무것도 안 한다면 놀고 있어요?”
“노는 것도 아닙니다.”
이때 스님이 더욱 다그쳤다.
“그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란 말인가요?”
“스님, 제가 공부를 하던 중에 모든 게 다 공(空)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공한 것을 깨달아 알고 보니 그 경지에는 공부를 하니 안 하니, 더러우니 깨끗하니 좋으니 나쁘니 이런 게 일절 없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노느냐, 공부하느냐 그런 걸 왜 묻습니까? 여기는 그런 게 아무 해당도 없고 관계도 없습니다. 그러니 공연히 그런 망상을 묻지 마십시오.”
스님이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어떻게 살긴요? 밥 먹을 때가 되면 밥을 먹을 뿐이요, 일할 때가 되면 일할 뿐이지요. 잠이 오면 잠잘 뿐이니 여기에 다만 뭐가 다른 게 있단 말입니까? 단지 이것뿐이지 뭐가 있습니까?”
그 유대인은 이렇게 큰소리를 쳤다.
스님이 다시 물었다.
“참 좋은 말이지만 내가 한 가지 묻겠소. 당신이 공을 깨달았다고 하니 그 공은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공귀하처(空歸何處), 나는 지금 공이 어디로 돌아가는지 묻고 있소.”
이렇게 묻자 상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때 스님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왜 대답을 못 해? 깨달았으면 한마디 해야지. 말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건 죽은 물건이야. 어서 말해!”
이렇게 소리치자, 유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스님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런 다음에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말했다.
“스님, 이곳에서는 제가 깨달았다고 인정 받았지만 공이 어디로 돌아가느냐고 점검하는 선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늘 스님께서 공이 어디로 돌아갔느냐고 물으시니 참으로 난감합니다. 공이 안 돌아간다고 하면 이게 가만히 돌아가지도 못하는 물건이 말을 할 줄 안다고 때릴 것 같고, 돌아간다고 하면 공이 그러면 어디로 돌아가는 곳이 있냐고 하면서 또 때릴 것 같아 대답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제가 공부가 다 되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유대인 거사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면서 다시 말했다.
“오늘 제가 스님을 뵙지 못했더라면 일생을 헛살 뻔했습니다. 다시 정진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스님에게 수십 번이나 오체투지를 했다.
스님은 이처럼 미국으로 초청받아 그곳에서 참선 수행하는 불자들을 일일이 점검하고 깊은 가르침을 주었다.
· 집필자 : 이정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