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 스님이 미국에 체류할 때에는 애리조나주 세도나(Sedona) 지역에 있는 한국인 비구니 사찰에서도 법문을 요청해 그곳을 방문했다. 그때 교포 불자들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기독교 신자들이 “불교를 믿으면 뭐하냐? 불교가 무슨 종교냐?”고 물으면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깨닫기 위해 절에 다닌다.”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알기론 당신은 절에 몇십 년을 다녀도 깨닫지 못했는데 그렇게 어려운 종교를 왜 믿어?”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그거 다 미신이야. 속지 마.”라고 말한다.
그러면 불자들은 대꾸할 말이 하나도 생각나질 않고 번번이 그들에게 당하고 만다는 이야기였다.
기독교 신자들은 “교회에 오면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 그런 종교를 믿어야지 어렵고 허무맹랑한 걸 믿고 앉아 있느냐? 어서 교회를 다녀라.”라고 회유한다. 이럴 때 신심이 약한 불자들은 어쩔 수 없이 교회로 가버리니 그런 상황이 답답하고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이에 스님이 답했다.
“그건 절에 다니는 불자들이 잘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있는 여러분도 그렇지만 한국에서 절에 다니는 신도나 스님들도 사실은 잘 모릅니다. 지나가던 일반인이 불자들에게 “불교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뭡니까?”라고 물으면 제대로 답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어떤 스님은 ‘연기법’이라 말하고 어떤 스님은 ‘깨달음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라면 한국에 깨달은 사람 몇이나 됩니까?”라고 다시 물으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또 “연기라는 게 뭡니까?”라고 물으면 그걸 설명하느라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지만 아무리 들어봐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교를 바로 인식을 할 수 있도록 한마디로 이야기를 해주는 게 중요한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이 말을 듣고 난 교포 불자들이 스님에게 “그러면 스님께선 뭐라고 대답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이때 스님의 대답은 간단하다.
“불교는 불심을 행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49년 동안 불심을 행하라고 설법하셨으며 “불심을 행하고 살아가라.”는 한마디 속에 부처님 가르침의 진리가 모두 포함되었다는 게 스님의 논리이다. 그렇다면 불심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불심은 대자비요, 대지혜요, 대광명이요, 대행복이요, 대만족입니다.”
스님은 이렇게 정의하며 불심이라는 게 먼 데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바로 불심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불심인 줄을 모르기 때문에 불행하게 사는 겁니다. 자신이 불심인 줄 모르는 사람은 대자비도, 대광명도, 대행복도, 대지혜도, 대만족도 모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모든 사람이 함께 공존하고, 공유하고, 공생하고, 공감하고 이렇게 모든 만물이 나의 몸과 생명이 하나라는 걸 알고 살아가는 차원에서는 서로가 적대시하는 게 없습니다.
서로가 부처님 세계의 대행복을 떨치고 대안정의 편안함을 떨치고 살아가는 그런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바로 불심인데 우리가 그 불심을 돌이켜서 보고 알면 바로 그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되는 것이니 이게 바로 불교입니다.”
아울러 대원 선사는 기독교인들이 ‘교회에 다니면 하나님이 다 해 준다.’고 한다지만 부처님은 다 해줄 뿐만 아니라 한 가지를 더 해준다고 했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 “선남자야, 만일 한없는 중생이 여러 고뇌를 받을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즉시 그 음성을 듣고 그들이 모두 해탈을 얻게 하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들면 그 사람이 혹시 큰 불 속에 들어가더라도 그를 태우지 못할 것이니 이것은 관세음보살의 신통력 때문이니라.”는 대목을 한 예로 들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대목은 여러 불교 경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처님은 우리 중생에게 다 해주실 뿐만 아니라 한 가지 더 좋은 것을 주셨다고 스님은 설법했다.
“부처님은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먹는 것처럼 날마다 부처님께 의지하여 살아가도록 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들도 나(부처님)처럼 대지혜, 대자비, 무한한 행복, 편안함을 다 가지고 있다. 무한한 복과 덕, 지혜도 다 가지고 있다. 그대가 자신에게 있는 그것을 알고 쓰면 영원한 대행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까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기독교에는 그런 가르침이 없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만 전지전능하지 인간은 절대 전지전능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정리하면, 불교는 부처님께서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실 뿐만 아니라 부처님께 의지하지 않고 자신한테 있는 걸 바로 알고 부처님처럼 살아가게 하는 종교입니다.”
스님은 이처럼 불교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기독교인들에게 당하는 교포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그러자 교포들은 “스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걸 미처 몰랐습니다.”라며 밝게 웃었다.
한 교포는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자살하려다가 마침 한 스님을 만났다. 그 스님은 “자살해 죽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기도를 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대재벌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살하려던 교포가 스님의 말을 믿고 정성껏 100일 기도를 드렸더니 정말 모든 일들이 술술 풀려 사업이 크게 일어났다며 영험담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불교를 잘 몰라 기독교인들에게 당했는데 스님의 설법을 듣고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기뻐했다.
“불교를 믿으면 부처님이 다 해주신다는 대원 스님 말씀이 맞습니다. 게다가 교회에서는 할 수 없지만 불교에서는 우리 자신에게도 그와 같은 게 다 있다고 하는 걸 부처님이 가르쳐 주셨으니, 불교는 완벽하게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저흰 그걸 몰라서 기독교 신자한테 말을 못 했습니다. 이젠 스님 덕택에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 뒤 스님이 귀국한 뒤였는데 한 교포 불자가 미국에서 전화를 하였다.
“스님 말씀대로 불교를 설명했더니 기독교인들이 더는 반박을 못 합니다. 스님 덕분에 제가 토론에서 이변을 일으켰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사람이 시비를 걸더라도 불교를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불심을 행하고 실천하는 종교이며 불심이란 대자비, 대지혜, 대광명, 대만족, 대행복입니다.”
스님은 이처럼 모두가 불심을 가지면 모두 내 몸, 내 마음이니 상대가 끊어진 관계로 적은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를 해치는 불협화음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처럼 모두 평화롭고 멋지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불심입니다.”
학산 대원 대종사
· 집필자 : 이정범




